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만 얼굴 마담용 청년 급조.. 수직적 정당문화 바꿔야"

최고야 기자 2020. 4.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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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젊은 일꾼의 보수 재건 고민
선거 때마다 청년 정치 외치지만 시간 두고 인재 키울 생각은 안해
후배가 공천 신청하면 눈치부터.. 정치적 희망 사다리가 없는 조직
“청년 당직자나 보좌진을 정치적 ‘동지’가 아닌 ‘을’이나 ‘아랫사람’으로 본다. 나도 언젠가는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 사다리’가 없는 조직이다.”

“후배 기수들이 공천 신청하면 선배들이 눈치부터 준다. 이런 조직에서 청년 정치가 가당키나 하겠나.”

미래통합당이 4·15총선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당하자 안팎에선 젊은 세대가 당을 이끌거나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연이은 세 번의 ‘폭망’을 겪은 통합당 청년 당직자, 보좌진들은 보수 진영에 청년 정치가 좀처럼 뿌리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전신인 새누리당 시절부터 선거 때마다 ‘젊은 정치’ ‘청년 정치’를 주장했지만 말단 당직자 시절부터 내공을 닦게 해 국회의원까지 키워내는 청년 정치 양성 시스템 자체가 없다 보니 청년 정치 문화가 당 조직을 바꿀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 선거 때만 되면 밖에서 청년 인재라고 영입하지만 정치적으로 훈련이 안 되어 있어 선거 기간 미디어에 내보낼 ‘청년 장식’으로 용도가 한정되기 일쑤였다. 이번 총선에서 청년들이 철저히 외면한 보수 진영에서 다시 보수 재건을 고민하는 통합당의 젊은 당직자, 보좌진들이 말하는 보수의 문제점과 해법을 들어봤다.

○ “토론은 NO, 상명하복이 현 보수 정당 문화”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은 의원실 비서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박 의원이 당시 희망 상임위가 아니었던 교육위원회로 옮기게 돼 막막해하고 있던 차에 마침 교육위 소속 의원실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있는 한 비서관이 “이 문제를 해결하면 큰일 하시는 것”이라며 사립유치원 비리 관련 입법 아이디어를 냈다. 유치원계의 집단 반발 등 사회적 파장이 예상됐지만 박 의원은 입법 아이디어를 받아들였고, 해당 법은 논란 끝에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했다.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 시절 젊은 당직자들이 당의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 모인 당직자들은 “생활 밀착형 정책 이슈를 끌고 가야 한다”며 반려동물 인구를 겨냥해 유기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현역 의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이게 뭐냐”며 그 자리에서 ‘킬’해 버렸다. 그 대신 채택된 당 쇄신 방안은 당사 팔기, 세비 줄이기 등 기존에 반복해 왔던 내용들이었다.

두 장면을 보면 비교적 상하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민주당과 보수 정당 특유의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통합당의 조직 문화를 비교할 수 있다. 통합당의 한 30대 당직자는 “윗선에서 아이디어를 묵살하면 대부분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가 결정했으니 그대로 간다’는 식”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통합당 청년 당직자와 보좌진들은 현 보수 진영에는 ‘청년 정치 문화’와 ‘청년 정당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청년 공천’ ‘3040 기수론’ 등을 이야기하기 전에 젊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액션플랜이 당에 스며들 수 있는 청년 정치 문화와, 그런 게 가능토록 하는 청년 정치인을 훈련시켜 키워내는 청년 정치인 양성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보수당이 꼰대당으로 전락하고 50대 이하의 외면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 “낙하산식 청년 영입 대신 당에서 청년 인재를 키워야”

민주당과 통합당은 청년 인재 양성 방식도 다르다. 민주당은 학생 때부터 당에서 오래 활동한 ‘토박이 청년’을 정치 신인으로 키워내는 구조라면, 통합당은 이름이 알려진 외부 인사를 깜짝 영입해 내세우는 방식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1983년생 동갑내기인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당선자(서울 동대문을)와 통합당 배현진 당선자(서울 송파을)를 비교하면 양당의 특징을 쉽게 알 수 있다. 장 당선자는 23세 때부터 14년간 민주당에 몸담으며 20여 개의 정당 이력을 쌓았다. 2006년 의원실 정책비서부터 시작해 열린우리당 대학생정책자문단 부단장, 민주당 서울시당 대변인, 민주연구원 청년정책연구소 부소장 등 경력이 빼곡하다. 배 당선자는 2017년 정권 교체 후 MBC에 사표를 내고 돌연 낙하산으로 한국당에 영입된 케이스다. 톱다운식 청년 인재와 밑에서부터 커 온 보텀업식 청년 인재의 대민 소통 능력, 이슈 파이팅 능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당내에 만연한 청년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이도 있다. 20대 국회에서 3년간 당에서 청년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박모 팀장(41)은 “선거 때면 ‘이 청년으로 민주당을 이길 수 있겠느냐’며 그나마 있던 청년 인사들도 외부의 낙하산들에게 밀리기 일쑤”라고 했다.

지난 4년 동안 새누리당, 한국당을 거쳐 통합당에서 사무처 청년국장으로서 청년 인재의 선발과 양성을 맡았던 윤선형 청년국장은 “선거 때마다 이어지는 ‘청년팔이’를 끝내려면 청년 아이디어가 스펀지처럼 흡수되는 청년 정치 문화와 청년 정치인을 양성하는 시스템이 당에 뿌리 깊게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야 best@donga.com·최우열·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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