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보수엔 축복, 진보엔 毒일 수 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정치학 2020. 4. 21.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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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한 보수 혁신 불가피.. 외연 확대하고 새 방향 찾아야
진보, 승리 도취 급진화는 위험.. 日 아베 정권 반면교사 삼아라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정치학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미래통합당은 대패했다. 그러나 이번 결과는 보수 세력에 오히려 축복일지 모른다. 당내 갈등의 핵심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최종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패배를 계기로 보수 세력은 자신의 방향성을 자성하고, 새로운 진용을 내놓아야 한다. 혁신의 길은 불가피하다. 나아갈 방향은 외연 확대다.

패배에 주눅 들 것이 아니라 날개를 펴고 새로운 인물과 정책에 적극 손을 뻗쳐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돌아올 것은 일본 야권이 현재 겪고 있는 장기적 지리멸렬뿐이다. 2012년 자민당에 정권을 내준 후 일본 야권은 다 모아 봐야 불과 15% 내외의 지지율을 오르내리고 있다. 집권 가능 세력으로서 국민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9년부터 3년간 집권했던 일본 민주당의 실패에 일본인들의 실망이 그만큼 깊은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새로운 인물과 정책 찾기를 게을리한다면 일본 민주당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 영남에서의 선전에 안도해선 안 된다.

진보 세력에 이번 결과는 새로운 도전이다. 사실 집권 세력에 앞으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지만 대북 정책과 경제정책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지금까지는 의석수 부족 때문이라 변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은 새로운 어젠다를 발굴하고 설득을 통해 실현할 의지와 기술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선거는 후보에 대한 가부만을 묻지만 정책은 더 복잡하다. 정치는 숫자라지만 정책은 숫자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별 정책을 위한 승리 연합을 만드는 것은 의석이 늘어나면 더 어려울 수 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탄핵 폭풍 속에 과반수를 확보했지만 입법 성과는 미미했다. 선거 대승으로 숫자만 믿고 정책을 소홀히 하면 위험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본 집권 세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현재 일본 자민·공명 집권 연합은 중·참의원에서 개헌선 근처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지난 8년간 각종 선거에서 아베 총리는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당초 약속했던 아베노믹스의 한 축인 구조 개혁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집권 초기 일본 주가 상승이 있었고, 청년 일자리 개선에도 성과가 있었지만, 연금·건강보험 개혁 및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 등 중요 어젠다에서 별 성과가 없다. 헌법 개정 역시 극우파를 달래기 위한 립서비스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개헌은 시동도 못 걸었는데, 지금 코로나19 대응으로 북새통이고, 이러다 내년 9월이면 아베 총리 임기도 끝난다. 선거 연승은 아베 총리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 가케 학원 등의 스캔들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벚꽃 모임 사유화 논란까지 있었다. 장기 집권이 방심과 오만을 낳으면서 야권과 언론의 반발을 불러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년밖에 안 남았다. 대선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2년도 안 된다. 이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성과를 안겨줄 수 있는 몇 가지 정책에 집중하면서 거대 여당은 물론 야권도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대북 정책, 외교 안보, 경제정책 등에서 과감한 방향 전환을 통해 야권을 끌어안는 통 큰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그래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집권 세력에 가장 위험한 길은 선거 승리에 도취되어 급진화하는 것이다. 검찰, 법원을 마음대로 하려 하거나, 조국 교수를 복권시키려 하면 반드시 커다란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은 친박 세력을 버렸지만, 친조국 세력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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