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고요? 외모칭찬 거절합니다

이하늬 기자 2020. 4. 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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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JTBC <악플의 밤>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1주일 살아보기.’

한국여성민우회는 2015년 외모지상주의 타파를 위해 이런 캠페인을 시도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는 ‘외모 지적은 나쁜 것, 외모 칭찬은 좋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0대와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탈코르셋’이 활발해지는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면서 외모 평가에 대한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탈코르셋은 말 그대로 ‘코르셋’을 벗겠다는 것으로 남의 시선 때문에 외모를 꾸미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고등학교 교사 이모씨(33)는 가급적 학생들이게 ‘예쁘다’, ‘귀엽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칭찬이라 누구나 편하게 말하지만, 학생들이 오히려 그 말 때문에 더 외모에 신경 쓰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해서다.

이씨는 최근 불편한 상황을 겪었다. 친한 친구가 출산했는데 아기 외모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기 낳느라 수고했다, 아기 건강하느냐는 말도 한두 번이지. 결국은 아기 콧대가 오뚝하다, 눈이 크다, 엄마를 닮아서 예쁘다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기한테까지 뭐 그러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이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에까지 이어진다.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씨의 고민은 연기자 겸 가수 고 설리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설리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외모 평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며 “칭찬도 어쨌든 평가이지 않나. 평가가 아닌 자신이 발견한 것만 이야기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모에 대한 칭찬도 지양하자는 이야기다.

스스로 외모의 관찰자·감시자 돼 그렇다면 외모 평가는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씨의 생각처럼 정말 외모에 대한 칭찬도 하지 않는 게 나을까. 이에 대해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저자인 러네이 엥겔른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20년 가까이 연구한 결과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가 개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칭찬을 포함한 외모에 대한 언급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고 느끼게 한다. 이를 자주 느낄수록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그는 이런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 결국 스스로를 평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외모의 관찰자·감시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모에 대한 칭찬은 오히려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엥겔른 교수는 “날씬해진 여성이 온갖 찬사와 칭찬을 받게 되면 그는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욱 몸무게에 매달리게 된다”며 “바로 이것이 외모와 관련된 언급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실제 다이어트 직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살이 빠졌다’, ‘달라보인다’는 평가를 들은 직장인 정모씨(30)는 칭찬을 받았음에도 “공포스러웠다”고 답했다. 정씨는 “임신을 하면 살이 찔 것 같은데 출산 이후에 살을 뺄 수 있을까. 그때는 육아도 해야 할 텐데 더 힘들지 않을까. 임신했을 때부터 몸무게를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10대와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이 주 구성원인 온라인 카페에는 연예인 사진에도 “나노 단위 평가 지양하자”, “얼평(얼굴 평가)하지 말자”라는 댓글이 달린다. ‘나노 단위 평가’는 팔·다리·눈·코 등 몸의 각 부분을 나눠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대상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이미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상화는 신체를 바라보아야 할 사물로 생각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 누리꾼은 “연예인은 외모를 관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평가해도 괜찮다는 주장도 있지만 ‘개미허리’, ‘꿀벅지’, ‘동안’ 같은 외모 평가의 기준이 결국 일반인에게 돌아온다”며 “연예인 당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심하기 때문에 하지 말자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들 세대가 주도하는 ‘탈코르셋’ 현상도 외모 평가, 외모 언급과 비슷한 맥락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탈코르셋으로 검색하면 1만7000개 이상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탈코일기는 1100여 개, #탈코르셋은해방입니다 게시물도 1500개가 넘는다. 비공개 게시물까지 합치면 관련 게시물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혜원여고 페미니즘 동아리 ‘춘분’ 학생들이 학생다움·소녀다움· 여성다움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옥죄는 ‘코르셋’에 대해 적은 포스트잇. / 이보라 기자

“걱정도, 덕담도 아닌 무비판적 습관” 지난해 탈코르셋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는 대학생 안서연씨(25)는 “예전에는 외모 칭찬을 받는 게 좋았다. 그래서 더 꾸몄다. 그게 내가 가진 무기라고도 생각했다”며 “그런데 그 무기가 불안정한 토대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없으면 더 이상 무기가 아니더라”고 말했다. 안씨는 그 무기를 버리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안씨처럼 탈코르셋을 할 수는 없다. 탈코르셋에 동의하는 여성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행이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성민우회의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1주일 살아보기’ 캠페인이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은유 작가는 <다가오는 말들>에서 외모 평가에 대해 “걱정도 덕담도 아니다. 무비판적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외모 칭찬은 가장 손쉬운 칭찬이기도 하다.

직장인 최유리씨(31)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중단시키고 각자가 관심이 있을 법한 주제로 이야기를 돌린다. “사촌 동생들에게는 최근에 읽은 책을 물어보고 작은엄마에게는 최근에 본 영화,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드라마를 물어본다. 그러면 할머니가 드라마 욕을 한 시간 한다.”

‘보여지는 몸’보다 신체가 가진 행위에 중점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엥겔른 교수팀은 18세부터 40세 사이의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나는 ( )을 하기 위해 내 팔을 쓴다’, ‘나는 몸으로 ( )을 할 수 있다’, ‘내 몸은 ( )할 때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등의 문장을 완성하게 하는 실험을 했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의 몸에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됐다고 답했다.

하루아침에 외모 언급, 외모 평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에 대해 노혜경 시인은 <탈코르셋 시대의 못생길 권리>에서 “(탈코르셋은) 정치적 싸움보다 더 강력한 자본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아름다움은 궁극의 선으로 등극했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강요는 남성들에게 이어진다. 하지만 결론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지적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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