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MIT 인공호흡기 뛰어든 한국계 의사 "사람 구하고 싶다"

서유진 2020. 4.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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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최초 코로나 확진자 지역 의사 근무중
"더 많은 사람 구하고 싶어 프로젝트 참여"
개발 인공호흡기 FDA 긴급 사용승인 받아
"뉴욕 메트로폴리탄병원에 곧 무상 제공"
MIT 응급구조대에서 3년 봉사활동 경험도
"코로나 끝나도 군용·비상 도구 등 사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인공호흡기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로 3만6000여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국가 단위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이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시 물자법까지 발동해 인공호흡기 생산 명령을 내렸지만, 아직까진 미국에서 한 달에 1만개 생산도 빠듯하다. 미국 192개 대도시에 14만개의 호흡기(전미 시장협회)가 필요한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산 산소호흡기는 오는 9월까지 유럽 국가가 입도선매했다. 다급해진 미국은 결국 러시아에 SOS를 치는 상황까지 부닥쳤다.

인공호흡기가 중요한 이유는 중환자실 환자의 사망을 막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연일 나오는 가운데, 인공호흡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 주도하는 '인공호흡기 프로젝트'(중앙일보 3월 31일 보도)가 주목받고 있다.

'MIT 인공호흡기 프로젝트'는 3000만 원대를 넘나드는 인공호흡기의 부품당 원가를 줄여 400~500달러(약 61만원) 선에서도 제작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10년 전 논문이 발표되는 데 머물렀던 프로젝트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 한국계 미국인(미국 시민권자)이 참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인공은 권혁재(35) 씨다. 그는 MIT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통증 의학과 펠로우십을 끝냈다. 올해 2월 결혼해 뉴욕에 거주 중인 그는 뉴욕 웨스트체스터 메디컬 센터에서 마취·통증 의학과 의사로 활동 중이다.

MIT의 인공호흡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중인 권혁재 씨 [MIT 테크놀로지 리뷰]


권 씨의 근무지는 뉴욕 최초의 '코로나 진앙'에 해당하는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다. 이곳의 뉴로셸 지역에 거주 중인 맨해튼의 로펌 변호사 로렌스 가르버스가 뉴욕 주 최초 전파자다. 그야말로 '코로나의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인공호흡기 개발에 매달려온 권 씨는 18일 본지와 전화·이메일 인터뷰에서 "FDA 긴급 사용승인을 받았다"면서 "긴급 상황이 풀리면 510K(시판 전 신고) FDA 승인을 따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510K는 7월~9월까지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신종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우리가 개발한 인공호흡기는 여러 국가에서 군용 비상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뉴욕에서 의사로 활동 중에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인공호흡기 개발에 뛰어든 권혁재씨. 사진 속 가운데 안경 쓴 남성이 권혁재 씨다. [권혁재씨 본인 제공]

Q : 현재 진행 상황은.
A : FDA 긴급 사용승인을 받았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어 정신이 없다. (※인터뷰 중간에 인공호흡기 개발과 관련한 전화가 걸려와 인터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앞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병원 응급실에서 우리가 개발한 호흡기가 처음 적용될 수 있게 의사들과 만나 설명할 예정이다. 인공호흡기 4대를 우선 제공할 건데 무상으로 한다. 뉴욕 내 병원에 들어가는 호흡기는 병원에게 금전적 부담을 안 주려고 한다. 록펠러 재단에서 우리 프로젝트에 일부 금전적 지원을 한다고 들었다.

Q :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배경은.
A : 지난달 12일에 MIT 동기인 알렉스 슬로컴 주니어라는 레지던트 친구에게 전화했다. 원래 물어볼 게 따로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전화를 받자마자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MIT 기계공학과 교수인 자기 아버지(알렉스 슬로컴 교수)가 2010년 추진했던 '값싼 인공호흡기 프로젝트'를 부활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2010년 프로젝트보다 더 좋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 기계를 제작 중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2010년 저렴한 인공호흡기 프로젝트를 주도한 알렉스 슬로컴 교수 [MIT 홈페이지]

Q : 전원이 자원봉사로 참가한다고 들었다.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A : 현재 MIT 공학자만 17명이 참가했다. 기계·전자·컴퓨터 공학자다. 여기에 디자이너와 비즈니스 프로젝트 매니저, FDA 컨설턴트까지 참여한다. 전부 자원봉사로 임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한 달 이상 장기화하면서 연구재료비와 연구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기부금과 연구비를 모으는 담당자도 있다. 나는 임상에 필요한 조건들을 만족하기 위해 연구원들이 개발한 장치를 실험하고, 수정사항들을 연구원들에게 설명하는 총괄 관리를 맡았다. 특히 동물실험과 임상에 관련된 문제를 총괄한다.

Q : 개발 중인 인공호흡기를 설명해달라.
A : 우리 인공호흡기는 몇천만 원짜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호흡기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암부 백(Ambu bag·호흡 정지 시에 사용되는 구급소생 백)을 사람이 손으로 눌러 호흡을 시키는 것 외엔 없다. 우리 기계는 사람을 대체해 환자에게 일정하게 숨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할 것이다. 수준을 높여 제작해도 가격은 기존의 몇천만원이 아닌 몇백만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Q : FDA 승인 뒤에는 어떻게 되는지.
A : 뉴욕에 있는 산학협력 그룹과 협력해 우리 팀이 의료기기 회사를 설립해둔 상태다. 이곳을 통해 인공호흡기 FDA 승인을 받게 된다. 지금 받은 것은 FDA '긴급 사용승인'이다. 코로나 긴급 상황이 해제되면 510K(시판 전 신고) FDA 승인을 따로 받아야 한다. 510K는 7월~9월까지 받는 것이 목표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이 인공호흡기는 여러 국가에서 의료·군용 비상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A :

권혁재씨(가운데)는 과거에 증강현실을 이용해 환자들이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연구를 하기도 했다. [하버드 이노베이션 랩]

Q : 현재 뉴욕 상황은 어떤지.
A : 요새 뉴욕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일반적인 생활이 힘들다. (※뉴욕에선 이미 13일에 누적 사망자가 1만명이 넘었다. 국가가 아닌 지역 단위에서 1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온 곳은 뉴욕주가 처음이다) 저는 지난 한 달간 이 프로젝트에 매일 매달리다 보니 병원에 못 나간 지 한 달이 넘었다. 원래 한 달씩 병원 일을 놓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특별한 시기다 보니 제가 이 프로젝트를 해도 생계에 영향을 받지 않게 병원에서 배려해주고 있다. 병원에서조차 방호복 수급이 어렵고 의료진이 과다한 업무로 고생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동료에게 들었다. (인터뷰 다음 날에) 병원에 한 달 만에 수술하러 간다. 코로나 환자 방에 가게 됐다. 혹시 몰라 따로 방호복을 마련했다. 병원에 비치된 게 없을 수도 있어서다. 중국 친구들이 무료로 보내준 방호복이다. 이런 힘든 상황에 빨리 인공호흡기를 만들어 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다.

Q : 왜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나.
A : 봉사하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학부 때 MIT 응급구조대에서 3교대로 봉사활동을 했었다. MIT 인근 지역을 담당하는 구급차를 학생들이 운영한다. MIT는 학생들이 구조 요원 자격증을 받을 수 있게 수업을 연다. 구급차를 관리하는 돈도 학교에서 내준다. 학생들이 자격증을 딴 뒤 봉사하는 것이다. 3년간 매주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응급구조 요원으로 일했다. 이 활동이 의사가 된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생각한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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