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산업 4배 넘는 성착취 산업, 실태조사는 없다

이하늬 기자 2020. 4. 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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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밤의 네온사인 / 경향신문 자료사진

텔레그램 n번방은 일부 남성의 일탈이 아니다. 성착취에 관대한 한국사회의 민낯이 또 드러난 사건이다. 한국의 성착취 시장의 규모가 이를 방증한다.

성매매, 성매매 알선 사이트, 불법 촬영물, ‘룸’이라는 이름의 변종업소, ‘벗방’과 같은 성인방송, 그리고 피해로 인해 파생된 디지털 장의사까지. 모두 성착취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산업이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성착취 시장 규모에 대한 조사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일부 성매매 시장 규모에 대한 조사는 몇 차례 이뤄졌으나 그마저도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추정치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1년 성매매 거래액은 6조6367억원에 이른다. 규모별로 보면 성매매 알선업체를 통한 액수가 5조4030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성매매 집결지 5765억원, 변종 성매매 2547억원, 해외 성매매 2195억원이 뒤를 이었다.

미국 암시장 전문 조사기관 하보스코프닷컴(www.havoscope.com)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120억 달러(약 14조8000억원)로 세계 6위다. 1~5위는 중국, 스페인, 일본, 독일, 미국 순. 이중 스페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많다.

같은 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이 발간한 <조직범죄단체의 불법적 지하경제 운영실태와 정책대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30조원에서 37조원에 이른다. 당시 정부가 1년간 적발한 성매매 시장이 1조5070억원이었는데, 형정원은 성매매 단속률을 4~5%라고 봤다. 단속률이 4%라면 성매매 시장은 36조6700억원에 이르고 단속률이 5%일 때는 30조1400억원이 된다.

이는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규모다. ‘KB 자영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커피시장의 규모는 6조8000억원(2018년) 수준이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영화 산업은 어떨까.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영화시장의 전체규모는 2조3764억원이었다. 성매매 시장을 30조라고 봤을 때, 커피시장의 4배, 영화시장의 13배 정도라는 수치가 나온다.

규모 짐작조차 못하는 성착취 산업 성매매를 제외한 변종업소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성착취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모른다’다. 추정치도 없다. 불법화된 시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너무 자주, 너무 많은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텔레그램 n번방이 논란인 지금 이 순간에도 앙톡·다톡·랜덤채팅과 같은 채팅앱에는 ‘지금 ㅍㅔㅇㅣ마ㄴ나ㅁ 하실 분’, ‘X X사진 교환하자’, ‘기혼남, 스1폰1 필요하신 분’, ‘영통으로 X X 보여줌’ 등의 글이 1분이 멀다 하고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7월 폐쇄된 ‘밤의 전쟁’이라는 국내 최대 성매매 알선 사이트는 ‘밤의 전쟁 시즌 2’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해당 사이트는 대문에서 “접속이 되지 않을 경우 4, 5, 6 순차적으로 접속하시면 됩니다”라며 홈페이지 주소를 안내하고 있다. 사실상 사이트 폐쇄 의미가 없는 셈이다.

변종업소는 립카페·하드코어·퍼블릭·셔츠룸·레깅스룸·유리방·핸플·텐카·짭텐 등 종류가 다양하고 이름만 봐서는 어떤 행위가 이뤄지는 곳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단속에 잘 걸리지 않는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은어를 썼지만 우리는 너무 잘 안다. 경찰도 안다”며 “하지만 직접적인 단어를 안 썼다는 이유로 증거가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은어가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밤의전쟁 시즌2 라는 이름의 사이트

“70억? 100억? 그보다 훨씬 많을 것”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관련자가 수사기관에 덜미를 잡혔을 때 알려지는 게 전부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수사과정에서 회원수·운영기간·불법촬영물수·성매매 광고비 등이 대략 나온다. 이를 통해 비슷한 규모의 사이트도 비슷한 규모로 수익을 얻었다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하지만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사이트마다 광고비가 다르고 부르는 게 값이다 보니 범죄수익이 천차만별이고 70억, 100억을 벌었다고 하는데 실제 금액은 이보다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운영진 일부가 겹치는 성매매 알선 사이트 ‘아찔한 밤’, ‘아찔한 달리기’, ‘밤의 전쟁’의 알려진 수익 규모는 제각각이었다. 이들은 변종업소·성매매 업소 광고로 돈을 벌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아찔한 밤은 2년 8개월 동안 78억원, 아찔한 밤의 후속 사이트였던 아찔한 달리기는 5개월 동안 100억원, 가장 회원수가 많았다고 알려진 밤의 전쟁은 5년 동안 200억원을 벌어들였다. 밤의 전쟁의 회원수는 70만 명 수준이다.

음란물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AV스누프’는 3년 4개월 동안 불법촬영물과 광고 등으로 17억원가량을 벌어들였다. 반면 17년간 운영된 소라넷의 범죄수익은 알려진 바가 없다. 전성기에는 광고비만 하루 1억원이었다는 ‘카더라’만 있을 뿐이다.

이제는 관련한 대대적인 실태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라넷부터 n번방까지 20년 넘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실태조사 한번 없었다. 2010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가 있었지만 정확도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가승인통계에서 제외됐다. 이후 발간되는 성매매 실태조사는 연구용역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성매매 시장 규모와 관련한 내용은 없다.

이하영 공동대표는 “n번방은 범죄 방식은 잔혹하지만 시장에서 보면 아마추어 수준이다. 성착취 산업은 성매매·불법촬영·비아그라와 같은 약물·마약·도박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형전원의 30조원도 과소 추산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승희 대표도 “아무런 자료가 없다는 사실이 지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추정치를 넘어선 실태조사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제 전국연대는 대구, 전주, 제주를 직접 다니며 성매매 업소, 성매매 의심업소, 변종업소 등의 규모를 파악한 바 있다. ‘오피’로 불리는 업소는 온라인 광고를 통해 추산했다. 전국연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대구의 업소수는 카페 수의 5배에 달했다.

촉구시위팀 관계자는 “은밀하다는 이유로 실태조사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은밀한 산업이 어떻게 30조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라며 “n번방만 처벌할 게 아니라 성착취 산업 전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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