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대 정당 중 하나, 다른 선택지가 없다

윤호우 선임기자 2020. 4. 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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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15총선에서 양강(兩强)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간의 각축전이다. 호남을 제외한 전국의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이 1 대 1 정면 대결을 펼친다. 제3당의 존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례의원을 뽑는 정당 투표 역시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끼리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각 지역구 여론조사 결과와 각 당에서 내놓는 목표 의석을 종합해 보면,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후보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양당 외 지역구 당선자(무소속 포함)는 한 자릿수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금 상황으로는 두 정당을 빼면 제3당과 무소속을 합해도 10석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21대 총선에서는 ‘거대 양당 외의 당선자 최소’라는 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전체 253개)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 외에 38명의 당선자가 나왔다. 19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에서 양당 외 당선자가 13명(전체 246개), 18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에서 양당 외 당선자는 48명(전체 245개), 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양당 외 당선자는 14명(전체 243개)이었다. 17대 총선과 19대 총선보다 이번 총선에서 제3당·무소속 당선자가 더 적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후보 등록 결과 지역구 후보 경쟁률이 4.4 대 1로 나타났지만,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양강 구도가 형성되면서 실질적인 경쟁률은 2 대 1”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진보·보수 진영대결, 동·서 지역대결

양강 구도가 형성되면서 각 당에서도 내놓은 목표치도 높아졌다. 민주당은 지역구 130석, 통합당도 지역구 130석이라는 목표치를 각각 내놓았다. 253석을 양당이 양분할 경우 지역구에서 130석 정도는 확보해야 1당이 될 수 있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110석으로 1당을 차지했고, 새누리당은 105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번 총선에서는 양당 구도가 재연됨에 따라 제1당이 되려면 더 많은 의석을 얻어야 한다. 양당은 모두 위성정당의 비례의석까지 포함해 145석 이상을 목표로 삼았다.

이 같은 구도가 굳어져 감에 따라 총선의 성격이 분명해졌다.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대표주자 간의 대결로 특징화됐다. 진보의 대표주자로 민주당, 보수의 대표주자로 통합당이라는 대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중도’라는 제3의 선택지는 없어졌다.

이념뿐 아니라 지역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호남 텃밭을 가진 정당과 영남 텃밭을 가진 정당의 동서 대결이 나타나게 됐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 이어 서울·인천·경기의 수도권에서 기선을 잡고 있다. 민주당이 호남과 수도권 등 서쪽을 아우르고, 통합당이 영남과 강원 지역에서 유리한 지형을 구축하는 동서 구도가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한국의 정치 지형을 그었던 지역주의 구도다.

4년 전 20대 총선에서는 제3당인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선전하면서 양당 간 동서 대결축이 허물어졌다. 게다가 정당투표에서도 국민의당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제3정당의 바람이 거셌다. 이 바람은 수도권에도 몰아쳤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제3당의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면서, 결국 영남 대 호남이라는 동서지역 대결 구도가 재연된 것이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 그리고 20대 총선의 정당별 당선지역. 경향신문 자료

대부분 유권자는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것이냐, 아니면 통합당 후보를 찍을 것이냐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호남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후보 대 민생당 후보라는 대결이 있을 뿐이다. 비례정당 투표에서는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선택지가 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열린민주당으로 펼쳐졌다. 소수 정당을 배려하기 위해 마련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아래에서 정의당·민생당·국민의당 등은 의석 확보에 경고등이 켜졌다.

후보 등록 이전에는 나름대로 지역구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이 주춤해졌다. 일부 무소속 후보가 출마를 포기하거나 같은 이념 진영의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선거 구도가 점차 거대 양강의 격돌로 고착화되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출마 포기나 단일화의 이유를 보면 이번 선거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권 심판론이나 특정 진영의 승리가 언급되고 있다. 코로나 극복론 대 정권 심판론, 진보 대 보수 등의 이분법적 양상으로 총선의 대결 구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갈라온 양극화가 이번 총선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나는 형국이 됐다. 이준한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 이념의 양극화, 사회의 양극화가 이번 총선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총선과 달리 양당을 가르는 전선이 뚜렷해졌다. 김상일 시사평론가는 “지역적으로 영남과 호남이라는 전통적 텃밭을 위주로 양당이 세를 강화하고 있고, 진영적인 측면에서는 대결이 격화되면 강성 친문 대 강성 태극기 세력 간의 대결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공동선대위원장과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4월 2일 오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중앙선대위 합동 출정식에서 4ㆍ15 총선 투표 격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도층 선택과 수도권 승부가 관건

양대 전선이 구축되면서 역설적으로 중도층의 선택이 더 중요한 상황이 됐다. 이념적으로는 진보나 보수에 속하지 않는 중도층이 코로나 극복을 택할 것인지, 정권 심판을 택할 것인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전통적으로 보수와 진보가 정면으로 격돌하게 되면 진보가 불리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총선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특정 안보·경제 이슈가 아니라 코로나19를 잘 대처했느냐, 대처하지 못했느냐에 대한 평가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양강 구도에서 지역적으로도 수도권 승부가 더욱 중요해졌다. 각 정당의 텃밭에 속하지 않는 수도권 121석의 향배가 제1정당 자리를 가름할 최대 승부처가 된 것이다. 홍형식 소장은 “동서 간의 대결이 고착화되면서 대전에서 천안·수원·서울로 이어지는 경부선 라인이 중요해졌다”면서 “이 지역에서 양당의 후보 중 누가 승리할 것이냐가 전체 승패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보았다.

김상일 평론가 역시 “수도권 중심으로 양당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 지역에서는 향후 누가 실수를 하지 않느냐가 선거 판세를 좌우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지금까지는 통합당이 실수를 많이 하면서 민주당의 실수를 상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선거에 들어가기 전인 지난 2월에 양당 간 격차가 줄어들었다가 3월 말에 다시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2월에 통합당은 새보수당과 전진당 등과 보수통합을 이루고, 김형오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물갈이 공천을 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하지만 3월에 김 전 위원장이 황교안 대표와 갈등 끝에 물러나고, 일부 공천이 무효화되면서 통합당이 프리미엄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 등 의원들이 4월 1일 국회 로텐더홀 홀 앞 계단에서 열린 ‘나라 살리기·경제살리기’ 공동 선언식에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정국’ 역시 민주당에는 유리한 상황이 됐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가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이에 한국은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 모델을 배워야 한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50%대로 올라섰다.

4월 15일 총선에서의 승부 결과는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다. 게다가 선거전 막판까지 어떤 돌출변수가 튀어나와 선거판을 요동치게 할지도 모른다. 홍형식 소장은 “김종인 선대위원장이라는 새로운 카드가 등장했다”면서 “하지만 통합당의 발언 실수가 연일 계속되고 있어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예전 총선처럼 ‘바람’이 가장 큰 변수로 등장할지도 주목된다. 김상일 평론가는 “어느 한 측이 선거운동 기간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 정국 상황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여당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준한 교수는 “이미 코로나 바람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고, 총선 때까지 새로운 바람이 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 중 어느 당이 승리하든 21대 총선은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길 것으로 보인다. 김상일 평론가는 “양강 구도든, 정치적 양극화든 결정은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교수는 “유권자는 20대 총선에서 제3당에 힘을 보태주면서 정치적 양극화의 반대 방향을 제시했으나 20대 국회에서 정치권이 다시 양극화 현상을 만들었다”면서 “총선 후 구성되는 21대 국회는 결국 이런 정치적 양극화, 사회적 양극화, 이념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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