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日 감염자 1만명..묻지 않고 순응하는 日사회가 부른 국가위기

서승욱 2020. 4. 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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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국면서 진행된 17일 아베 회견
긴장감과 위기감은 찾아보기 힘들어
11개 질문 중 대부분 예상문제 수준
위기 심화 속에도 토론과 설명 부재
올림픽, 검사문제 등 본질 사안 외면
약한 야당, 순한 언론, 순응하는 국민
아베 7년4개월 만에 최대 위기 봉착

"처음 20분간은 원고를 보며 유창하게 말했다. 그 뒤 기자들의 자유 질문을 받고는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보며 답변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총리 자신의 언어인 것인가."

지난 1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회견에 참석했던 아사히 신문 기자가 18일 자 1면에 쓴 회견 총평이다.

당일 오후 6시부터 57분간 진행된 회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의 중대국면에서 열렸다.

지난 17일 도쿄역에서 마스크를 쓴 채 출근을 서두르는 시민들. [EPA=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도쿄도를 비롯한 7개 광역단체에 발령했던 비상사태선언을 16일 전국으로 확대했다. 감염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지방까지 왜 발령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과학적 근거’가 논란이었다.

수입이 줄어든 세대에 30만엔씩을 지급하겠다던 경제대책은 일순간에 ‘국민 1인당 10만엔씩’으로 바뀌었다. 각의(우리의 국무회의)까지 통과한 경제대책의 방향이 갑자기 틀어진 것이었다. 추가경정예산의 골격을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로 불리는 면 마스크 2장 배부 방침, "전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는데 한가하게 반려견과 놀 때냐”는 비판을 불렀던 휴일 트위터 투고, 온 국민이 외출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불거진 아키에 여사의 지방 신사 참배 논란 등의 '3종 세트'로 아베 총리의 입지는 점점 더 추락하고 있었다.

이런 중대 국면에서 실시된 회견이었음에도 팽팽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사히 신문의 기사처럼 아베 총리의 답변은 준비된 원고를 토대로 한 뻔한 내용이었다. 오락가락한 대국민 지원대책에 관해 사죄한 것 외엔 알맹이가 없었다.

지난 17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긴급사태선언 발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이유 등을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데 알맹이가 없기는 묻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면 마스크, 트위터 동영상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는데, 지금까지의 신종 코로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아사히 신문 기자의 질문을 빼면 나머지 10개의 질문은 아베 총리의 예상문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아사히 기자의 질문에만 "귀사의 웹사이트에서도 면 마스크를 3300엔에 판매하고 있지 않으냐", "(트위터 투고엔) 찬반양론이 있었다"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비단 이번 회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5차례 진행된 아베 총리의 회견에서 코로나 위기의 본질에 관한 불꽃 튀는 논쟁을 본 적이 없다.

전 세계가 의심하는 대로 도쿄올림픽을 의식해 감염자를 찾아내는 데 소극적이었는지, 올림픽 연기가 결정된 뒤 감염자가 급속하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지, 왜 전 세계에서 유독 일본만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인지, 능력이 문제인지 의지가 문제인지, 아베노믹스 성과 때문에 코로나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것인지, 국민에 대한 현금지원 대책을 바꾸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없이 긴급사태선언을 전국으로 확대한 건 아닌지 등에 대한 촌철살인의 질문과 성의 있는 답변은 없었다.

지난 17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직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마스크를 벗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일 회견에서 "코로나 대책이 실패로 판명되면 책임을 질 것이냐"고 아베 총리를 몰아세운 이는 일본어가 서툰 이탈리아 언론의 기자였다.

또 지난달 28일 회견에서 "일본만 감염자 수가 적다는데, 그렇다면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이냐"며 낮은 검사실적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이는 한 인터넷 언론의 프리랜서 기자였다.

이렇듯 일본 사회가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사이 감염자는 1만명을 넘어섰다. 19일 0시 기준 크루즈선 탑승자(712명)를 포함해 1만1145명, 사망자는 237명이다.

일본 코로나19 확진자 수 한국 추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본의 인구(1억 2,647만명)가 더 많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한국을 추월했다.

약체 야당과 순한 언론, 갈등보다 안정을 희구하는 순응적인 국민성 덕분에 7년 4개월을 순항해온 아베 내각이 신종 코로나라는 강적을 만나 이처럼 휘청대고 있다.

단순히 아베 정권뿐만 아니라 일본 전체가 함께 맞은 위기란 점에서 그 파장이 작지 않을 것 같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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