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유학생 "삼각김밥으로 버텨도, 안 돌아간건 최고 선택"

정진호 2020. 4. 6.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생존기
서울 건국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미국 국적의 게릿 나이트(27)와 마거릿 콤튼(20). 정진호 기자

1월 한국에 들어온 게릿 나이트(27)와 마거릿 콤튼(20)은 국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될 때 미국에 돌아가지 않은 것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으로 꼽는다. 게릿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마거릿은 미시간 출신으로 모두 한국에 유학 온 미국 대학생들이다.


"마스크 한국서 처음 써"
지난달 30일 서울 건국대 캠퍼스에서 만난 게릿과 마거릿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미국‧유럽 등 서구권에서는 환자만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게릿은 “한국에 와서 코로나19 문제를 겪기 전까지 마스크를 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처음 마스크를 쓸 때는 상당히 답답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나와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말이 서툴어 일회용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는 마거릿은 “일회용 마스크 대신 면 마스크라도 꼭 착용하려고 한다”며 “깨끗하게 빨아서 착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는 외출 필수품이 마스크다”고 말하며 웃었다.

게릿은 “한국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고도 했다. 그는 “처음엔 마스크를 까먹고 집에 나갔었는데 그럴 때마다 경계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다시 집에 들어가 마스크를 챙겼다”며 “거리에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건 미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게릿 나이트(27). 게릿 제공



美 대학 총장까지 귀국 권유
게릿과 마거릿은 2월엔 가족은 물론 미국의 본 소속 대학 총장으로부터도 귀국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고민했지만 결국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게릿은 미국 대학 측에 보낸 ‘한국에 남아야 하는 이유’라는 이메일을 보내 "한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알렸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게릿은 “지금껏 과제나 시험으로 수백편의 에세이를 썼는데, 그 어떤 에세이보다도 공들여서 이메일을 썼다”고 했다.

마거릿 역시 2월부터 학교와 가족을 설득한 끝에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 남아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 있는 지인들을) 걱정하게 하던 처지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전세가 역전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속도로 늘면서 5일 오전(한국시간)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30만8850명에 이른다.


"지금은 미국의 가족 걱정"
게릿과 마거릿은 인터뷰 내내 미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 한국보다 미국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게릿은 “새크라멘토에 계신 어머니가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놀라고 힘들어하신다.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걱정이 된다”며 “마스크는커녕 통조림 같은 식료품까지도 사재기로 인해 부족한 상황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마거릿은 ”미시간도 비슷한 상황이다“며 ”음식점이나 술집은 전부 문을 닫고 약국 등 일부 상점만 영업 중이다“고 전했다.


"백인 친구와 식당 쫓겨나"
게릿과 마거릿은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미국에서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한국 사람들의 경계하는 시선을 더 자주 느낀다고 한다. 겉으로는 출신 국가와 입국 날짜를 알기 어려워서다. 게릿은 “이탈리아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백인 친구들과 식당에 갔다가 입장을 거부당하는 일이 있었다”며 “식당 주인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속상했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마거릿 콤튼(20). 마거릿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수업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한국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사라진 점도 이들이 겪는 고충이다. 마거릿은 “한국 친구를 사귀고 한국어도 배우고 싶은데 그럴 수 없게 됐다”며 “한국 친구가 없어 기숙사에서 사이버 강의만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좋아해 유학까지 결심했다는 게릿은 "이전에 한국에 왔을 때만큼 활발하게 놀 수가 없어 아쉽다"고 했다.


주식은 삼각김밥과 라면
외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게릿과 마거릿의 주식은 각각 삼각김밥과 라면이다. 게릿은 “거의 밥을 혼자 먹다 보니 비싸기까지 한 식당엔 가기 어렵다”며 “삼각김밥을 주로 사 먹는다”고 했다.

게릿은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삼각김밥만큼은 정확히 발음했다. 마거릿 역시 “기숙사 밖에 나가는 일이 많지 않다”며 “방 안에 라면을 잔뜩 쌓아 놨다”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 중앙일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알리고 싶은 사연 등을 보내주시면 기사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제보 메일 : joongangjeb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