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은 어쩌다 영웅이 되었나 - '흉악범'을 향한 굴절된 시선 [커버스토리]

전현진 기자 2020. 4.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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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수감 중인 장대호가 쓴 자칭 ‘회고록’. 28쪽 분량의 옥중 편지가 온라인에서 유포되면서 그는 대호좌·빅타이거·킹대호·갓대호로 불렸다. 임신한 아내와 6살 아이를 위해 꽃과 과자를 주문한 한 가장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죄자. 그는 피해자를 ‘조선족 포주 양아치’로 규정하며 살인을 정당화했다. 자존감 낮고 열등감 높았던 자신이 범죄를 통해 주목받음을 자랑스러워하는데 누리꾼들이 그를 ‘의인’이라 부른다.

『백범일지. 지난해 8월 발생한 ‘한강 시신 사건’의 범인 장대호(40·사진)가 최근 옥중서신의 형태로 외부에 유출한 28쪽 분량의 편지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렇게 불렀다. 장대호의 이름이 ‘큰 호랑이’를 연상케 한다며 백범 김구 선생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따왔다. 일제강점기 김구가 일본인을 처단한 것처럼, 장대호가 ‘조선족’(중국 동포)을 죽였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나 처벌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에게 장대호는 ‘빅타이거’ 혹은 ‘대호좌’(대호+본좌)로 불린다.

장대호 스스로 ‘회고록’이라고 부르는 이 편지에는 그가 범행을 결심한 순간부터 자수 이후 상황 등의 과정이 담겨 있다. 장대호는 지난해 8월8일 오전 6시쯤 서울 구로구 소재 자신이 일하던 모텔을 찾은 이모씨(34)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유기했다. 그는 요금 시비가 붙은 피해자 이씨의 객실에 몰래 들어가 잠들어 있던 이씨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서울구치소는 이 회고록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경향신문과 연락이 닿은 장대호는 “회고록은 직접 쓴 편지가 맞다”며 “더 이상 제 사건 관련 내용으로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장대호는 이 살인을 ‘보복’이라 지칭했다. ‘피해자 이씨는 포주이고 양아치이며 다수의 폭력전과와 아내를 폭행한 전력이 있고, 불법 안마시술소를 운영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는 주장을 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에겐 통상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신상정보를 공개하라는 여론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선 장대호에게 도리어 열광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장대호의 편에 서서 피해자 혐오에 동조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장대호의 일방적인 목소리가 사건을 규정해버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겨진 가족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왜 ‘일베’와 같은 극단적인 성향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에 대한 환호가 계속될까. 장대호에게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에 공감했을까.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장대호, ‘박사방’을 통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조주빈 그리고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

◆‘한강 시신 사건’ 장대호, 그는 어쩌다 영웅이 되었나

남편이 보낸 꽃다발에는 ‘고맙다’는 메시지가 적힌 작은 팻말이 꽂혀 있었다. 한창 인기인 과일 젤리도 함께였다. 임신한 아내와 6세 아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2019년 8월8일, 1년에 한 번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석(음력 7월7일)이었다. 오전 7시쯤 남편과 통화한 아내는 그날 오후에 선물을 전달받았다. 전날 온라인으로 꽃을 주문한 남편은 이미 장대호(40)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뒤였다.

우모씨(32)는 아침에 남편 이씨와 통화하며 평소와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마사지숍을 여러 개 운영하는 남편은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 술 한잔한 뒤 구로구의 한 모텔에 들어와 잠들기 직전이라고 했다. 평소 우씨는 남편에게 “술 마시면 운전하지 말고 가까운 모텔에 가서 푹 쉬라”고 했다. 우씨는 남편이 당시 꽤 많은 현금을 들고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숍에서) 백만 원 정도 나온 것 같다”는 남편에게 “푹 쉬고 들어와”라고 답한 게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선물을 잘 받았다고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남편의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평소 휴대폰을 꺼놓는 법이 없었지만 ‘다른 일이 있겠지’ 애써 안심했다. 별안간 시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꿈에 아들이 빈손으로 어딘가로 가버렸다”며 불안해했다. 경찰서를 찾아 실종신고를 하고 서울로 올라가 남편을 찾아다녔다. 그즈음 남성의 시신이 한강에서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몸에 문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남편의 몸엔 문신이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래지 않아 신원 파악을 마친 경찰의 연락을 받았을 때, 우씨의 삶은 모조리 파괴됐다.

‘거대자기환상’에 빠진 흉악범

그가 쏟아낸 장대한 변명에

동질감 드러내는 위험한 누리꾼

■ ‘코리안 조커’?

장대호가 서울구치소 수감 중 쓴 자칭 ‘회고록’은 28쪽 분량의 편지로 지인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의 한 사용자에게 전달되면서 인터넷에 유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에는 사건 당일 피해자 이씨가 장대호가 일하던 모텔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요금 시비가 붙은 상황, 이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이를 유기하는 과정, 훼손된 시신이 한강에서 발견되자 자수를 하게 된 경위 등이 담겨 있다. 재판 과정에서의 경험과 편지를 보게 될 이들에게 전하는 말을 ‘후기’나 ‘Q&A’ 형식으로 쓰기도 했다. 그는 이 회고록을 “이 사건의 모든 내용이 특정인에 의한 편향된 편집 없이 세상에 공개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작성했고, “이 글의 모든 내용이, 기레기들의 가공을 거치지 않고, 모든 이가 읽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장대호에 대한 열광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편지가 외부로 전해지면서 표면화됐다. 평범한 가정을 파괴한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은 일반인이라면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장대호는 온라인상에서 영웅처럼 치켜세워졌다. 일베, 디씨인사이드 등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장대호를 대호좌(대호+본좌), 빅타이거, 킹대호, 갓대호, 의인, 장군 또는 영화 <조커>의 주인공에 빗대 ‘코리안 조커’라고 불렀다. 살인 후 시신까지 훼손한 흉악범에게 열광하는 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살피려면 우선 이 사건과 장대호에 대해 면밀히 돌아봐야 한다. 장대호가 작성한 글에는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는 내용과 함께 타인의 괴롭힘 등에 대해 과도하게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온라인에서 장대호를 미화하는 이들은 그를 당당하고 신념을 지닌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대호의 일방적인 범행 묘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장대호의 주장에 따르면, 피해자 이씨는 당일 오전 6시쯤 모텔을 찾았다가 4만원인 숙박요금을 3만원으로 깎으려는 과정에서 종업원 장대호와 시비가 붙었다. 장대호는 그 상황에서는 ‘질까봐’ 다툼을 피했는데 이후 1~2시간 동안 비상키를 들고 이씨가 잠든 3층 객실로 올라가 “(이씨가) 잠들었으면 죽이고, 혹시 안 자고 있으면 그냥 내려오기로” 마음먹었다고도 기술했다. 심지어 이씨를 원망하며 범행에 대한 책임마저 피해자에게 돌리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충남 당진의 모처에서 만난 ‘한강 몸통 사건’ 피해자의 아내 우모씨는 남편을 잃고 유산했으며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전현진 기자

|피해자 이씨 부인 평소 택시비 잔돈도 안 받던 남편 이요금 1만원 깎으려 시비를 걸다니… 휴대폰에 주말마다 찍은 가족사진 가득 가정폭력했다는 장대호 주장 말도 안돼

피해자 이씨가 요금 시비를 벌였다는 장대호의 주장에 대해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응했다. 아내 우씨는 “남편이 모텔에 도착한 후 전화했을 때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고, 평소 가족과 여행 가서 모텔을 이용할 때도 요금을 깎아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다른 지인은 “(이씨가) 택시를 탈 때도 잔돈은 ‘팁’ 명목으로 돌려받지 않았고, 생활고에 시달리지도 않았는데 1만원을 덜 내겠다고 시비를 걸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했다.

장대호는 회고록에서 피해자 이씨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폈다. 피해자 이씨를 폭행 전과가 있고 아내를 폭행하는 ‘포주’로 묘사하며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했다. 특히 자신의 범행을 ‘보복’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나의 살인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 우씨는 “남편이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른 적도 없고, 지인들의 다툼을 말리려다 폭행에 휘말린 적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적이 있는데 소송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정이 있겠죠.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어요’라고 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장대호가 묘사한 피해자의 모습과 그 가족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천지 차이였다. 회고록에 따르면, 장대호는 약 10분가량의 만남으로 피해자를 ‘죽여도 되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경향신문과 함께 회고록 등 편지와 인터넷 게시글 등을 통해 장대호의 심리를 분석한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자고 있던 피해자의 방에 몰래 들어가 살해하는 비열한 방식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처럼, 그가 쓴 글을 면밀히 살펴보면 장대호 스스로 밝히고 싶어하지 않은 그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 ‘거대자기환상’ 속 범죄자

장대호는 피해자 이씨에 대해 “참고로 나는 이놈을 ‘조선족 포주 양아치’라고 부르길 좋아한다”며 “내가 처음 예상한 조선족 포주란 추측이 팩트로 확인된 순간 나의 죄책감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족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썼지만, 실제로 장대호는 피해자 이씨가 중국 동포라고 자의적으로 추측해 범행했다. 이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단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살해당해도 되는 이유가 될까. 박 교수는 “장대호는 그의 행동보다 스스로 추정한 특성(중국 동포)을 토대로 범행을 저지른 셈”이라고 말했다.

장대호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착한 사람을 죽인 거라면 비난받아야 되지만…”이라는 문장도 적었는데, 이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피해자와 나쁜 피해자가 있고, 당해도 되는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표현이다. 박 교수는 “2008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고시원에서 발생한 ‘묻지마 방화 살인 사건’의 범인도 ‘나의 모든 것을 가르쳐줄 테니 배워라, 모범을 보여줄게’라는 이야기를 했다”며 “장대호가 회고록을 쓴 목적도 ‘나는 이와 같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언론사에 보냈다면서 “코로나 사태로 언급이 안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하거나 “나는 이 사회와 국민 여러분께 그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며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심리학에서 ‘거대자기환상’이라고 부르는 전형 중 하나다. 이런 특성은 온라인에서 증폭되는 경향이 있는데, 거대자기환상에 사로잡힌 이들은 무능력한 현실에서 벗어나 온라인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을 과장하는 만능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주장이 장황하게 이어지는 장대호의 회고록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드러내는 단서가 거의 없다. 장대호가 회고록에서 거론한 본인과 피해자 외 인물은 모텔에서 일하는 교대 근무자가 유일하다. 장대호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다른 직원에게 (이씨를) 상대하게 하기에는 스스로 무책임하게 느껴졌다”며 스스로를 개념 있는 선임으로 묘사했다. 자수 전 업무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한편 후임 근무자를 위해 살해한 피해자의 담배를 챙겨두는 살뜰함도 과시했다.

회고록의 독자로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불특정한 온라인 이용자들을 상정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장대호는 비교적 불안정한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현실에서 대인관계가 거의 없었다. 장기적인 목표나 꿈에 대한 언급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래에 대한 꿈은 범죄를 막는 큰 동기가 된다. 장대호에겐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2018년 10월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벌어진 살인사건.동생과 함께 PC방을 찾은 김성수는 자신에게 불친절하게 굴었다며 종업원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김성수와 장대호는 서로 역할은 달랐지만 비슷한 상황(종업원과의 시비)에서 범행이 이뤄졌다.

김성수는 경찰 포토라인에서 “(자리를) 치워달라고 했더니 표정이 안 좋았다, 치워달라고 한 게 큰 잘못인가 하는 억울함이 들었다, 과거 생각까지 들면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억울해서 죽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성수의 발언과 장대호의 주장은 피해자를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전문가들은 장대호와 김성수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피해의식이 사소한 시비로 터져 나왔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8일 장대호의 범행으로 사망한 피해자 이모씨가 아내에게 보낸 꽃 선물.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을 기념해 남편이 보낸 꽃을 촬영한 사진을 아내는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 왜 장대호에게 동조하는가

문제는 이렇게 유출된 장대호의 회고록에 열광하는 이들이 동질감마저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화가 날 때가 있는데 장대호는 실행에 옮겼다”며 치켜세우는가 하면, “편의점에 갔는데 아르바이트생의 서비스가 별로였다”면서 “한 번 더 가서 또 그러면 ‘장대호’해버릴까”라는 온라인 글이 난무한다.

박 교수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흔히 쓰이는 배경과 장대호에게 열광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관련이 있다고 봤다. 분노조절장애는 심리학 전문용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높은 빈도로 사용되고 있다.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이다. 화가 날 법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참지 못할 것 같은 순간들을 겪는 빈도수가 늘었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죽여버리자’라는 식의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장대호는 그 일을 실제로 저지름으로써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들이 공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잔인한 살인 사건을 마치 한 편의 ‘리얼리티 관찰 프로그램’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소비하는 이들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실제 장대호의 장황한 자기 서사가 담긴 회고록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다’며 환호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 장대호 회고록에 흐르는 고립 정서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갈망하는 감정선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지점에 공감대를 형성한 이들은 장대호가 경찰에 자수한 뒤 체포돼 재판을 받는 일련의 과정에서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미안하지 않다’ ‘사형이라도 받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당당한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법원이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범행 동기와 그로부터 알 수 있는 극도의 오만함”이라고 표현한 것과는 상반되는 반응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일부의 혐오 정서가 장대호를 통해 도드라진 부분도 있다. 장대호 사건에서는 ‘조선족’이라며 중국 동포를 혐오하는 이들이 가해자의 편에 선 것이다.

‘PC방 살인사건’ 당시 김성수가 억울함을 토로한 발언에 “피해자 탓하지 마라” “당신은 살인범일 뿐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마라” “그래 봐야 살인자의 변명일 뿐”이라고 반응했던 누리꾼들과 확연하게 다른 반응이다.

박 교수는 “이런 범죄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가 전하는 ‘미화된 버전’이 아닌 그 이면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며 “장대호는 그저 우리 중의 하나인 찌질한 사람이었다. 피해자의 행동은 장대호나 김성수가 평생 축적해온 열등감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 외면한 진실

장대호를 영웅시한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평범한 한 가정이 그의 손에 몰락했다는 점이다. 범죄는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인생을 바꾸어놓는다. 장대호는 오랜 시간 범행을 시뮬레이션해 왔다. 피해자가 사망한 이씨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을 수 있다.

박 교수는 “장대호가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수단이 범죄가 된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띄는 것을 사회가 무너지는 척도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롤모델이나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장대호와 같은 범죄자이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신호”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아내 우씨는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이씨와 만나 결혼해 한국에 정착했다. 부부는 모두 한국 국적이다. 바다가 보이는 집을 어렵게 장만한 부부는 올 10월이면 인천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우씨는 “남편이 어린 아들에게 떳떳한 일을 하고 싶다며 마사지숍을 정리하고 무역업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이곳저곳 놀러다니길 좋아했다고 했다. 우씨의 휴대전화에는 온천, 노래방, 식당, 공원 등 전국 각지에서 친정·시댁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다복한 가정을 꾸리던 이씨는 불의의 사건 이후 장대호에 의해 명명된 ‘조선족 범죄자 포주’ ‘아내를 폭행한 전과자’가 돼 버렸다. 우씨는 남편을 잃은 뒤 극심한 스트레스로 유산했다. 이유 모를 기침을 하는 날이 길어지더니 갑상선암 판정까지 받았다. 우씨는 “치료하고 싶지도 않다”며 낙담했다. 아빠가 미국에 간 줄로만 알고 있는 6살 아들은 “아빠가 영어를 못 해서 어디 갇힌 것 아니냐”고 물어온다고 했다. 아빠의 부재가 길어지자 아들은 말수가 줄었고, 얼굴에 그늘이 가시지 않는다. 지난달 21일 만난 우씨는 ‘언제쯤 아들에게 남편의 일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물음에 그만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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