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힘들면 도망쳐"..일본 의료 관계자의 절규

유성재 기자 입력 2020. 4. 21. 14:33 수정 2020. 4. 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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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9일) 일본의 감염자 수가 한국을 넘어섰습니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집단 감염 대응 이후 감염 확산에 따른 의료 붕괴를 극도로 두려워하며 감염 검사를 사실상 '제한'해 왔지만, 그 결과 의료 체계 밖에서 감염 추세가 조용하고 빠르게 번져 왔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입니다. 물론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3배 가까이 많으므로, 단순히 감염자 숫자로만 한일 양국을 비교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 도쿄를 중심으로 의료 기관이나 요양 시설의 집단 감염 사태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 정부가 열도 전역에 발령한 '긴급사태'도 강제력이 없어 감염 확산을 적극적으로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비관적인 시각이 우세합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와 혈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어려움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유독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TV 방송이나 신문 지상에서는 이른바 '의료 붕괴'가 임박했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지만, 일반인이 현장의 실상을 접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딘가 의사회의 높은 분이 '말을 가려가면서' 심각성을 전하거나, 정부의 전문가 회의에 이름을 걸고 있는 '대표 의사'가 공허한 비유로 이야기하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현장에 전문 병상과 방호 장구가 부족하다는 말은 계속 나오지만, 그런 말들로 대체 현장이 어떤 모습인지를 생생하게 알기란 좀처럼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의 SNS에 조용히 퍼지는 글을 접했습니다. 그제(19일) 한 블로그 사이트에 올라온 글입니다. '요츠야 산초메(도쿄의 주소명)'라는 필명을 쓰는 글쓴이는 자신을 수도권의 '꽤 큰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라고 소개하며, 본인이 근무하는 병원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글에는 '코로나19 지정대응병원'이 된 직장의 현실과,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는 현장을 외면하고 있는 언론의 실태와, 이 와중에도 현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표정 관리에만 바쁜 정치권에 대한 비난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블로그 사이트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라 글쓴이와 연락을 취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따라서 사실 여부는 끝내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일본의 의료 현장 상황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조금 시간을 들여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은 의역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가능한 한 글쓴이의 표현과 뉘앙스를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글쓴이가 다른 글에서 '이 블로그는 일단 써 두고는 싶지만 공개되면 복잡한 일이 될 것 같은 글을 모아두기 위한 것'이라고 쓴 점을 존중해 원문 링크는 따로 공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5756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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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현장에서 ②
2020/04/19/ 23:12
필명 : 요츠야산초메

미칠 것 같아서 적어둔다.

나는 수도권의 '꽤 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야. 이번에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만연 상황에, 행정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최대 80명의 양성 환자를 수용하기로 결정됐지. 80병상을 비우기 위해 입원 환자를 대이동시키고, 신규 입원과 수술 제한이 시작됐던 게 4월 초. 그 이후 2주일이 경과했어.

참고로 3월 말부터 지금까지, 전 직원 마스크는 사흘에 1장으로 사용제한이 걸려있어.

4월 둘째 주. 코로나19 양성 환자 수용 확대가 결정된 이후의 혼란은, 진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적응은 됐어. 혼란스러운 것에 익숙해졌다고.

큰 소동이었던 환자의 대이동은 끝났고, 3일간 돌려 쓰던 마스크가 냄새가 엄청 나는데도 통상업무는 계속됐어. 하루 종일 환자와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던 마스크를 3일간 보관하면 그렇게 냄새가 난다는 건 평생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2주간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누구든 적응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점심으로 카레를 먹은 다음 날 엄청나게 후회한 뒤로는 오로지 소바만 먹고 있어.

간간이 양성 의심이 되는 환자가 와서 CT와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실시하는 것도 '일상'이 되어, 어찌어찌 모두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걸까' 하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되었어. '수상한' 환자도 PCR 검사 음성 1회로 통상적인 대응이 가능한 것은 지금에 와서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두 번 세 번 검사를 할 여유가 없는 것도 수긍은 가. 이해는 되는데 어쩔 수가 없다..정도일까. 응.

같은 시기에, 높은 분들로부터 '직원은 가능한 한 공공교통기관을 이용하지 말고 출근해 주었으면 한다'고 통지가 있었어. '시민을 지키기 위해'라는 말에 꽤 놀랐어. 그때였나. '우리가 감염원이 된다'는 걸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뭐, 그런 건가. 그렇다는 것인가.

출근 중에 모바일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것에 갈등했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자동차 통근으로 바꿨어. 이것도 의료종사자의 사명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시 익숙해졌지. 정체를 각오하고 있었던 직장 근처의 인터체인지는 외출 자제 요청 때문인지 놀랄 정도로 한산해서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어.

간호사 주차장 구석에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어.

눈이 마주쳐 버려서 당황했는데, 슬쩍슬쩍 훔쳐보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서 서둘러 옆으로 지나갔어. 4월에 막 입사한 아이인가. 단 2주 만에 아이를 울리다니 무서운 병동이네, 어디일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아는 선배가 있었어.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꺼냈지. 그런 아이를 봤다고.

"아, 아마 있잖아. A병동 간호사가 아닐까...모두 매일 울고 있다던데."

놀라움을 뛰어넘어 덜컥 겁이 났어.

40병동 모두가 코로나19 감염증 양성 환자로 가득 찰 예정인 A병동은, 올해 막 대학을 졸업한 신입 간호사가 배속되지 않았어. 당연한 일이지만 신참을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지. 원래부터 있던 2년차 이상의 스탭과, 신입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중견과 베테랑 스탭 몇 명인가 이동했다고 들었어.

그런데, 울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야? 아니, 그대로야. 울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같아. 모두 울고 있다는 것 같아. 내가 눈으로 보고 이런 얘길 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모두가 울고 있는 것 같아.

모두 울고 있다는 건 왜지?

문자 그대로라고. 모두 울고 있는 거야. 가혹한 업무를 견디지 못해 울면서 출근하고, 언제까지도 끝나지 않는 업무를 울면서 꾸역꾸역 하고 있다는 거야. 어쩌지 못해 꾸역꾸역. 그건 무슨 뜻일까. 그것도 울면서? 그건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 아냐?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레시피(respirator, 인공호흡기)가 붙어있는 환자는 한 병동에 1명이 있는 것만으로도 업무가 힘들어. 호흡기의 관리도 해야 하고, 빈번히 신경을 써야 하는 호흡기 염증도 있고, 2시간마다 누운 자세를 바꿔줘야 하고, 주변은 청결하게 유지해야 해. 링거대는 실린더 펌프 투성이겠지. 그런 환자가 몇 명? 게다가 전원 코로나19 양성환자라고.

"다음 주의 우리 모습일지도 몰라."

선배가 문득 말했어. 또 겁이 덜컥. 나는 아직 너무나도 순진해. 하필 이런 때 이렇게나 물러 터지다니.

'신형 감염증이 세계에 만연하는 픽션' 속에서, 대응하는 간호사가 울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묘사가 있다면, 나는 '의료현장의 묘사에 리얼리티가 없네!'라고 말했을지도 몰라. '간호사=여자=금방 훌쩍훌쩍 운다, 이런 이미지로 쓰고 있는 거지? 현실의 간호사는 멘탈 고릴라들 뿐이라고 ㅎㅎ'하며 기세 좋게 깔보는 나 자신이 쉽게 떠올랐겠지.

그런데 현실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리얼리티'를 뛰어넘고 있어.

다음 양성 환자를 받아들일 병동이 B병동으로 결정됐어. 당연한 얘기지만 수용 예정은 80병상이므로, 2개 병동분이 필요하지. 엘리베이터의 A병동과 B병동의 층수 버튼은, X 표시를 비닐테이프로 붙여놓아서 누를 수가 없었어. 바로 조금 전까지는 타 병동에서 도와주러 오기도 했지만 이제 그것도 안돼. 완전한 격리병동이야. 수용이 시작되자마자, 'B병동의 스탭도 울기 시작했다고...'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어.

고르고 골라서 모은 정예부대가 아니야. 어쩌다 배속되어 있던 직장에 하얀 화살(일종의 '저주' 또는 '낙인')이 날아와 꽂혔을 뿐인 스탭들이야. 어쩌다 배속되었을 뿐인 직장이, 어느 날 갑자기 지옥이 된 거야.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아니 정말로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타 병동도 A, B병동으로부터 옮겨 온 환자를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속 편하게 일손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야. A, B병동 전체를 격리해야 하는 규모가 되어 버려서, 손이 비었다고 일시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감염 억제의 관점에서 보면 불가능하지. 꽉 막혀버린 거야.

의사들이, '최종적으로는 100병상을 받게 되겠네' '그렇겠지' '그 가운데 20%가 중증자인가..' 하며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버렸어.

80병상이었을 텐데? 20병상이면, ICU(Intensive Care Unit, 집중치료실) 하나를 채울 숫자야. 그건 오차라고 할 범위가 아니라고.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다음에 지옥으로 변하는 곳은 어딜까. 다음 주의 우리들? 선배의 말을 떠올리고는 속이 딱딱하게 얼어버렸어.

TV에서 우리 현의 지사가, "감염증 지정병원에 요청해서 환자 수용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하고 있어. 갑자기 20병상이 늘어난 이유를 이제 알겠네. 물론 그걸 탓하는 건 아냐. 아무리 늘려도 부족할 정도가 아니냐는 거야. 탓하는 건 아니지만, 환자를 받는 건 우리들이잖아. 단지 사실이 되고 있어. 지옥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게.

4월 3주째. 당연한 일이지만 N95 마스크의 재고가 떨어졌어. 알고 있었지. 이미 알고 있었어. 이탈리아에서도, 미국에서도, 어디서도 부족한 N95가 당연히 여기서도 다 떨어진 거지.

모든 게 이미 본 '전철'대로 굴러가고 있어. 이제 2개월 전의 이탈리아를 오른쪽으로 두고 지나치네. 이제 우리가 앞서는 거야. 이 나라의 의료현장은 다른 나라가 2개월 전에 지난 길을 공손하게 따라서 지옥으로 향하고 있어.

N95는 멸균실에서 재멸균해서 돌려쓰는 걸로 됐어. 쓰고 있는 내가 미칠 지경이다. 양성 환자 대응에 사용한 바이러스 투성이의 N95를, 멸균실로 옮겨 상주하는 멸균위탁업자 아저씨가 멸균해. 1회용 마스크를.

"절대 들어오지 마세요!!" 라고, 멸균실에서 전 부서에 연락이 왔어. 그렇겠지. 바이러스 투성이의 마스크를 멸균하고 있으니까. 아, 또 미칠 것 같아. 멸균실 스탭들이 불쌍해서 어떡해. 멸균의 프로페셔널들도, 신형 감염증 양성 환자에 사용한 1회용 마스크를 재멸균하는 미래 따위 상상이나 했을까. 대체 이게 뭐야.

재멸균한 마스크는 해당 병동에 돌려보낸다. 어쩌다가 그곳에 배속되어 있는 스탭이, 일회용 마스크를 계속 사용하며, 미지의 감염증 환자를 보살핀다. 울면서 말이야. 그런 그들에게 플라스틱 봉지(방호복)를 씌우는 날도 가까워지고 있잖아. 분명히, 그렇지.

미쳐버릴 것 같다고.

나는 양성 환자 100명을 수용할 예정인 감염증 지정병원에 근무하고 있고, 매일 아침 긴장하면서 체온 측정을 받고 있고, 서지컬 마스크(의료용 마스크)는 3일간 돌려쓰고 있으며, 변화무쌍한 수술 스케줄에 휘둘리고 있고, 실제로는 양성이 아닐까 하고 조마조마하면서 환자를 살피고 있고, 내가 감염원이 될 가능성에 잔뜩 쫄아서 자동차로 통근 수단을 바꿨고, 점심으로 카레는 더 이상 먹지 않게 되었고, 그래도, 아직 아직 아직 아직은 '괜찮다'고 말하는 간호사야. 내가 있는 곳은 지옥이 아니야. 원래 이런 게 아니라고. 이런 게 아니었다고. 진짜 이런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또 미쳐버릴 것 같아!!!!!!

사망자가 나올 거야. 환자 이야기가 아니야. 원내 감염의 이야기도 아니야. 자살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제발 알아줘. 부탁이야. 제발 알아줘. 최전선은 지옥의 밑바닥이란 걸.

주차장에서 울고 있던 아이. 신입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어린아이였어. 사람 눈에 띌 정도의 장소에서 울고 있었던 건 SOS의 의미는 아니었을까. 큰맘 먹고 말을 걸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후회만 계속 하고 있어. 매일 아침 주차장에서 그 애를 찾게 되지만, 그 날 이후로 보인 적은 없어.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어.

우리는 아직 원내감염은 없어. 어떻게 생각해도 시간문제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최대의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어. 그래도 이 정도라는 거야. 이미 원내감염이 발생한 병원은 어느 정도의 곤경에 처한 걸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무서워.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또 미쳐버릴 것 같아. 이 나라의 어딘가에서, 이미 목숨을 버린 의료종사자가 있을지도 몰라. 최전선은 그런 상황이었어. 훨씬 이전부터 지옥 불가마의 밑바닥이었어.

4월 18일. NHK에서 신종 코로나 특집을 하고 있어. 우상단에 자막에는 '점점 조여오는 의료붕괴!'라고 되어 있어.

이미 붕괴했다고!!!!!!!
보고도 모르는 거야?!?!?!?!?!?!?!

NHK뿐만이 아니야. 미디어 님들, 언제까지 '조여온다'는 둥 '어떻게 막을까'는 둥 '아슬아슬한 가장자리'라고 말할 거냐고. 1개월 전부터 계~속 조여오고 있지 않아??? 지금 어디까지 조여온 거야??? 가장자리의 가장자리의 그 가장자리 정도? 다음 주는 그럼 가장자리의 가장자리의 가장자리의 가장자리의 그 가장자리인 건가?

'끝내 찾아온 의료붕괴' 정도라고!!! 그 정도의 자막 정도는 붙여줘야 한다고!!!
그 정도의 기개는 보여달라고!!! 전해 달라고!!!
시청률 올릴 수 있다고!!!!

의료현장은 붕괴하고 있습니다. 매일 울면서 일하는 최전선의 스탭의 고통과, 바닥이 보이는 의료자재와, 병상을 늘려도 늘려도 넘쳐나는 환자와, 이미 막으려고도 하지 않는 원내감염...무슨 짓을 해도 붕괴하기 시작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생각으로라도 그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은 미디어 님들 덕분에, 최근 TV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왜냐고??? 이게 뭐냐고??? '이거, 이미 붕괴하고 있네요'라고 말하면 어디의 누군가로부터 혼이 나나??? 여기는 북조선인가???

4월 20일. (어제) '선데이 재팬'에서 '끝내 붕괴인가?!'라는 자막을 확인. '선데이 재팬'에 '좋아요!'를 날릴 날이 올 줄이야.

4월 16일. 일본간호협회가 후생성에 요청서를 냈습니다. 대단한 실례입니다만, 이런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급료에서 연회비 2만 엔을 강제 징수하는 단체라는 인식밖에 없었습니다. 오모테산도의 에르메스(루이비통인지도 몰라) 옆의 빌딩을 볼 때마다, '우리들이 낸 연회비로 세운 빌딩', '사이타마로 이사하라고!'라며 야유해서 죄송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위기를 맞아, 소속된 단체의 수장이 우리들을 지키려고 의연하게 목소리를 내 준 것이, 현장의 소리를 모아 움직여 준 것이, 이렇게 안심을 줄 줄은 몰랐어. 그동안 체험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죠, 내각총리대신님.

요청서를 본 친구가 걱정하며 라인을 보냈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봐도 충격을 받을 정도로, 핍박감을 느꼈나봐. "부탁이니까, 자기 몸을 최우선으로 해줘"라는 말에 조금 울었어. 나도 정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간호사들에게 전하고 싶어. 의사에게도, 구급대원에게도, 위탁업자들, 원무과 직원들, 간호조무사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목소리를 높일 기력도 없을 정도로 쫓기고 있는, 붕괴한 의료현장의 당신들에게,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

도망쳐도 좋아. 도망쳐요, 모두.
절대로 자기 몸을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부탁이니까.

마음이 부서져버릴 것 같아. 동료가, 친구가, 나의 소중한 사람이,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지옥의 밑바닥에 있을지도 몰라. 의료자재가 차례차례 바닥을 드러내는 현장에서 울면서 일을 계속해서, 심신을 망쳐버릴지도 몰라. 목숨을 포기할지도 몰라. 정말 미칠 것 같아.

정말로 부탁이니까, 절대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구도 죽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도망쳤으면 좋겠어. 당신도 나도, 생계를 위해 의료직을 선택했을 뿐인 평범한 사람이야. 전문직으로서의 프라이드도, 신념도, 아마 봉사정신 같은 것도 가지고 있을 테지만, 그건 생업이라는 범주 안에서의 이야기고,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하니까 그저 몸에 지니고 있는 것 뿐이잖아. 굳이 말하자면 직업인으로서의 프라이드야.

비닐 봉투가 씌워지기 전에 도망쳐! 그게 뭐가 나쁘단 거야!!!

대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다는 거야?!?!?!?!?!?! 나는 아직 지옥으로는 떨어지지 않았어. 아직 분노할 수는 있어. 목소리를 높일 기력은 있어. 그런 나라고 해도, 조금씩 분노보다 절망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어. 왜 그대로 이탈리아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거야? 이렇게 망가지기 전에, 두 달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올림픽 개최에 야심만만, 서지컬 마스크를 자기 파티(정치자금 모금 만찬)에서 몇 백장씩 뿌리고, 다른 곳에 빼돌려서 팔아버리고, 466억 엔 들여서 불량품이 들어간 면 마스크를 배포했어요. 그리고는 개를 쓰다듬는 영상을 공개했죠. 아 그렇습니까. 네네.

그런 당신들이 비닐 봉투 뒤집어쓰라고!!!!
'선제적, 선제적'이라는 의미는 대체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정말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은데, 불량품(마스크) 이야기는 정말인 거야??? 정말 '헛소문'이었으면 좋겠을 정도란 말이라고!!!!

불량품이 사실이라고 치고! 대체 어디서 만들었냐고, 그딴 마스크!!! 저기, 혹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붙어 있는 건 아니지요??? 정말 농담이 아니라고???? 여기가 최악의 어디쯤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최악'의 밑바닥이 퐁퐁 하고 뚜껑을 열고 있어. 정말로 무섭네요, 이 나라는. 현 정부는. 이상하잖아. 단순히 생각해도 모든 게 이상하잖아.

466억 엔 들여서 벌레가 붙어 있는 면 마스크를 나눠주는 나라라고!!!!!!
대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겠냐고!!!!!

이런 정부 탓으로 죽고 싶지 않아. 의료현장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말할 여유는 이미 사라졌어. 겉치레 따위는 이제 없다고. 나는 이제 내 몸의 안전과, 같은 의료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 외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아. 당신이 걱정이야. 부탁이니까, 목숨을 버리지는 말아줘. 서지컬 마스크도, 플라스틱 가운도, N95 마스크도, 어떤 것도 손에 들어오지 않아.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나중 얘기야.

4월 17일에 발표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진료 수가 2배 증가는, 오래간만에 화가 나지 않는 뉴스였어. 그렇다고는 해도, 유감이지만 이건 스탭의 손에 들어오는 돈이 아니야. 구체적으로는, 어딘가의 어떤 부분이 몇 점(수가의 가점) 올라가는지 발표되지 않았잖아. 병원에 들어오는 이익이라고는 해도 대체 어떤 건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찔끔찔끔, 돈을 빼내기 쉬운 곳에서부터, 손을 대기 쉬운 곳부터, 겨냥하는 것처럼 진료보수를 계속 삭감해 왔으니까, 신용할 수 없어. 아, 그런데 이건 또 다른 종류의 분노가 분출되어 버리니까 일단 그만두자.

간호사협회가 '위험 수당'이라고 박아서 얘기한 건 이 부분이겠지. 지옥의 밑바닥에서 고생하고 있는 스탭 전원의 손에 건네지는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 '목숨 걸고'라는 문자 그대로인 현장에, 국가나 행정으로부터 오는 구체적인 '보수'를 원한다. 응원 따위 이제 필요없다는 것.

그냥 도망치자.
아침에 일어나서 '못하겠어'라고 생각이 들면 바로 도망쳤으면 좋겠어.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고, 가방에 속옷이랑 칫솔만 챙겨 넣고, 당당하게 공공교통기관을 사용해서,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쳐. 가능하다면, 친구나 가족이나 연인이나, 당신을 소중히 대해 주는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그렇게 하려면 성실한 사람일수록, 환자에 대해 진지하고 성실한 '의료종사자'일수록 용기가 필요하겠지. 환자나 다른 스탭의 얼굴이 떠올라 버리겠지. 내가 잘 알아. 그래도 용기를 내서, 도망쳐. 진심으로 부탁한다.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야. 비난하려면 그래도 좋아. 내가 알 게 뭐야.

가까운 의료종사자, 또는 병원 스탭이 있는 사람. 조금이라도 불안하다면, 연락을 해 봐 주세요. 가능하면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전해주세요. 생각도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도 못했던 지옥에 떨어져 있는 스탭이 엄청 많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는 거 아냐'라고 그쪽이 웃을 정도라면 그걸로 됐습니다. 그저 저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건 내가 눈으로 본 그대로의 현실이야. 기록을 남길 기력이 있는 동안, 내가 본 것을, 그 감정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쓰는 거야. 감정 가운데 특히 '분노'는, 발산했을 때의 신선도가 생명이니까. '프레시'한 분노를 계속 가져가는 건 불가능해. 그렇지만, 언어를 사용해서 '진공 팩'에 넣어두는 건 가능하지. 이 소용돌이에서 감정을 그대로 찍어낸 말은, 분명 앞으로 내 안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 될 거야. 내가 결코 잊을 것 같아?

아직 기력이 있는 분들. '내가 이런 곤경에 처해있다'고 말로 내뱉어주세요. 목소리를 높여서, 남겨 두었으면 합니다. '더 큰일 난 사람이 있어'라든가 하는 겉치레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건 창 끝을 무디게 할 뿐이에요.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해도 좋습니다. 목소리를 높여도 좋아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리광'이라든가, '욕심쟁이'라고 혼동되어 위축되어 가는 건, 보고 있어도 엄청나게 괴롭습니다.

모두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해 주세요. 그게 첫 번째입니다.
'이제 무리야'라고 생각했다면, 지금 모습 그대로 도망치세요.

그리고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을 모두 받아서 살아남읍시다. 돈이 부족하다면 '부족해!'라고 또 소리를 지릅시다. 소리를 질러서, 받을 수 있다면 좋은 겁니다. 일단 목소리를 높이는 게 좋습니다. 그게 좋아요.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모두 그럴 권리가 있어요. 그게 인권이라는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시끄럽게, 끈질기게, 목소리를 높입시다.
그리고 살아 남자고요. 부탁이니까.

주차장에서 울고 있던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박혀서 떨어지지 않아. '왜 그래요?' 라는 한 마디, 말을 걸었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만 계속하고 있어.

이 글이 당신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어. 그 생각으로, 쓰고 있습니다.

- 지옥의 이웃, 의료 현장으로부터.     

유성재 기자ven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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