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방역 투표'..온 몸 꽁꽁 싸맨 외신기자도 떴다

백희연 2020. 4. 1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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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상도1동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함민정 기자

오전 6시 서울 동작구 상도1동 투표소 앞. 막 문을 연 투표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걱정된 유권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를 찾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유점례(94)씨와함께 투표를 하러 나온 정지건(75)씨는 “해방 이후 상도 1동에 살면서 투표했지만 아침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15일 오전 유권자들이 집에서 가지고 온 장갑을 보여주고 있다. 함민정 기자

줄을 선 유권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개인적으로 장갑을 준비해 온 유권자도 눈에 띄었다. 천장갑을 준비해 온 문근영(41·남)씨는 “비닐장갑은 환경오염의 우려가 있어 개인 장갑을 준비해왔다”며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에 투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70대 유권자 여성은 “골프 장갑을 끼고 왔다”며 “비닐장갑을 이 위에 또 끼면 더 안전할 것 같았다”며 웃었다. 마스크에 투명한 고글까지 착용한 한 60대 여성 유권자는 “사람 없을 때 온다고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지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방역 투표에 대다수 유권자 “안심된다”
투표 사무원들도 마스크를 하고 체온계와 비닐장갑을 들고 유권자들을 맞이했다. 유권자들은 투표장 입구에서 발열을 체크하고, 손 소독제로 소독한 뒤, 비닐장갑을 받아 착용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자체적으로 방역을 강화한 투표소도 있었다. 용산구의 투표 사무원들은 마스크와 비닐장갑 이외에도 투명한 캡 모자를 착용했다. 투표소 관계자는 “원효로2동 주민센터 차원에서 예산으로 혹시 몰라 준비했다”고 밝혔다.

투표를 하고 난 뒤, 한 유권자가 쓰레기통에 비닐장갑을 버리고 있다. 백희연 기자


유권자들 대부분은 이 정도라면 안심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9살 된 딸에게 마스크를 씌워 데리고 온 이씨(41)는 “아이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데리고 왔다”며 “그래도 방역이 철저해서 안심된다”고 말했다. 이수민(35)씨도 “막상 와보니 현장 관리가 잘 되고 있고 마스크고 쓰고 하니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왜 자꾸 붙냐” 예민해진 유권자 소동도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진행되는 선거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시민도 있었다. 상도1동 투표소에서는 한 고령 남성 유권자가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때 무슨 투표”냐며 외치는 등 소란이 벌어졌다. 투표 사무원이 체온 측정을 위해 옆으로 가자 “왜 붙냐. 열화상 카메라로 해야지 왜 체온계로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이 유권자는 다른 유권자들을 향해 “청테이프로 줄 서라고 만들어놓은 곳에 똑바로 서라”고 강하게 말하거나 투표 사무원에게 “근무자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외신 관심 커져…방호복 입고 취재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퍼진 상황에서 치르는 한국 총선은 외국 언론에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서대문구 홍제3동 투표소에는 한 외신 기자가 방역복을 입고 취재를 진행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입고 고글과 마스크를 낀 외신기자의 모습에 유권자들은 놀라기도 했다. 한 30대 남성 유권자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한데, 우리가 너무 안전 불감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서대문구 한 투표소에서 방역복을 입은 외신기자가 21대 총선을 취재하고 있다. 백희연 기자


싱가포르의 방송사 채널뉴스아시아(CNA)는 현장 생중계도 진행했다. CNA 기자는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 선거가 다 미뤄진 가운데 한국에서는 치러져서 외신들이 관심 갖는 상황”이라며 “자가격리자 투표 지침과 투표소 간격 등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백희연·함민정·남수현 기자 baek.heeyoun@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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