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석 족집게 예측..민주당 숨은손 이근형·양정철 '콤비'
“지면 역적 이기면 공신.”
4·15 총선의 결과가 확인되기 전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을 두고 많이 나오던 말이다. 그럴만큼 인재 영입부터 전략 수립과 집행 전 과정에서 두 사람의 역할은 컸다. 두 사람은 이른바 ‘5인 TF(두 사람과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최재성 전략기획자문위원장)’를 통해 민주당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만들었다.
전략의 바탕의 됐던 ‘시스템 공천’과 정확한 판세분석은 여론조사 및 정치컨설팅 회사 대표 출신인 이 위원장의 공으로 평가된다. 논란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의석수 확대에 기여한 비례위성정당 추진 속도전, 영입인재들의 지역구 선정 등은 이 위원장이 설계·관리한 누적 여론조사를 토대로 나온 결정이었다.
이 위원장은 16일 페이스북에 ‘대외비’였던 당 전략기획위원회의 권역별 판세를 공개했다. 누적 여론조사를 토대로 투표 직전 이뤄진 분석의 결과였다. 총 예측 의석수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거둔 의석수(163석)와 정확히 같았다. 권역별로 살펴봐도 수도권(서울·경기·인천) 101석(선거 결과 103석), 대전·충청 20석(20석), 광주·전라 27석(27석), 부산·울산·경남 8석(7석), 대구·경북 0석(0석), 강원·제주 7석(6석)으로 동일하거나 차이가 근소했다. 이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여론조사비서관이던 2004년에도 17대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이 차지할 의석수(152석)를 정확히 예측해 주목 받은 적이 있다. 이 위원장과 양 원장의 민주당 의석수 예측 내기에서도 승자는 이 위원장이었다고 한다.
경합지역구에 수혈된 ‘새 피’들은 하나 같이 당 안팎에서 ‘약체’라고 평가되거나 논란이 붙는 인물들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서울 중-성동을(박성준), 동작을(이수진), 안산단원을(김남국), 고양정(이용우), 남양주병(김용민)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위원장은 “전략공천에 앞서 다양한 후보군을 두고 적합도 조사 반복해 가장 결과가 좋은 후보를 선정했다”며 “사천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치를 근거로 해 낙천자들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본선까지 ‘원팀(one team)’ 기조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평가다.
양 원장이 이끈 민주연구원은 지역구마다 성별·연령별 유동인구 동선 빅데이터를 시간대에 따라 분석해 선거운동의 효율화를 꾀했다. 실제 선거운동을 언제 어디에서 할지를 근거와 함께 각 후보자에게 전달했다. 초선에 성공한 한 당선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선거운동 횟수와 방식에 제한이 따르는 상황이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어려운 지역들에 맞춤형 후보를 내고 과학적 선거운동을 유도한 것이 적잖은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양 원장과 이 위원장은 이날 약속한 듯 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 원장은 민주당 공보국을 통해 전달한 입장문에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다” 며 “이제 다시 뒤안길로 가서, 저녁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내려 한다”고 적었다. 이 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홀가분하게 떠난다. 더 좋은 분들이 뒷자리를 채워 주실 것”이라고 썼다. 두 사람 모두 당분간 정치권과 거리를 둘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두 사람의 진로를 놓고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설(說)이 무성하다. “양 원장이 향후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게 될 것”(재선의원)이라는 말도 그런 설 중 하나다. 이 위원장은 선거 전 사석에서 “본업인 정치컨설팅이 비선에서 정보와 전략을 전달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정치권의 당당한 플레이어로 자리잡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곧 대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정치 일정상 정부나 정치권에서 다른 역할을 요청받을 수 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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