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방역 투표'..온 몸 꽁꽁 싸맨 외신기자도 떴다
오전 6시 서울 동작구 상도1동 투표소 앞. 막 문을 연 투표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걱정된 유권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투표소를 찾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유점례(94)씨와함께 투표를 하러 나온 정지건(75)씨는 “해방 이후 상도 1동에 살면서 투표했지만 아침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줄을 선 유권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개인적으로 장갑을 준비해 온 유권자도 눈에 띄었다. 천장갑을 준비해 온 문근영(41·남)씨는 “비닐장갑은 환경오염의 우려가 있어 개인 장갑을 준비해왔다”며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에 투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70대 유권자 여성은 “골프 장갑을 끼고 왔다”며 “비닐장갑을 이 위에 또 끼면 더 안전할 것 같았다”며 웃었다. 마스크에 투명한 고글까지 착용한 한 60대 여성 유권자는 “사람 없을 때 온다고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지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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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투표에 대다수 유권자 “안심된다”
투표 사무원들도 마스크를 하고 체온계와 비닐장갑을 들고 유권자들을 맞이했다. 유권자들은 투표장 입구에서 발열을 체크하고, 손 소독제로 소독한 뒤, 비닐장갑을 받아 착용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자체적으로 방역을 강화한 투표소도 있었다. 용산구의 투표 사무원들은 마스크와 비닐장갑 이외에도 투명한 캡 모자를 착용했다. 투표소 관계자는 “원효로2동 주민센터 차원에서 예산으로 혹시 몰라 준비했다”고 밝혔다.
유권자들 대부분은 이 정도라면 안심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9살 된 딸에게 마스크를 씌워 데리고 온 이씨(41)는 “아이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데리고 왔다”며 “그래도 방역이 철저해서 안심된다”고 말했다. 이수민(35)씨도 “막상 와보니 현장 관리가 잘 되고 있고 마스크고 쓰고 하니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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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붙냐” 예민해진 유권자 소동도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진행되는 선거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시민도 있었다. 상도1동 투표소에서는 한 고령 남성 유권자가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때 무슨 투표”냐며 외치는 등 소란이 벌어졌다. 투표 사무원이 체온 측정을 위해 옆으로 가자 “왜 붙냐. 열화상 카메라로 해야지 왜 체온계로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이 유권자는 다른 유권자들을 향해 “청테이프로 줄 서라고 만들어놓은 곳에 똑바로 서라”고 강하게 말하거나 투표 사무원에게 “근무자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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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관심 커져…방호복 입고 취재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퍼진 상황에서 치르는 한국 총선은 외국 언론에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서대문구 홍제3동 투표소에는 한 외신 기자가 방역복을 입고 취재를 진행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입고 고글과 마스크를 낀 외신기자의 모습에 유권자들은 놀라기도 했다. 한 30대 남성 유권자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한데, 우리가 너무 안전 불감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싱가포르의 방송사 채널뉴스아시아(CNA)는 현장 생중계도 진행했다. CNA 기자는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 선거가 다 미뤄진 가운데 한국에서는 치러져서 외신들이 관심 갖는 상황”이라며 “자가격리자 투표 지침과 투표소 간격 등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백희연·함민정·남수현 기자 baek.heeyoun@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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