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막고 방심한 미국의 탄식 "진주만 같은 순간 온다"

황준범 2020. 4. 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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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망자 1만명 육박]
"중국 차단해놓고 국내 대비에는 시간 허비"
사태 초기 "미국인 감염 위험 낮아" 저평가
1월말 중국발 입국 막고, 진단·장비 준비는 소극적
중앙정부-주정부 긴밀협력 안 되는 점도 문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연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언론 브리핑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발언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전세계 코로나19 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감염자 수가 5일 밤 존스홉킨스대 집계로 33만7600여명에 이르렀다. 전세계 감염자(127만4900여명)의 약 26%가 미국에서 나오는 셈이다. 미국은 사망자도 9600여명으로, 1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사태가 아직 오르막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일원인 제롬 애덤스 공중보건서비스단장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향후 1주일을 “진주만과 9·11 같은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역사상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진주만 피습과 2001년 뉴욕 테러처럼 “대부분의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슬픈 주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두고 미 언론은 “미국은 바이러스 대유행에 대비하기 전 몇 개월을 허비했다”(<에이피>(AP))고 지적한다. 정부 당국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간과했고, 대비·대응도 느렸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에 대해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통해 공식 보고받은 것은 1월3일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미국은 중국에 있는 미국인들을 송환하는 문제에 주로 집중하고, 바이러스가 미국까지 번질 사태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2월7일 중국에 인공호흡기·마스크 등 의료용품·장비를 보낼 정도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당국자들 모두 2월 말까지도 “미국인들 감염 위험성은 낮다”,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3월 중순 들어서야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에 대한 대량 주문 계약을 맺었다고 <에이피>가 보도했다.

미국의 초반 대응이 ‘봉쇄’에만 맞춰졌던 점도 지적된다. 미국은 중국 상황이 심각해지자 1월말 중국으로부터의 미국 입국을 차단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선제적·성공적 조처로 자랑해왔다. 하지만 중국 봉쇄를 통해 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봉쇄와 동시에 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배포로 적극적 검사에 나서고, 병원들도 환자 유입에 대비해 의료 장비·물품 등을 갖추는 등 준비를 해야했다고 지적한다. 에볼라 대응에 관여했던 제리미 코닌딕 미 세계발전센터 선임연구원은 “시간을 벌었으면 준비하는 데 써야한다. 그런데 뭘 했냐”며 “봉쇄가 바이러스 전파의 동력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도 그걸 중얼거리는 건 미친 짓”이라고 <타임>에 말했다.

더구나 미국은 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 초기에 오류를 일으켜, 대응에 필수적인 검사를 지연시켜 사태를 키웠다. 미 정부는 진단키트 부족으로, 초기에는 감염 지역에 다녀왔거나 환자에 노출된 사람 등으로 검사 대상을 제한했고, 그 사이 번지는 감염을 잡아내지 못했다. <타임>은 미국의 확진자 수가 초기에 적었던 것은 중국을 봉쇄해서가 아니라 검사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확진자가 2000명을 넘어선 3월13일에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한국식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를 설치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존의 여유 있던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그 뒤 민간기업들에 인공호흡기 등 의료 장비를 생산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국방물자생산법에 서명하고도 실제 발동은 지난 2일에야 하는 등 계속 늦게 움직였다.

연방제의 성격에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까지 겹쳐, 중앙정부와 주정부들의 협력이 매끄럽지 못한 점도 대처를 어렵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료장비·물자 지원을 요청하는 주지사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지난 3일 “연방 비축량은 각 주들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라고 말해, 연방정부와 주정부를 편가르는 듯한 인식을 드러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의료장비 확보를 위해 각 주들과 경쟁하는 상황을 일러 “50개 주들과 이베이에서 경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욕주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전날보다 8327명 늘어난 12만231명, 사망자는 594명 늘어난 4159명을 기록했다. 뉴욕에서 신규 사망자 규모가 처음으로 감소했지만, 쿠오모 주지사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며 성급한 낙관론을 경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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