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중국發 감염자 미스터리

박은호 논설위원 2020. 4. 8. 03: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외 유입 감염자 802명 중 중국發 감염자 17명뿐
게놈 정보로 경로 파악 가능한데 콩고 공유정보 36건, 한국 12건뿐
박은호 논설위원

뉴욕타임스(NYT)가 중국이 자국 내 첫 코로나 환자 발생을 발표한 작년 12월 31일 이후 미국에 들어온 중국발 입국자가 43만명이라며 "2월 초 입국 금지한 것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썼다. 미국은 요즘 하루 확진자 3만명, 사망자 1000명에 누적 환자는 세계 최고다. NYT 기사엔 중국을 향한 원망이 느껴진다. 우리 정부도 최근 해외 유입 감염을 부쩍 강조한다. 유럽·미국발 감염이 많다는 것이다. 중국발 감염 우려가 높던 올 1~2월엔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그런 지적이 나오면 오히려 "한국인이 중국에서 감염원을 갖고 온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중국 눈치를 봤다는 걸 모두가 안다.

정부 보도자료를 볼 때마다 중국 관련 통계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든다. 7일 현재 확진자 1만명 가운데 802명이 해외에서 유입됐다며 이 중 중국발 감염자가 17명(2%)이라고 한다. 300~ 400명인 유럽·미국발 감염자의 5% 수준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중국에선 올 1~2월, 유럽·미국은 3월 들어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중국발 입국자는 오히려 유럽·미국의 2~10배 더 들어왔다. 그런데도 중국발 감염자가 훨씬 적다니 통계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정부 역학(疫學) 조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역학조사는 감염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환자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감염됐는지 감염자 진술을 듣고 동선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감염자보다 바이러스 족적을 따라가는 게 더 정확하다. "A가 B에게서 감염됐다면 두 사람의 바이러스 게놈(유전체) 정보엔 반드시 공통점이 있다. 게놈 정보를 알면 환자가 감염된 시기와 지역은 물론 누구에게서 옮았는지도 알 수 있다. 사람과 달리 게놈 정보는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게놈 전문기업 테라젠바이오 김태형 수석연구원)

게놈 분석을 세계 많은 국가가 활용하고 있다. 게놈 정보를 해독해 WHO가 운영하는 '국제 인플루엔자 데이터 공유 이니셔티브'(GISAID) 사이트에 올려 공유한다. 자국 환자의 감염 경로 파악을 쉽게 할 수 있다. 7일 오후 현재 57국에서 3000건 넘는 정보를 등재했다. 그런데 미국(621건), 영국(350건), 중국(242건) 순으로 많은데 한국은 12건밖에 안 된다.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아이슬란드(151건), 핀란드(40건)는 물론 아프리카 콩고(36건)보다 적다. 게놈 정보 해독에 드는 비용은 건당 30만원 정도라고 한다. 국내 감염 환자의 10%만 해독해도 수억원이면 된다. 이 정도만 분석해도 국내 감염자의 감염 경로, 시기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코로나 대응 국제협력 차원에서 지난달 초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11국 과학기술 장관·자문관들과 1시간가량 국제 화상회의를 열었다. 여기에서 논의된 주요 안건 중 하나가 '게놈 정보 공유 활성화'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달 열리는 WHO 총회에서 아시아 대표로 기조연설을 해 달라는 WHO 사무총장 요청에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의 3대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장·차관들도 외신 기자 브리핑 등에서 틈만 나면 강조하는 게 개방성이다. 그런데도 콩고보다 정보 공유를 안 하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현재까지 올린 게놈 정보 12건은 대부분 중국에서 감염된 경우라고 한다. 우한은 물론 베이징, 광둥성 등 중국 전역에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정보를 많이 해독할수록 중국발 감염 실태가 드러나기 때문에 정부가 게놈 해독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사실이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