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옐로카드 선거

김대중 칼럼니스트 2020. 4. 1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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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은 선수 퇴장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반칙에 대해 옐로카드 주느냐 여부
나라의 존재·정체·미래 위해 국민이 스스로 정리할 시간
김대중 칼럼니스트

이번 4·15 총선의 최대 변수는 무당층 또는 중도(中道)라고 한다. 근자의 한국 정치처럼 적대적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결국 결정권은 20%에서 30%에 이르는 무당층이 쥐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또는 좌우의 ‘확신자’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 표의 행방은 이미 결정돼있다. 따라서 무당층 또는 중도의 표심을 겨냥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당층이 선거판을 보는 관점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뉜다. 사람들은 나라가 큰 재난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정이 급박하고 불안정할 때 '안정' 쪽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중간에 말을 갈아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다. 문제는 이런 심리가 집권자나 집권 세력에 의해 악용(惡用)된다는 데 있다. 마치 자기들이 잘해서, 잘나서 칭찬받는 줄로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포장한다. '그것 봐라, 국민이 우리를 전폭 지지하지 않느냐'며 기고만장해서 난폭 운전을 계속 하게 된다. 결국 '안정'을 바라는 국민의 정서를 기만하거나 배신하는 것이다. 전염병 등 재난은 조만간 종식되지만 내일의 '한 표'는 오랫동안 남아 우리 모두를 괴롭힐 수 있다.

무당층의 또 다른 관점은 이 난국에 야당이 과연 나라를 리드할 능력이 있는가, 야당의 지도자는 믿을 만한가, '저 사람들에게 맡겨도 되는가' 등에 회의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번 4·15 총선은 야당의 능력을 묻는 선거가 아니다. 야당이 잘나서, 정권 담당 능력이 있어서, 정책이 훌륭해서, 또는 야당의 지도부가 유능해서 찍어주는 선거가 아니다. 야당의 무능·불능 문제는 2년 후 정권 교체를 다루는 대선(大選)에서 물으면 된다.

내일 있는 선거는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다.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는 선수(집권 세력)의 퇴장을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고 반칙에 대한 옐로카드를 줄 것이냐를 결정하는 자리다. 선거에서 패배해도 문 정권은 그대로 있다. 적어도 2년은 그렇다. 다만 더 이상 나라의 경제를 파탄 내고, 안보를 멋대로 재단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좌파 이념 몰이'는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는 중간 평가의 자리다.

우리는 지난 3년간 문재인 대통령을 알 만큼 알아왔다. 매일 보고 듣고 살아왔다. 결론은 문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는 경제정책의 잘못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는 탈원전에서 절대 후퇴하지 않는 아집을 보였다. 그는 국민 앞에 어려움을 털어놓고 솔직히 이해를 구하는 인간성을 보여준 적도 없다. 우리는 그에게서 좌파 이념에 맹목적으로 몰두하거나 좌파 집단의 포로가 돼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엇보다 그는 국민 간의 분열을 중재하고 화해를 도모하기보다 한쪽 진영의 선두에 서서 반대쪽을 힐난하는 정파 게임을 즐기는 듯하다.

이런 대통령이 수장(首長)으로 있는 집권 세력이 앞으로 2년, 4년, 7년 나라를 쥐고 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내일 선거에서 이기면 마치 신임장이라도 받은 듯 무소불위, 안하무인, 기고만장으로 가는 문 정권의 난폭 운전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지난 3년이 하루하루 실망과 놀라움과 한탄의 연속이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들에게 엄중한 옐로카드 한 장 주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크게 홀대받은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는 옥중 서신을 통해 친박 세력에게 야권 단합을 호소했지만 정계의 친박은 박 전 대통령의 충정을 보란 듯이 배신하고 있다. 그래도 '국민 속의 친박'은 그의 지시를 존중할 것이다.

우리는 건국 후 수많은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이번 선거처럼 마음이 무겁고 결과가 두려운 선거가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지난날 선거는 여야의 대결이었고 민주화의 과정이었고 산업화의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정권 교체의 신선함과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나라의 존재, 나라의 정체, 나라의 미래를 심각히 고민하게 될 뿐이다. 어떻게 한 개의 선거가 감히 오늘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나라의 안위를 결정하는 천 근의 무게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비단 무당층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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