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봐라" 배려없는 온라인강의..시각장애인은 서럽다

이기상 2020. 4. 5. 12: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애 학생 "실기 레슨 직접 촬영해야"
"카메라 각도 맞추는 게 가장 힘들어"
"PPT 자료는 음성 형태로 지원 안 돼"
'손들기 버튼' 못 눌러 토론 참여 못해
"장애학생 모여 관련 설문 취합 중"
"완료되면 대학교에 문제 제기할 것"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강의를 대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16일 오전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노트북 등을 이용해 강의를 듣고 있다. 2020.03.16. hgryu77@newsis.com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으면 교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여기', '저기' 하시면서 지시어를 쓸 때가 많다. 나 같은 시각 장애학생들은 그럴 때 그게 무엇인지 볼 수 없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경기도 소재 한 대학교 예체능계열학과에 다니고 있다는 양하은(23)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지난 3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시각장애인으로서 온라인강의를 하는 고충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양씨는 이 대학교에 2017년도 입학해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양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학교가 온라인 개강을 하면서 이처럼 곤란한 상황을 자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양씨가 다니는 학과는 악기를 다루는데, 온라인 개강 이후에는 '줌'이라는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기 레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양씨는 "학과 특성상 수업 중 실기 레슨을 많이 받게 된다"며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을 직접 촬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카메라로 저 자신을 비추기 위해 각을 맞추는 게 너무 어렵다"고 덧붙였다.

PPT 자료를 이용한 수업을 들을 때도 고충이 많다고 전했다. 양씨는 "영상에서 PPT 자료를 활용한 수업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런 시각 자료를 볼 수 없다"고 전했다.

시각 장애학생들은 컴퓨터를 이용할 때 '스크린리더'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한다. 스크린리더는 컴퓨터에서 커서를 갖다 대면 그 부분의 활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양씨는 "수업 중 제시되는 PPT 자료가 스크린리더와 호환이 안 돼 읽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시각 자료를 띄워놓을 때는 교수님이 해당 자료를 설명하는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수강 학생 중 장애학생이 있을 때 교수가 사소한 배려도 못 할 때가 많다며 관련 매뉴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강의를 대신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16일 한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노트북 등을 이용해 강의를 듣고 있다. 2020.03.16. hgryu77@newsis.com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양씨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으면 교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여기', '저기' 가리키면서 지시어를 쓸 때가 많다. 만약 대면 강의였다면 도우미가 옆에 있거나, 제가 바로 물어볼 수가 있다"면서 "그런데 (온라인 수업을 할 때는) 일일이 찾아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지시어 사용을 피해달라고 요청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양씨는 장애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을 때 주의해야 할 권고 사항을 정리해 매뉴얼로 마련한다면 이런 문제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장애학생들은 양씨처럼 일반 학생과 같은 등록금을 내고도 대학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 듣는 불이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강의에 쓰이는 플랫폼이 스크린리더와 호환이 안 돼 재생버튼조차 누를 수 없는 경우가 하나의 예다.

양씨는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이 온라인 강의 사이트의 재생 버튼 등을 읽어주지 못하니 지역 장애인 센터에서 해당 강의 녹화를 떠 학생에게 보내고, 학생은 그렇게 수업을 들은 후 교수님에게 강의를 들었다고 메일을 보내야 출석체크를 받을 수 있다"면서 "장애학생들이 강의를 듣기까지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전했다.

그 밖에도 수업에서 진행되는 토론 수업에 참여하려면 '손들기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이 버튼을 찾을 수 없는 시각 장애학생들은 애초에 토론 참여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실시간 채팅으로 이어지는 수업은 스크린리더로 채팅 내용 하나하나를 읽어들여야 하는 장애학생이 채팅 속도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양씨 등 장애학생은 이런 문제에 대해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지난 3일 '한국시각장애대학생회 비대면 강의 접근성 TF'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 단체 결성에 참여한 서울 소재 대학교 3학년생 조은산(23)씨는 "장애학생들이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겪은 불편 사례를 모으는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라면서 "자료가 완성되면 이런 사항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영향력 있는 대학교 유관 단체에 문제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씨는 "불편 사항을 견디다 못해 휴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온라인 개강이 모두에게 생소하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희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wakeup@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