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핀란드의 마지막 SOS..한국SCL에 코로나 검사 부탁

최준호 2020. 4. 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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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서울의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이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연구소에서 병원으로부터 의뢰받은 혈액을 검사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최근 핀란드인들의 코로나19 감염 검체를 분석해 제공했다.김상선 기자



'24시간 내' 요구하자 12시간 만에 해결

지난 2일 오전 10시 반, 인천공항에 핀란드 국적 핀에어 화물 전세기가 도착했다. 5중 특수포장된 크지 않은 화물이 비행기에서 내려졌다. 미니밴 카니발로 갈아탄 이 화물은 40㎞ 떨어진 경기도 수원 광교에 자리한 SCL서울의과학연구소로 직행했다. 화물의 정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핀란드 국민들의 검체였다. 검사는 핵산 추출과 증폭 과정을 거쳐 RT-PCR 장비를 통해 분석에 들어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검체를 의뢰한 핀란드 메이라이넨병원에 검사결과를 보낸 시각은 이날 오후 11시. 한국 도착 후 24시간 안에 결과를 보내야 하는 계약조건을 절반 잘라 12시간여 만에 해결했다.

코로나 팬데믹 속 진단키트 수출로 주목받은 K바이오가 다시 한 번 도약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고 있는 핀란드가 진단키트 수입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아예 유증상자들의 검체를 한국으로 보내 진단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외국 코로나19 검체를 한국에서 진단하는 첫 사례다.

지난 3일 오후 SCL서울의학과학연구소가 있는 수원 광교를 찾았다. 광교호수 옆 흥덕IT밸리 타워동에 자리잡은 SCL에는 첨단 진단장비와 시설들이 가득했다. 검체에서 핵산을 분리하는 핵산 추출실은 살균을 위한 자외선 조명과 음압시스템으로 꾸며져 있었다. 5개층 전체면적 1만6500㎡(약 5000평)가 검사 및 연구공간으로 돼 있어, 단일건물 규모로는 국내 최대 진단검사 시설이다. 금요일 늦은 오후였지만, 음압시설 등 SCL서울의과학연구소 내에는 검사인력들로 분주했다. 검사키트는 한창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씨젠과 코젠바이오텍 제품이었다.

김정환 인사기획담당 이사는 “국내는 물론 핀란드에서도 진단 검사 의뢰가 계속 들어오는 바람에 검사 장비도 늘리고, 직원도 새로 뽑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 헬싱키 국제공항 직원들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채 여행객들에게 코로나19 관련 주의사항을 애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핀란드 "한국 진단검사 정확하고 빠르다"

‘북유럽의 모범생’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소문난 핀란드가 왜 자국민의 코로나19 검체를 한국으로 보내야 했을까.
인구 550만 명의 핀란드에 첫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 1월29일. 중국 우한에서 온 32세의 중국인 여성 관광객이 발열 증세를 보여 검사한 결과 양성 판정이 내려졌다. 이 여성은 다행히 핀란드의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음성 판정을 받고 2월5일 퇴원했다. 이후 3월초까지 핀란드에서는 확진자가 크게 늘지않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핀란드인들이 하나 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4일(현지시간) 현재 핀란드의 확진자 수는 1882명, 사망자 수도 25명까지 늘어났다.

임환섭 SCL서울의과학연구소 대표원장은 “지난달 20일 저녁에 갑자기 국제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며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생각했는데 핀란드 메이라이넨 병원의 하티알라 이사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사람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핀란드 전국의 코로나19 진단 검사 능력이 하루 2000건에 불과한데, 유증상자들이 급증하고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한국 등으로부터 진단키트를 수입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키트를 읽어들일 RT-PCR 분석장비가 부족했다. 핀란드는 진단장비 도입도 서둘렀지만 설상가상 전세계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는 시점이라, 결국 장비 도입 차제가 무산됐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비행기로 외국에 검체를 실어보내 검사를 하는 방법만이 해결책이었다. 마지막 SOS를 한국에 요청한 셈이었다. 핀란드는 애초 진단검사 요청국가 대상을 한국과 중국ㆍ일본으로 정했지만, 중국은 이미 진단검사에 오류가 많다는 평가가 내려진 상태였고, 일본은 자국 수요도 못 맞추는 상황이라 한국으로 대상을 좁혔다.

핀란드 국적기 핀에어 여객기. [연합뉴스]



한국은 코로나 피크 지나 검사 여력 있어

핀란드의 검체가 처음 도착한 것은 국제전화가 온 지 열흘 뒤인 3월29일. 오후 1시 화물기편으로 100개의 검체가 도착했다. SCL서울의과학연구소는 7시간만인 오후 8시에 e-메일로 결과를 바로 보내줬다. 알고 보니 이날의 검체 100개는 한국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핀란드 메이라이넨 병원은 기존에 진단검사를 의뢰해온 에스토니아의 기업 신랩과 SCL 양쪽에 똑같이 검체를 보냈다. 결과는 한국의 완판승. 임 원장은 “검사결과를 보낸 다음날 핀란드에서 연락이 와 신랩과 계약을 해지하고 앞으로 검사물량 전부를 SCL로 보내겠다고 알려왔다”며 “SCL과 신랩의 검사결과를 환자 증상과 맞춰보니 SCL의 분석이 정확했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전세계로 진단키트를 수출하고 있는 마당에 외국에서 보내오는 검체를 국내서 진단까지 하기 시작하면 정작 국내 검사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임 원장은 “현재 코로나 19 검사 처리능력이 1일 6000건 정도인데 1만 건도 가능하도록 인력과 장비를 준비해놓은 상태”라며 “최근 하루 검사량이 2000~2500건 사이라 여유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최근 외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SCL서울의과학연구소와 같은 국내 진단검사 기관들에 공문을 보내, 해외에서 코로나19 검체 검사를 의뢰할 경우 정부에 신고하고, 허락을 받은 후 응할 것을 요청했다. 자칫 무리하게 외국의 검사 의뢰를 받아들이다가 국내 검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국내에는 현재 SCL서울의과학연구소 외에도 하루 1만 건의 검사를 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씨젠의료재단과 이원의료재단ㆍ녹십자ㆍ삼광 등이 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관계자는 “최근 국내 코로나19 유증상자와 확진자가 줄고 있어 검사에 여력이 많은 편”이라며 “외국에서 검사 의뢰가 온다 하더라도 받아주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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