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도 새내기도 아닌" 방구석 갇힌 20학번의 잔인한 봄

2020. 4. 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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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캠퍼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학가에서 ‘봄’이 사라졌다. 봄학기 개강이 모니터 속에서만 이뤄지니 캠퍼스에는 설렘도, 북적거림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아직 대학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20학번 새내기들의 허탈감이 깊어간다. 그렇다고 그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내놓으라”고 떼쓰는 것은 아니다. 새내기들 역시 현 상황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다만 무엇 하나 속 시원하지 않은 대학생활이 막막할 뿐이라고 토로한다. 봄학기를 꿈꾸며 누구보다 들떴을 새내기들은 지금 누구보다 답답하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이 오가지 않아 캠퍼스가 텅 빈 모습이다. 연합뉴스


“캠퍼스 걷는 상상했는데…4월에도 상상만”

대구 소재 대학에 입학한 A씨(20·여)는 수험생 때 대학 생활을 자주 상상했다. 특히 “동기들과 캠퍼스를 거닐거나 같이 수업 듣는 걸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월이면 현실이 될 줄 알았던 A씨의 대학생활은 여전히 상상에 머물러 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동기는커녕 고등학교 친구들도 못 만나고 있다”며 “중간에서 붕 떠버린 느낌이 커서 이 상황을 빨리 탈출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안동대 신입생 B씨(20·남)는 “오리엔테이션, 입학식, 엠티가 모두 없어졌다”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아직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대학생이란 느낌 자체를 못 느껴봤다”고 아쉬워했다.

전국 각 대학은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신입생 행사들을 취소했다. 또 개강 이후엔 각종 공지 등이 온라인 게시판이나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전달되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학년 1학기에 가장 활발한 선후배 교류, 학과 활동, 동아리 등 학내 경험에 모두 제동이 걸렸다.

강원대 신입생 C씨(20·여)는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꼭 해보고 싶었다. “입학하면 동아리 홍보 부스에 가보고 끌리는 곳에 가입할 계획이었다”며 “코로나19로 동아리 부스는 당연히 취소됐고 정보를 얻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에 동아리 활동이 가능한 상황도 아니니까 아무 곳에도 가입을 안했다”고 털어놨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신입생이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뭘 하겠다는 건지” 교수 머릿속에만 있는 강의계획

요즘 대학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수업 그 자체다.

코로나19가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자 전국 대학들은 연이어 ‘온라인 개강’을 했다. 현장 수업 없이 홈페이지나 유튜브 등을 통해 강의 자료와 영상을 올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대학들은 ‘일단 몇 주만’ 온라인 강의를 해보자는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세에 5월 혹은 그 이후까지 현장 강의를 안 하겠다는 학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유례없는 상황에 대학가는 한동안 혼란에 빠졌고 그 여파는 강의 질 하락이나 소통 부재로 이어졌다.

서울 경희대 20학번 D씨(20·남)는 “고등학생 때 보던 EBS 수업을 생각하다가 대학 온라인 강의를 보고 충격받았다”며 “굳이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고교 강의는 단원별로 체계적이었는데 대학 온라인 강의는 계획이 교수님 마음속에만 공유된 것 같다. 정확히 뭘 하겠다는 건지 학생들에게 알려주지를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주 2회 75분짜리 수업인데 강의 영상은 일주일에 하나씩만 올라온다. 정해진 수업 시간도 채우지 못하면서 등록금은 왜 똑같이 받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런 수준의 온라인 강의는 비싼 대학 등록금에 합당한 노력이 아니라고 본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또 “교수마다 온라인 강의 방식이 제각각인데 학교에선 명확한 지침을 주지 않았다”며 “학교에 가본 적 없는 새내기라 아는 선배가 없어서 어디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수들 대부분이 현장 강의를 시작하면 뭔가 본격적인 수업을 할 것처럼 말했는데 지금은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다”고 허탈해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노원구 광운대학교 앞에서 노원지역 대학생들이 수업 여건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소재 대학의 신입생 E씨(20·여)는 “온라인 강의에서는 최소한의 성의도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5개 과목을 수강하는데 이 중 3과목은 교수 얼굴도 모른다. 교수들이 영상에 등장하지 않고 컴퓨터에 띄워둔 자료를 1시간가량 거의 그대로 읽어주다가 수업을 끝냈다. E씨는 “처음엔 황당했는데 이젠 체념했다”며 웃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만 이런 게 아니니까요. 다들 똑같으니까요”

그러면서 E씨는 “학교 측에서 정확한 개선책을 말하지 않는다”며 “학교와 교수님들이 더 많이 소통했으면 좋겠다. 만약 지금처럼 1학기가 끝난다면 20학번뿐 아니라 모든 재학생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강 첫날인 지난달 16일 광주 남구 광주대학교 도서관에서 대학생들이 온라인 강의 등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속 미뤄진 개강, 월세는 꼬박꼬박”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인 상황에서 개강을 늦춰온 대학 측 결정이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자취방이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언제 갑작스럽게 개강 결정이 내려질지 모르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울상을 짓고 있다.

대구의 한 사립대 신입생 F씨(20·여)는 1월 학교 근처 자취방에 계약을 해뒀다. 새 학기면 방을 구하기 어렵다는 얘길 듣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였다. 그런데 코로나19 여파로 F씨는 가족들이 있는 본가에 머물며 온라인 강의를 듣게 됐다. 주인 없는 자취방엔 매달 40만원씩 월세가 나가는 중이다.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새내기 F씨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다시 1월로 돌아간다 해도 계약을 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상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언제 개강할지도 모르는데 부모님께서 계속 월세를 내야 하니까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기숙사 거주 예정이었던 학생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개강과 입사가 늦어진 만큼 기숙사비를 환급해달라”는 재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쳤고 이화여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은 입주가 늦어진 만큼 비용을 환급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관악 학생생활관의 경우 4월에 임시 퇴소하는 학생들에게 비용 60%를 환급하기로 하고 세부 사항을 조정 중이다. 새내기 G씨(20·여)는 “기숙사 운영에 드는 고정 비용이 있다면서 전액 환불은 어렵다고 했다”며 “학생들이 40% 돈을 지불해야 할 만큼 손실이 발생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온라인 수업이 진행 중인 경남 창원의 한 대학 캠퍼스가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가장 철없고 행복한 시절인데”

이미 1학년 시절을 보낸 재학생들은 입을 모아 “새내기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새내기 봄학기에만 누릴 수 있는 행사나 인간관계 등 모든 경험이 시작도 전에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대학 4학년 H씨(25·여)는 “새내기 시절 때 저는 가장 철없고 어리숙했지만 또 그만큼 가장 순수하게 행복했다”며 “그런 한 학기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속상할 일”이라고 공감했다. 이어 “이번 학기가 대학생활의 전부는 아니니까 코로나19가 끝난 후 학교에 와서 2배, 3배 더 즐겁게 생활하면 좋겠다”는 응원을 덧붙였다.

서지원, 김유진, 유승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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