사설칼럼

세계일보

[삶과문화] 미래는 항상 먼저 도착해 있다

남상훈 입력 2020.04.0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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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이 끔찍했던 사실은 / '그'가 도무지 낯설지 않다는 것 / 오랜시간 성차별 누적해온 우리 / '그'에게 놀라움 표시할 자격 없어

카메라에 잡힌 그의 얼굴은 너무도 평범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 혼잡한 퇴근 시간 지하철이나 늦은 밤 편의점 카운트에서 마주쳤다 한들 무심코 지나쳤을 행색. 그는 강의를 마치고 나온 학생들로 붐비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큰 소리로 동료들에게 피시방에 가자고 부추기던 남학생 가운데 하나였을 수도 있고, 인근 술집 앞에 빙 둘러선 채 담배를 물고 욕설 섞인 수다를 늘어놓으며 드나드는 여자들을 힐끔거리던 술꾼 일행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그를 어떻게 ‘악마’라고 할 수 있겠나.

소위 ‘n번방 사건’을 접하며 가장 끔찍했던 사실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가 도무지 낯설지 않다는 것.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오려 붙여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놓고 특정 정치인을 조롱하던 짓거리부터 ‘김치녀’니 ‘된장녀’니 각종의 멸칭으로 여성을 향한 혐오를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는 행태에 이르기까지 지난 십여 년간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신수정 명지대교수 문학평론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인구에 회자하고 있는 ‘일베’ 혹은 ‘소라넷’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보수적 정치 성향과 여성 혐오로 악명 높은 그들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성 피해자를 애도하는 사람들에게 엽기적인 조롱을 삼가지 않던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 편견으로 가득 찬 성차별 의식을 누적해온 우리 사회가 ‘그’에게 놀라움을 표명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그는 결코 괴물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 뿐이다.

“재혁은 자신을 찍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풍경이었다. 자살하려는 모습을 중계하는 쓰레기 같은 뉴스 카메라. 그가 사랑하는 호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였다. TV 뉴스 채널이 쓸데없이 많아졌을 때 재혁은 그가 꿈꾸던 장면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젊은 여성 작가 박민정의 단편 ‘버드아이즈 뷰’는 카메라의 시선에 함축되어있는 관음증적 충동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그’를 생산해내는 주요한 기제 가운데 하나임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공부만 잘할 뿐 남성 또래 집단에선 ‘찐따’로 따돌림당하던 주인공은 ‘카메라’를 장착하고 여성들의 ‘몰카’를 남발하면서 온라인상의 유명인물로 돌변한다. 카메라가 없었더라면 그는 그저 조금 “쪼다 같은” 남자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메라가 제공하는 ‘버드아이즈 뷰’의 마력에 도취한 그에게 이제 평범한 이웃의 삶은 의미가 없다. 환호가 사라진 이후의 삶을 견딜 자신이 없어진 주인공은 자살 소동을 빌미로 쓸데없이 많아진 ‘TV 채널’을 불러모으며 다시 한번 그들의 관심을 촉구하고자 한다. 그 순간만이 그를 ‘찐따’에서 ‘영웅’으로 돌변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는 이제 지금 이곳의 현실이 되었다. 그에 관한 선정적인 추정, 피해자의 인권에 개의치 않는 무분별한 노출, 근엄한 도덕적 훈계로 일관하는 위선적인 질책 등 우리는 그를 괴물로 만들어놓고 그가 자신을 악마로 지칭하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소비하고 있다. 카메라의 시선에 굴복한 것은 그나 그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성원 모두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변질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정당한 관심의 촉구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듯도 하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늘 그러하듯이 아마도 다시 한번 해묵은 편견을 반복하게 될 것도 같다. 노예들의 몰카, 몰카의 노예들. 버드아이즈 뷰의 주인공은 자신의 자살을 종용하는 듯한 TV 카메라 앞에서 마지막 멘트를 남긴다. “미래는 항상 먼저 도착해 있다. 엿 같은 모습으로.” 때론 허구가 가장 현실에 근접한다.

신수정 명지대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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