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총선 앞두고 터진 '북한식당 집단탈북'..이번엔 '북풍' 잠잠
‘중국 내 북한식당 직원 13명 집단 귀순’
2016년 4월 9일 자 중앙일보 1면 헤드라인 제목이다. 당시 4ㆍ13 총선을 코앞에 두고 박근혜 정부가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 사실을 ‘증명사진’과 함께 공개하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홍보로 총선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막상 뚜껑을 열자 ‘북풍’(北風) 위력이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122석에 그치고 민주당이 예상과 달리 12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서면서다.
이번 4·15 총선은 ‘풍(風)’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라는 블랙홀 탓에 방송인 김어준씨마저 “이런 선거는 처음”이라고 할 만큼 선거 어젠다, 정권 심판론, 정책 대결이 실종 상태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막판 주요 변수로 자주 등장해 판을 출렁이게 했던 북한 이슈도 이번에는 거의 부각되지 않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박격포 사격훈련 지도(9일)와 항공군추격습격기연대 시찰(12일) 같은 군사 행보, 한국인에게 낯익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정치국 후보위원 복귀 및 '2인자 등극' 같은 뉴스들이 북한 관영 매체를 타고 흘러나오지만, 총선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까지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총선 투표일인 15일의 경우 북한에선 ‘태양절’이라 불리는 김일성의 생일이자 최대 명절이지만, 코로나19 방역 등으로 대규모 열병식을 하거나 전략무기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과거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선거 직전 터진 북한ㆍ안보 이슈는 보수 정당에 훈풍이 됐다. ▶1987년 13대 대선 바로 전날인 12월 15일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의 국내 압송과 이튿날 당시 여당(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의 승리 ▶1996년 15대 총선 직전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 이후 당시 여당(신한국당)의 총선 승리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 이후로는 이런 양상이 바뀐다. 북풍의 영향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역풍을 부른 사례가 많다. 2000년 4월 총선 사흘 전 당시 김대중 정부가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발표했지만, 집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원내 2당(115석)으로 패배했고, 2010년 6월 지방선거 직전 천안함 피격사건이 터지면서 보수층 결집이 예상됐지만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구호를 앞세운 민주당 승리로 마무리된 사례가 그렇다. 4년 전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건도 마찬가지다.
북풍 등 막판 ‘한 방’의 효용이 예전과 달라진 상황을 양극화된 진영 정치가 낳은 한 현상으로 보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12일 통화에서 “유튜브 등 유권자들이 접하는 미디어가 다양화되면서 북풍도 좀처럼 먹혀들지 않게 됐다”며 “과거에 ‘한 방’ 역할을 했던 숏 텀 임팩트(Short Term Impactㆍ단기 영향)보단 양극화된 세력이나 진영 논리가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그 힘을 강화하는 롱 텀 임팩트(Long Term Impactㆍ장기 영향)가 훨씬 유의미해졌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안보이슈 대신 ‘관권선거’ 프레임으로 여권을 공격하고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들어 불과 일주일 동안 경북, 제주, 강원, 인천을 방문했다. ‘왜 굳이 이 시점에’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더 자중해야 한다”(김우석 미래통합당 선대위 상근수석대변인)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코로나 19 사태 속 국난 극복론을 들어 관권 선거는 어불성설이라고 맞받아친다. 현근택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엄중한 시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힘 있고 안정된 국정 운영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열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 주셔야 한다”고 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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