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 약탈 허용하자"..中해상 견제로 별의별 생각 다하는 美

유상철 2020. 4. 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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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잡지 '프로시딩스' 4월호에 실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전문가 등 주장
"중국 약점은 GDP 38%가 무역"이란 점
'사략 허가증' 발부로 중국 상선 공격하면
"중국 경제와 사회 안정 동시에 무너져"
"평시엔 중국의 도전의지 꺾는 역할도 해"

중국의 해양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은 자국의 민간용 선박에 적선을 약탈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사략(私掠) 허가증’ 발부를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제기됐다.

미 해군 가브리엘 기퍼즈함은 연안전투함으로 수심이 비교적 얕은 연안 등에서도 기동이 용이하도록 건조된 반스텔스 전투함이다. 최근 미국에선 중국의 해양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중국 상선을 약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 환구망 캡처]


‘사략 허가증(letter of marque)’은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일종의 ‘해적’ 자격증에 해당한다. 적군의 상선을 공격해 선박과 화물을 약탈하고 일부는 국가에 세금 등으로 바친다. 과거 영국이 스페인 상선을 공격할 때 이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중화권 인터넷 매체인 둬웨이(多維)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 해군의 군사잡지인 ‘프로시딩스(Proceedings)’ 4월호에 ‘사(私)나포선을 풀어주라(Unleash Privateers!)’는 제하의 글이 실렸다.

마크 캔시안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임 연구원 등이 미 해군 잡지 ‘프로시딩스’ 4월호에 중국의 해양 확장을 막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미국 선박에 중국 상선 약탈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미 CSIS 홈페이지 캡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임 연구원인 마크 캔시안(Mark Cancian)과 과거 CSIS에서 미디어 관계를 담당했던 학자 브랜든 슈와츠(Brandon Schwartz) 등이 공동으로 썼다. 이들은 대중 매파이긴 하나 중량급 인사여서 반향이 일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 해군 전략가들이 부상하는 중국 해군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더 많은 전함과 전투기를 건조해 중국을 압도적으로 누르는 것이다.

미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은 지난달 중순 남중국해에서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함 등과 함께 합동 훈련을 벌여 중국을 자극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제한된 국방 예산으론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선 중국은 취약하지만, 미국은 덜 취약한, 즉 중국의 비대칭적 약점을 찾아야 한다.

그중 하나가 중국의 상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8%가 무역에서 나온다. 반면 미국은 9%에 불과하다. 중국의 무역의존도가 훨씬 높으며 이를 지탱하기 위해 중국은 대규모 상선을 거느리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해군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자주 해상 사열에 나서 중국 해군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현재 중국 대륙은 2112척, 홍콩은 2185척이 글로벌 선단을 꾸리고 있다. 중국의 원양 어선도 2500척에 이른다. 반면 미국의 상선은 246척에 불과하다. 또 주로 미국 항구를 오가는 정도다.

중국 상선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얻게 되는 이익은 막대하다. 선박과 화물을 노획하는 정도가 아니라 중국 경제가 글로벌 무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 경제를 와해시키고 최종적으론 중국 사회의 안정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소말리아 해역에 출몰하는 해적으로부터 중국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중국 시안(西安)함. [중국 신화망 캡처]


그러나 세계 오대양을 누비는 중국 상선 공격을 위해 미국 해군을 동원하기엔 문제가 많다. 미 해군 함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 6700여 척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295척으로 줄었다.

2040년까지 340척으로 늘리고 최종적으론 355척 보유를 목표로 하지만 현재 200여척 이상 되며 또 계속 전함을 건조 중인 중국 해군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따라서 미 해군의 전략가들은 과거 이용했던 '사나포선' 운영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 미 EP-3 전자 정찰기가 홍콩 상공 가까이까지 접근 비행하는 등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군사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물론 ‘사략 허가증’ 발급엔 문제가 많다. 해적 행위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적으로 반발 여론이 크게 일 수 있고 19세기 초까지 사용됐던 방법으로 현대적인 법체계와도 맞지 않는다.

또 미 해군이 지난 1815년 이후 취해 온 전쟁 방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국민에 민주주의를 약속하지 않는 중국과 같은 나라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선 기존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며 그 방법의 하나가 ‘사략 허가증’ 발급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미 해군의 연안전투함 가브리엘 기퍼즈함은 섬이 많은 남중국해에서 작전하기에 최적으로 중국 견제에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환구망 캡처]


이들은 미 헌법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 헌법은 의회에 이 같은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했으며 노획된 선박과 화물 처리에 관한 노획품 처리 법률이 이미 미국 법전에 정리돼 있다고 한다.

또 미국은 사적인 군사 영역이 발달해 있어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미 정부가 따로 돈을 내 선원과 선박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 상선을 노획하면 큰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자원에 나설 민간 선박과 선원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쿵징 조기경보기. 중국은 최근 젠 전투기와 훙 폭격기, 쿵징 조기경보기 등을 대만 상공 가까이 비행시키며 대만에 대한 무력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뉴시스]


이들은 미 정부가 ‘사략 허가증’을 발부하면 전시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물론 평시에도 중국의 도전 의지를 꺾을 수 있어 오히려 전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익명의 한 베이징 학자는 “상선을 국가 간 충돌 시 도구로 사용한다는 생각은 국제관계사에서 드문 경우이며, 일부 미 매파 인사의 극단적인 환상으로 미 정부의 정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둬웨이는 보도했다.

남중국해에서 자주 훈련을 벌이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 시오도어 루스벨트 항모엔 B-52 폭격기가 탑재돼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그러나 중국 내 일각에선 미 정치 엘리트들이 이 같은 해적 행위를 합법화하자는 건의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 자체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라고 둬웨이는 전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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