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시대.. 反세계화 흐름 거세지나 [세계는 지금]

김민서 2020. 4. 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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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걸어잠그는 지구촌 / 인적·물적 교류 많은 관광·교육 직격탄 / 바이러스 확산으로 이동·거래 급제동 / 중국인 유학생 비중 높은 서구권 대학 / 학생 유입 감소 따른 재정 악화 불가피 / 국수주의·보호무역주의 성향 강해져 / 해외 생산기지 '리쇼어링' 활발해질 듯 / 글로벌 공급망 차질.. 경제 불황 예고 / 국제 리더십 실종.. 세계 질서 재편도
“코로나19가 세계경제에 끼치는 침울한 영향과 공급망 붕괴는 세계주의자들(Globalists) 관에 마지막 못을 박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경제전문가인 게리 실링은 블룸버그통신에 게재한 ‘세계주의자들은 곧 멸종할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코로나19가 초래할 세계화의 미래를 이렇게 일갈했다. 지난 20년간 빠른 속도로 확대됐던 글로벌 인적·물적 교류가 위축되고 비교적 임금이 싼 국가에 집중됐던 제품 생산 시설도 각국이 공급 불확실성을 차단하기 위해 역내에서 주요 제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바이러스 확산이 세계화의 부작용과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이에 따라 반(反)세계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화의 역설 드러낸 코로나19 사태…세계화 후퇴 불가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19 사태는 초연결적인 세계화시대의 취약점과 부정적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가 간 이동과 거래가 거의 없다면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을 일이 없다. 세계화시대엔 인적·물적 교류가 초국경적으로 이뤄진다.

관광과 교육이 대표적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 관광인구는 1950년 2500만명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기준 10억5000만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관광산업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2006년 관광산업 규모는 5조달러에서 지난해 9조달러로 늘어났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각국이 국경을 걸어잠그면서 이런 흐름에 급격한 제동이 걸렸다.
지난 2월 2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보호복과 방진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한 중국인 유학생들이 이동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교육부문도 마찬가지다. 특히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대학 재정 의존도가 높은 서구권 국가의 대학은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의 데이비드 헤니그 분석가는 얼마 전 영국 BBC방송에 “(코로나19에) 서비스부문은 조만간 절벽에서 떨어질 것”이라며 관광과 교육 부문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그는 “서구 대학의 올 가을학기 외국인 입학생 규모는 굉장히 심각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유학생은 수출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수많은 대학은 특히 중국인 유학생 수입에 의존하는 부분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외국인 유학생 학비는 국내 학생보다 몇배나 비싼 경우가 많고 중국인 유학생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인 유학생 감소는 곧 대학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BBC방송은 “세계화의 상당한 부분은 단순한 물자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세계화는 인적 자원과 정보 교류가 핵심이고, 이는 영국과 서방권 국가가 특히 강점을 보이는 부문”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급격하게 냉각된 가운데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금융정보 전문업체 인포맥스 직원이 코스피, 다우, 유로스톡스50, 국제유가 그래프를 비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화는 죽었다…각국 ‘리쇼어링’ 행보 예상”

전문가들이 내놓은 코로나19 이후 세계화의 전망은 우울하다. BBC방송은 이번 코로나19 이후 국수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창궐하고 각국이 경제불황을 면치 못할 것으로 봤다. 1차 세계대전 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졌던 상황과 비슷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선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무역부문에서 세계화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대두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런던경영대학원(LBS)의 리처드 포르테스 경제학 교수는 “코로나19로 공급 사슬이 망가지자 비용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국내 공급자들을 찾아 나선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바이러스 확산 사태를 계기로 해외에 공장 등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것의 위험성을 인지한 만큼 일단 국내 공급망을 찾게 되면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포르테스 교수의 전망이다. 예컨대 영국 내 주요 자동차 생산시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폐쇄됐다. 영업과 부품 공급을 다른 나라에 의존했는데 코로나19로 공급사슬이 무너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각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베아타 야보르치크 수석경제학자는 서방의 제조업체들이 해외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옮겨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이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중 무역전쟁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친 결과 서방국가의 제조업체들은 주요 생산기지를 다시 자국으로 옮길 것”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로 공급망 혼란을 겪은 애플의 경우 중국에 두고 있던 많은 사업을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투자 컨설팅업체 대표인 재커리 카라벨은 WSJ에 기고한 칼럼에서 “세계화가 정말 끝인 걸까”라고 자문한 뒤 “말도 안 되지만, 그렇다. 세계화는 죽었다”고 썼다. 그는 칼럼에서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팀 쿡이 ‘재고는 악(惡)과 같다’며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코로나19를 계기로 이런 말은 이제 통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세계화시대 글로벌 기업은 필요한 부품을 제때 현지에서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었으나 바이러스 창궐로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제조업의 3의 1을 차지하는 중국 공장이 멈춰선 이후 공급에 차질이 빚어져 2월 세계 노트북 출하량이 애초 전망치보다 약 50% 감소하고 1분기 스마트폰 생산량도 전년 동기 대비 12% 줄어들 것으로 WSJ는 예상했다.
◆“국제적 지도력 부재에 대안도 불투명”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세계 질서가 뒤바뀔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오랜 기간 초강대국 지위를 누려온 미국 정부에서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엄살로 들리지는 않는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WSJ 기고문을 통해 “코로나19 사태가 세계질서를 영원히 바꿔 놓을 것”이라며 “팬데믹 상황이 종료하더라도 세계는 그 이전과는 전혀 같지 않을 것”이라면서 “팬데믹이 끝나는 시점에 수많은 국가 기관들은 실패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각국 지도자들은 이번 위기를 국가 단위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정작 바이러스는 국경을 인식하지 않는다”며 개별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낸 커트 켐벨의 지적은 더욱 직설적이다. 켐벨 전 차관보는 브루킹스연구소의 러시 도쉬 박사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은 공동기고문에서 “코로나19는 미국의 지도력을 시험하고 있고, 현재까지 나타난 결과는 미국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지난 70년간 미국은 단순히 경제력과 힘이 아닌 거버넌스 능력과 국제적 공공재 보급, 국제적 위기 대응능력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았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는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유럽국가 간 연대는 ‘동화’ 같은 얘기에 불과하고 우리를 도울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고 한 세르비아 대통령의 발언을 예로 들며 미국은 마스크 공급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이 유럽발 입국을 금지하는 강경 조치를 도입한 여파로 2월 12일(현지시간) 뉴욕증시가 폭락세를 보이자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한 트레이더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세계적 전염병이 초래한 총체적 위기상황에 봉착했으나 국제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포르테스 교수는 BBC방송에 “금융위기 당시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1조달러 출연이라는 합의 도출을 위해 협력했지만 지금은 그런 리더십이 보이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말했다. WSJ는 “미래의 전염병에 대한 유일한 확실한 예방접종은 초국가적 협력”이라며 국가 간 협력을 강조했으나 긍정적 전망을 내놓지는 않았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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