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팬이에요" 쏟아진 DM 수백통, 그놈들 놀이였다 [영상 인터뷰②]

문지연 기자, 김유진 인턴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2020. 4. 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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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장의사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
피해자와 '박사' 조주빈이 처음 나눈 텔레그램 대화. 조주빈은 피해자의 사진 등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신분증을 요구했다. 박 대표 제공


[영상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6년 차 디지털장의사인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를 찾아온 의뢰인 10명 중 6명은 불법 촬영을 당했거나 리벤지포르노(보복성 영상물 유포)로 고통받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박사’ 조주빈의 협박을 받아온 피해자 2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박 대표는 조주빈과 접촉했고 텔레그램 관전자들의 IP를 추적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조주빈이 검거됐고 공범 일부가 잡혔다. 경찰 수사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지금은 피해자 회복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가 인터뷰 도중 대뜸 “이걸 꼭 좀 써달라”며 한숨을 쉰 것도 같은 말을 하기 위한 거였다.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가까이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는 왜 두려움에 떨어야 하나

박 대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이번 텔레그램 사건이 알려지자 ‘그걸 왜 찍어 보냈지?’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더라”며 “절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조주빈과 대화하고 피해 정도를 목격한 뒤 느낀 건 ‘나라도 그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노출돼 있었다. 박 대표가 목격한 일부 과정은 이랬다. 피해자 개인 SNS에 올라온 사진을 유출하는 걸 시작으로 가해자들의 범행은 시작된다. 그러다가 피해자의 SNS에 몰려간다. 집단으로 팔로우 신청을 하고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낸다. “당신 팬이에요”라는 정체 모를 말을 남기기도 한다. 피해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그들만의 ‘놀이’였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피해자가 SNS 계정을 폐쇄하면 가해자들에게는 그것마저 흥미로운 뉴스가 됐다. “탈퇴했더라, 재밌다”며 피해자의 근황을 다시 찾아 나선다. 학교나 직장, 집 주소, 전화번호까지 캐내 퍼뜨리는 악질이 있는가 하면 그 정보를 받아 피해자를 찾아간 뒤 몰래 사진을 찍기도 한다. 박 대표는 “그저 관전자였던 사람도 점점 변질돼 피해자 신상을 캐내고 열광한다”며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끔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단순히 음란물을 유포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주빈의 경우 금전적 이익을 위해 이 과정을 더욱 더 악랄하게 꾸몄다. 박 대표는 “대부분이 무료로 공유되지만 ‘박사’는 더 엽기적이고 가학적인 걸 만들어 사람들의 지갑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받은 조주빈의 메시지 일부. 그는 사진을 보내지 않으면 신상정보를 유포한다는 말로 피해자를 협박했다. 박 대표 제공


의지할 곳 없는 피해자, 지나치는 골든타임

디지털장의업체 문을 두드린 피해자들은 의지할 곳이 없음을 호소했다고 한다. “당장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1분1초가 지옥 같다” “내가 사라져야 끝날까”라는 말을 털어놓는 건 당연했다. 박 대표는 “정말 많이 힘들어한다. 불안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며 “삭제를 부탁하는 건 당연하고 범인을 잡아달라는 말까지 한다다”고 회상했다.

경찰서를 먼저 찾는 피해자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가 “해외 서버라서 못 잡는다”는 답변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 대표는 “고소장조차 못 쓴다. 좌절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오는 것”이라며 “한번은 가해자 IP를 특정했다고 했더니 엄청 기뻐하며 ‘조금이나마 체증이 풀린다’고 하더라. 경찰서에서는 잡을 수 없다는 말만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사회가 피해자들의 충격을 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그러다 보니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알릴 수 없고 경찰은 소용없을 것 같으니 고민만 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변수는 있지만,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오늘 움직이는 것과 일주일 뒤 움직이는 건 큰 차이를 부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상황을 인지했다면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망설임 없이 찾아야 할 곳은 피해자지원센터”라고 당부했다. 두 번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박 대표는 “방심위 신고란에 음란물이 유포된 URL을 입력하면 24시간 안에 채증이 이뤄진다”며 “디지털장의업체를 찾아오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에 숨은 ‘그놈들’ 다 잡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시급한 건 유포된 성착취물을 빠른 시일 내에 삭제하는 것이라고 박 대표는 말한다. 그는 “정부가 삭제 작업에 주력해야 한다. 피해자 회복을 위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특별지원단’을 구성해 텔레그램 사건 피해자에 대한 종합적 지원에 나서겠다고 지난 1일 밝혔다. 피해물을 삭제하는 업무도 전담한다. 그러나 텔레그램 내 관전자 규모가 큰 만큼 전문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가해자들의 엄벌을 강조했다. ‘모든 관전자를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크다’는 말에는 “다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구경을 했든 구매를 했든 모든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며 “성착취물을 서로 주고받고 공유하는 과정에 빈틈이 없을 리 없다. 그 취약점을 노렸고 추적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직접 찍고 유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그걸 보고 웃음거리로 삼는 자체가 가해”라며 “피해자가 내 동생 혹은 누나가 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모두 처벌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지연 기자, 김유진 인턴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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