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앙일보

"맹물도 양성 나오는 오염키트 제조" 코로나 실패 美CDC의 굴욕

정효식 입력 2020.04.19. 14:54 수정 2020.04.19. 19: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감독 기관 FDA, 불량 원인 조사 결과
CDC, 방역복 안 갈아 입고 실험실 출입
코로나 양성샘플 옆에서 진단키트 조립
검증해보니 고도 정제수에도 양성 반응
中 입국 봉쇄에도 검사 지연→확산 초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6일 조지아주 애틀랜터 질병통제센터(CDC) 본부를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샘플 사진을 보고 있다. 왼쪽은 알렉스 에이자 보건장관, 왼쪽 뒤가 로버트 레드필드 CDC 소장이다. 당시 이미 CDC가 생산한 진단키트가 불량으로 판명돼 FDA가 민간 기업에 제조를 맡길 것을 권고한 상황이었다.[AFP=연합뉴스]


에이즈·에볼라 땐 세계 최고의 방역기구란 명성을 떨쳤던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왜 신종 코로나 사태에선 실패했나. CDC가 1월 말에 만든 진단키트 불량으로 6주간 검사를 못 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1월 31일 가장 먼저 중국인 입국을 봉쇄했으면서도 자국민 감염자를 조기에 식별, 격리해 확산을 억제하는 데는 실패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18일 "CDC 본부 연구소에서 방역복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샘플이 있는 같은 장소에서 오염된 진단키트를 만들었다"는 미 식품의약청(FDA)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오염된 진단키트는 심지어 맹물에도 양성 반응을 보였다.

스테파니 커코모 FDA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CDC는 자체 제조 기준에 부합하는 검사장비를 생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CDC가 지난 1월 말 미국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신종 코로나 진단키트. 허술한 제조 과정에서 오염돼 고도 정제한 맹물에도 양성 반응이 나오는 불량품이었다.[AP=연합뉴스]


두 신문에 따르면 CDC는 지난 1월 중국에서 입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정보에 따라 조지아주 애틀랜타 본부 연구소 3곳에서 진단키트를 제조했다. 의료 검사 장비를 감독하는 FDA 조사에서 민간 기업 제조시설에도 못 미치는 전문성 부족과 허술한 CDC의 제조 실태가 고스란히 적발됐다.

CDC 연구자들은 방역복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은 채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실을 출입했고, 양성 샘플이 있는 같은 장소에서 진단키트를 조립하기도 했다. 그러고선 코로나바이러스로 이미 오염된 불량 진단키트를 미전역의 공중보건연구소로 보급했다.

그 결과 CDC가 1월 말 최초 인도분을 공급한 전국 26개 공중보건연구소 중 24곳에서 비교군으로 검증한, 어떤 유전자 물질도 포함되지 않은 고도 정제수에서도 '허위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진단키트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교차 오염이 된 상태였다는 뜻이다.

CDC가 문제점을 발견해 이를 해결한 뒤 FDA에 다시 진단키트의 긴급 사용승인을 받은 것은 2월 4일 최초 승인을 받은 지 6주 뒤인 3월 15일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지난해 12월 발병한 이래 백신은 물론 치료법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확산을 막을 방역 수단이 진단검사밖에 없는 상황에서 6주간의 검사 공백은 미국에 대재앙을 불렀다.

3월 15일까지 2900건에 불과하던 누적 확진자는 불과 한 달여 만에 73만4969건으로 250배 이상 늘었다. 사망자도 같은 날 63명에서 18일 자정 현재 3만8910명으로 600배 이상 치솟았다.

이처럼 CDC가 자체 제조한 진단키트가 불량이 나자 FDA 관리는 지난 2월 말 CDC 본부를 방문해 진단키트 제조를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CDC는 결국 3월 중순부터 민간기업이 진단키트를 제조해 전국 100여개 공공연구소에 공급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했다. FDA도 3월 12일 로슈를 포함해 4월 18일 한국 오상 헬스케어까지 40곳의 국내외 기업의 진단키트에 긴급 사용 승인을 내줬다.

이는 "CDC의 신종 코로나 진단키트 성능은 74년 자랑스러운 역사에서 바닥을 기록한 사건"(워싱턴포스트)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오늘까지도 CDC의 이 한 가지 실패는 정부가 새로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는 초기 얼마나 준비가 안 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일부 감염이 적은 주들이 경제활동 재개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하버드대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날까지 400만건의 검사를 했지만, 경제를 재개하기 위해선 현행 하루 15만건보다 3배인 하루 50만건의 검사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