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이 통일정부 수립운동? 文 추념사 사실일까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0. 4. 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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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기자의 이것이 역사다]
'통일정부 수립'은 무장봉기 일으킨 남로당 슬로건
대한민국정부 수립 막기 위해 지서-우익단체 습격
노무현 정부 '제주 4.3진상보고서'에도 명기

대통령은 그제 제주 4·3 사건 추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는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오직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며 되찾은 나라를 온전히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문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제주도민이 통일정부수립의 꿈을 꾸다가 처참한 죽음을 맞은 것처럼 말했다. /연합뉴스

제주도민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고, ‘통일정부 수립’을 꿈꾸다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일까. 노무현 정부 당시 발표한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 결론은 4·3사건을 ‘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536쪽)으로 정리한다. ‘통일정부 수립’은 1948년 4월3일 ‘무장봉기’를 일으킨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350명이 내건 슬로건이었다는 것이다(534쪽). 무장폭동을 일으킨 ‘남로당 무장대 350명’이 내건 슬로건이 어떻게 ‘제주도민의 꿈’으로 둔갑할 수 있나. 보고서가 추산한 제주도민 희생자는 2만5000명~3만명이다. 이 많은 제주도민이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투쟁하다 희생됐다는 말인가.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만든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이하 보고서)는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위원회 구성의 편향과 남로당의 비인도적 행위보다 정부의 과잉진압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보고서’만 훑어봐도, 4·3사건이 제주도민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①남로당 무장대의 지서·우익단체 습격

4·3 사건은 1948년 4월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350명이 제주도 내 24개 지서 중 12곳과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소총과 수류탄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죽창이나 몽둥이, 칼로 무장했다. 요구 사항은 단선(單選)·단정(單政) 반대, 통일 정부 수립 촉구와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 중지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이를 반대하기 위해 ‘무장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4·3보고서’는 당시 남로당이 행동 개시와 함께 뿌린 삐라 2종을 소개한다. ‘반미구국투쟁에 호응 궐기하라’ ‘매국 단선 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독립과 완전한 민족해방을 위하여!’ 미(美)군정에 대한 저항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반대를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무장대 습격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신엄지서 관내 구엄리였다. 무장대는 우익인사를 잔인하게 죽였다. 10대 딸 2명까지 살해했다. 이날 구엄리에선 우익인사와 가족 5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구엄리 숙소에 있던 경찰관 1명은 칼과 죽창에 열네곳이나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 ‘4·3 보고서’에 적힌 내용이다. 4월3일 하루에만 경찰 4명, 우익인사 등 민간인 8명이 죽었다. 부상자는 경찰 6명, 민간인 19명이다. 남로당 무장대도 2명 죽었다. 4·3이 피켓 시위가 아니라 피비린내나는 유혈 폭동으로 시작됐다는 얘기다.

②대한민국 정부 수립 위한 5·10 총선거 반대 투쟁

‘단선(단독선거)·단정(단독정부)’ 수립 반대가 무장대의 주요 목표였기 때문에 5·10 총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테러는 계속됐다. 선거관리사무실을 습격해 선거인 명부를 탈취하거나, 선거 관리 요원과 공공기관장을 테러로 죽였다. 무장대는 투표 며칠 전부터 주민들을 산으로 올려 보내 선거를 보이코트하게 했다. 투표 당일인 5월10일 중문·성산·표선·조천면 등 투표소가 습격당한 곳도 많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투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주도 선거구 3곳 중 북제주 갑·을 2곳은 투표자 미달로 선거가 무효가 됐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5·10 선거를 거부한 지역으로 남게 됐다. 남로당 의도대로 4·3은 굴러갔다.

③북한 정권 수립을 위한 지하선거와 김달삼의 월북

남로당의 다음 목표는 북한 정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대의원 선출 지하선거였다. 5·10 총선을 통일정부 수립을 막는 단독선거라고 공격한 남로당은 7월 중순부터 남쪽 주민들을 이 지하선거에 투표하도록 내몰았다. 남로당 무장대는 제주도 주민들을 강요해 백지에 이름을 쓰거나 손도장을 받아가는 형식으로 진행됐다(4·3보고서 237쪽). 제주도 유권자 85%가 참여했다는 지하선거는 이렇게 이뤄졌다. 제주도 대표 6명을 포함한 남쪽 대표 1002명은 월북해 8월21일부터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했다. 여기엔 제주도 무장대 총책 김달삼도 끼어 있었다. 김달삼은 5·10 선거를 보이코트한 무장대의 ‘전과’ 등을 길게 설명하고, ‘민주조선 완전자주독립만세! 우리 조국의 해방군인 위대한 소련군과 그의 천재적 영도자 스탈린 대원수 만세!’를 외치며 연설을 마쳤다(보고서 240쪽).

④‘통일정부 수립’은 남로당의 정치 선동

4·3 사건이 통일정부 수립운동이란 건 남로당에나 해당하는 얘기다. 남로당 무장대가 내건 ‘단선·단정 반대’와 ‘통일정부 수립’ 슬로건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반대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한 정치 선동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제주도민이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꿈을 꾸다 처참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된 것처럼 말했다.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4·3 추념사를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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