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대구, 정치적 고립 걱정..민주당이 마음 움직여야"

이주현 입력 2020. 4. 22. 05:06 수정 2020. 4. 22.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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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큰표차 패배
대구, 보수당 야당 되자 위기감
"민주당 찍으면 사회주의 개헌"
통합당 구호에 민심 쏠린듯
'민주당 4연승' 사회주류 교체?
정치도움 간절한 사람들에게
어느 정당이 부응했느냐에 성패
보수가 비전 보이면 결과 달라져
나는 '경계인' 아닌 '중재자'
지지층엔 정체성 모호해 보이고
대구시민엔 반감 가진 정당소속
적극적 중재 나서는 게 나의 일
통합정치론 통할까
출구 없는 멱살잡이 정치 한계
협치, 진정성으로 추구해나갈 것
당권도전, 아직 말할 단계 아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하니동산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과 결과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극강 험지’ 대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부겸 의원은 큰 표차로 패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피폐해진 대구 민심을 목도한 그는 패배의 아픔에만 머물지 않았다. 김 의원은 “여야가 선거기간 중 내놓은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약속은 ‘희망의 언어’”라며 유례없는 전세계적 위기 극복에 필요한 정치의 역할을 강조했다.

2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 의원은 “승패는 엇갈려도 도전은 계속되는 것”이라며 “다만 대구에서의 패배가 쓰라린 이유는 대구가 점차 정치적으로 고립된 섬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구 유권자들은 보수정당을 지켜야 한다는 일체감이 매우 강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민주당은 미래지향적인 가치와 좋은 후보들을 제시해 대구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현재 정치권이 각자의 유불리를 떠나 처리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로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꼽았다. 김 의원은 “긴급재난지원금은 선별-보편 복지 논쟁도 아니고,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도 아니다. 소득 하위 70%에게만 지급 대상을 한정하면 선별 과정에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한계선상에 걸려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만큼, 충분하진 않더라도 국민 100%에게 신속하게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일 직전 ‘전국민 50만원 지급’을 약속했다가 이제 와서 발을 빼는 미래통합당을 겨냥해선 “선거에 졌다고 국민에게 화풀이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 대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면 어느 국민이 신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전국민 지급에 난색을 표하는 기획재정부를 향해서도 “한국은 관료국가가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라며 사고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날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얼굴이 검게 타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거리에서 많은 유권자를 만날 수 없는 어려운 선거였지만 그는 ‘사람’을 찾아 주택가와 골목을 파고들며 ‘벽치기 유세’를 벌였다. 비록 듣는 이 없어도 “창문을 그냥 사람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아파트 베란다와 주택을 마주 보고 혼자 연설을 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유권자들은 끝내 그에게 ‘대구 재선’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대구에서 1승3패를 했고, 정치 경력을 통틀어 4승5패다. 30여년 정치생활 동안 너무 많은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에 맷집이 좀 있다”면서도 “그러나 승리 다음의 패배가 더 아픈 것은 맞다”고 털어놨다. 8월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설에 대해서도 “내 진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패장이 말이 많으면 꼴불견”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4년 전 김부겸 의원은 대구 수성갑에서 62.3%를 득표해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37.69%)에게 압승했다. 민주당 지역구 당선자 110명 중 득표수 1위, 득표율 2위, 차점자와의 격차 1위란 화려한 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이번엔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민주당이 전국에서 지역구 163석을 얻는 대승을 거둔 반면 김 의원은 39.29%를 얻어 59.8%를 득표한 주호영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큰 표 차이로 뒤졌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스튜디오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과 결과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딱 1년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그만두고 내려갔을 때 주변 사람들이 ‘이번에는 어렵다’는 얘기를 자꾸만 했다. 그래도 내가 지역구 의원을 하면서 미래세대 먹거리를 위한 투자를 꽤 많이 했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했다.”

그는 “정치적 다양성이 대구의 미래”라고 호소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녹이는 데 역부족이었다. “4년 전엔 새누리당이 여당이었기 때문에 대구 사람들은 자신들이 국가 운영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당에 국회의원 한 두석 줄 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구는 경제적으로는 쇠락하고 정치적으로는 고립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상실감과 분노를 뛰어넘어 미래의 희망을 선택하기엔 아직 화가 많이 나 있다. 그래서 대구를 생각하면 늘 안타까움이 있다.”

선거가 본격화하면서 쏟아진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은 내내 밀리는 모양새였다. “처음부터 14~15%포인트가량 차이가 나서 쉽지 않은 선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의외로 사람들이 열렬히 호응하고 박수를 보냈다. 제법 상대 후보를 추격해가고 있다고 느꼈는데 막판에 통합당 후보들이 ‘사회주의 개헌을 저지해달라’ ‘자칫하면 보수정당 씨 마른다’고 읍소하는 전략으로 나오면서 표 차가 확 벌어진 것 같다.”

그는 이번에 보수 후보들이 티케이(TK)를 석권한 것을 놓고 “보수정당 사수론이 지역주의 극복론을 압도한 것은 맞다”고 짚으면서도 “지역주의는 묘한 주술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주의는 자꾸 되뇌면 더 강해지는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지역주의 주문을 외울 때 가장 편한 게 사실이고, 지금 같은 소선거구제하에서 지역주의가 확 깨지기는 어렵다. 결국 지역주의 극복은 시간과 세대, 사회경제적 조건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4번의 승리를 거둔 것을 놓고 일각에선 한국 정치의 주류가 교체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의하냐고 묻자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주류, 비주류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간절한 사람들이 어느 정당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현재 코로나19 재난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연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지닌 것이다. 나중에 보수가 혁신해서 우리보다 더 파격적인 비전을 제시한다면 선거 결과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통합당의 독주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써 거대 양당 독식체제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 안팎에서 비례위성정당 창당 방안이 논의되자, 이를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정의당·녹색당 같은 소수정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도권 정치에 안착시켜야 했는데 이번에 다 좌절됐다. 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 난립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스튜디오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과 결과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총선 압승 이후 민주당에선 ‘열린우리당의 교훈’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당시 재선 의원으로 열린우리당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던 그는 “말과 행동의 무게”를 강조했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일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지, 전적인 면허증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민들이 취업시켜 줬다는 것을 잊고 마치 우리가 세상을 다 바꿀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렇게 정치인 각자가 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책임 있는 집단이 아닌 거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같은 것들은 철저히 준비하고 정교하게 다듬어나가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국민들이 원하는 간절한 어젠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으로 옮겨왔고, 안락한 수도권 지역구(경기도 군포)를 버리고 민주당에서 가장 불리한 대구로 간 그에겐 ‘경계인’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하지만 김 의원은 “나는 경계인이 아니라 중재자”라고 강조했다. “2011년 대구로 내려가기까지 나에겐 늘 ‘한나라당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민주당의 다수였던 호남 의원들의 마음을 잡지 못해 2번이나 원내대표 선거에서 떨어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대구·경북에서 바라보는 정치와 수도권에서 바라보는 정치는 관점이 너무 달라 늘 긴장 관계가 있다. 열혈 민주당 지지자에겐 내 정체성이 모호해 보일 테고, 대구에선 한쪽이 일방적 헤게모니를 가져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나의 역할은 이를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일이다.”

그는 지난 2일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대선 도전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김부겸식 통합의 정치’는 ‘팬덤정치’가 심화되는 요즘 정치 현실에서 과연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을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바보 노무현’처럼 ‘바보 김부겸’도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까? “내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대중을 설득하는 강렬함이 없다. 좀 밋밋하다.(웃음) 그 아우라를 쉽게 흉내 낼 수 없으니, 나는 나름의 진정성으로 밀고 나가겠다. 타협의 목소리는 늘 한국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각광받지 못해왔다. 나의 역할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국민이 평가하겠지만 ‘출구 없는 멱살잡이 정치’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주현 이지혜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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