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처참한 패배 부른 결정적 '네 장면' 바로 이것
180석(더불어민주당) vs 103석(미래통합당).
미래통합당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헌정사상 옛 집권당 계통의 보수정당이 이처럼 완벽히 패한 적은 없었다.
선거 막판 통합당 선대위가 "개헌저지선이 위태롭다"고 했던 게 엄살이 아니었다. 그나마 영남권을 중심으로 보수층이 표를 몰아줘 개헌저지선 101석을 간신히 넘겼다.
근본적인 원인은 4년째 벗어나지 못한 '탄핵의 굴레'다. 혁신을 못했고 인재수혈에 실패했고 리더십을 세우지 못했다. 속으로 곪은 병은 총선을 앞두고 민낯을 드러냈다.
공천 과정에서 터져 나온 내부갈등, 통제되지 않는 막말 논란은 위기관리에 한계를 보여줬다. 유권자들은 미래통합당에서 '미래'는커녕 과거를 읽었고 '통합'은 고사하고 분열을 봤다.
제21대 총선 참패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결정적 장면들을 복기한다.
당내 공천갈등이 이때부터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당초 고향인 경남 밀양·창녕 출마를 원했던 홍 전 대표는 양산에서도 밀려나자 결국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 출마했다.
곳곳에서 이른바 '사(私)천' 논란이 불거졌다. 공천 반발은 낙천자를 중심으로 으레 있기는 하지만 일부 지역들은 당 안팎에서도 "이상하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직 의원들이나 인연에 인연을 거치며 추천 받은 인사들을 공천하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공관위는 사천 논란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지만 황교안 전 대표는 최고위를 열어 거듭 공관위의 결정을 무효화하면서 시끄러워졌다.
대표적 친황(친황교안) 인사였던 민경욱 의원은 컷오프와 재심의, 경선 승리, 무효 위기, 재공천 등 후보 등록 마감 직전까지 롤러코스터를 탄 끝에 공천됐다.
그때마다 '무리한 공천' '민경욱 살리기' 등 당내 잡음을 다룬 부정적 기사들이 쏟아졌다. 난리법석이 무색하게 민 의원은 낙선했다.
반면 공천에 반발해 탈당했던 홍준표, 권성동, 윤상현, 김태호 등 중량급 인사들은 모두 당선됐다. 처참하게 무너진 통합당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의 역할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변곡점은 3월16일 주간이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공장이 문을 닫고 글로벌 증시가 요동쳤다. 국내 코스피 지수가 속절없이 1500선 아래로 무너진 것도 이때였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실정 비판에 집중하던 통합당에는 '골든 타임'이었다. 해결책을 내놓으며 '경제는 역시 보수'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한선교의 반란'이 터진다. 비례용 정당으로 만든 미래한국당에서 한선교 전 대표가 통합당 의사와 무관하게 공천 명단을 짜버렸다. 보수권이 발칵 뒤집혔다.
19일 한 전 대표가 물러난다. 20일 원유철 신임 대표가 당을 장악하면서 반란은 정리됐다. 하지만 통합당은 이토록 중요한 시기에 내부 갈등 탓에 이슈에 대응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내분 격화' '공천 갈등 폭발'로 점철된 뉴스를 접할 뿐 대안세력으로서 통합당의 면모를 보지 못했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기 직전인 지난달 31일 소위 '인천 촌구석' 발언이 나왔다.
정승연 인천 연수갑 후보가 자신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준 유승민 의원에게 인사치레로 "촌구석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게 문제가 됐다.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망언으로 꼽혔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에 가고 망하면 인천에 간다는 뜻)의 기억까지 소환하며 인천 민심을 뒤흔들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통합당은 인천 13곳 중에 배준영 당선인(중구강화군옹진군) 1명을 제외하고 모조리 잃었다.
1일에는 황 전 대표의 이른바 'n번방 호기심' 발언이 나왔다. 단순 참여자와 주도적 범죄 행위를 한 사람 간에 처벌 수위 차이를 일반론으로 말했을 뿐 무관용 원칙에 따른 철저한 처벌 입장은 분명하다고 서둘러 해명했지만 여파는 남았다.
전날인 6일 김대호 서울 관악갑 후보가 3040 세대를 향한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당 선대위는 '엄중 경고'로 넘어갔다.
김 후보는 바로 다음날인 7일 지역 토론회에서 "나이 들면 장애인이 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발언 자체가 너무 강했다. 당 지도부는 즉각 제명조치를 내렸다.
태풍급 논란은 8일 벌어진다. 이미 지난해 물의를 빚은 차명진 후보가 세월호 막말 논란을 또 일으켰다.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이 강하고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OOO'이란 표현을 쓴 게 결정적이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곧바로 제명하겠다고 밝혔지만 당 윤리위가 10일 '탈당 권유' 조치를 내리면서 꼬였다.
같은 날 밤 황 대표가 "더 이상 우리당 후보가 아니다"고 정치적 제명을 선언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당헌·당규상 윤리위 결정을 뒤집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연일 '차명진 막말' 관련 기사가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 와중에 10~11일 실시 된 사전투표는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통합당 후보로서 선거를 완주하게 된 차 후보는 계속 논란을 터트렸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대 민주당 후보의 플래카드 2장이 자신의 플래카드 아래위로 동시에 걸린 사진을 올리며 'OOO'이란 표현을 또 썼다. 비난이 쏟아졌다.
13일 당 지도부는 윤리위 없이 최고위를 바로 열어 차 후보를 제명했다. 최고위의 권한을 폭 넓게 해석해 적용할 정도로 다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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