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미워도 통합당엔 표 못준다" 유권자 등돌리게 한 장면

손국희 2020. 4. 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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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 등이 제21대 총선일인 15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하던 중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오종택 기자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최악의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개헌 저지선(100석)을 겨우 넘겼다. 정권 심판론이 작동하기 쉬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진보vs보수 양자 구도에서 치러진 선거였기에 더 뼈아픈 결과다.

통합당은 대구ㆍ경북(TK), 부산ㆍ울산ㆍ경남(PK)에서 56석을 얻었지만, 수도권 121석 중 16석을 얻는 데 그쳤다. 통합당이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1990년대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충청 지역주의에만 기댄 것처럼 통합당도 영남 밖에선 맥을 못 췄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통합당을 향한 싸늘한 민심엔 이유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안 세력’ 믿음 못 준 통합당
통합당은 총선 기간 문재인 정부 심판론 확산에 올인했다. 그러나 이같은 접근법은 결국 유권자들이 통합당을 '대안'으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3년간 통합당은 대안 제시보다는 공격을 통한 ‘반사 이익’을 얻는데 매몰돼 있었다"며 "정부ㆍ여당이 탐탁지 않은 유권자조차 ‘통합당은 못 찍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게 대패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 통합당 당선인도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하겠다는 메시지가 없었다”며 “‘능력 있는 정당’보다는 ‘반대하는 정당’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미래통합당 황교안 종로구 후보(왼쪽)와 유승민 의원이 1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대국민 호소 합동유세를 하던 중 대화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생긴 앙금을 걷어내지 못한 채 선거를 맞은 것도 내내 부담으로 작용했다. 올초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의 통합 과정에서도 황교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널 것인지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지난 3월 공개된 “거대 야당에 힘을 모아달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 ‘옥중서신’도 결과적으론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탄핵 사태를 초래한 보수 진영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본다”며 “통합당을 뽑으면 탄핵 책임 세력이 다시 득세할 거라는 거부감도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안정 택한 민심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투표소에서 방역관계자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 사태로 선거운동이 제한돼 ‘깜깜이 선거’라고 불렸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안정론이 대세로 확인됐다.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16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이 정부를 도우라고 한 만큼 야당도 그 뜻을 따를 것”이라고 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코로나 정국에 심판론의 기세가 먹혀들어간 형국”이라고 했다. 박명호 교수는 “코로나 극복에 관심이 집중된 유권자들에게 '조국' 소환 전략이나 정부 심판론은 기시감만 줬다”며 “선거 막판 ‘전국민에게 50만원씩 지급하자’는 식으로 나서며 곁가지 논쟁을 벌인 것은 코로나 프레임에 말려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조국 사태도 통합당에겐 양날의 칼이었다. 조 전 장관에 분노를 느꼈던 보수층과 20대 등을 겨냥한 포석이었지만, 반대 급부로 여당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아무리 먹히는 이슈라도 총선 전날까지 조국 문제를 ‘메인 디시’로 가져온 것은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막판 민심 등 돌리게 한 ‘막말’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9일 오전 국회에서 '김대호·차명진 후보의 막말'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막판 터진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텐트 발언’ 등 막말 논란은 통합당 완패에 쐐기를 박는 악재였다. ‘정부 견제론’과 ‘못 미더운 통합당’ 사이에서 갈등했던 중도층을 돌려세우는 계기가 됐다. 말과 행동을 삼가 논란을 줄이는 ‘조용한 선거’ 를 택한 여당과 대비됐다. 한 통합당 중진의원은 “소음을 줄여야 할 판에 마이크 잡고 고성방가(막말)를 한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공천 잡음’도 패배의 뿌리 중 한 가닥으로 지목된다. 통합당 공천 갈등으로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사퇴하고, 미래한국당이 비례 명단을 놓고 모(母) 정당인 통합당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쳤다는 이야기다. 한 통합당 당직자는 “‘오만한 여당’이라고 공격하면서도, 정작 내부에선 공천을 둘러싼 아귀다툼이 벌어져 ‘김칫국 마시는 야당’이란 화살을 맞았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손국희ㆍ이병준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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