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밀보건과학' 모두의 건강 시대를 향한 도전

천홍구 고려대 정밀보건과학융합 전공 주임교수 2020. 4. 2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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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트로이 왕자 티토노스와 사랑에 빠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언젠가 죽을 티토노스가 걱정되어 제우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청했습니다. 에오스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티토노스와 행복하게 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한 젊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청한 것이 큰 저주였음을 깨달았습니다. 티토노스는 죽지만 않을 뿐 한없이 늙어갔기 때문이지요. 결국 에오스와 노쇠한 인간 티토노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최고의 의료혜택을 받았던 조선 왕의 평균수명이 46세였음을 감안하면, 트로이 사람들의 눈에 지금 우리는 티토노스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증가한 한국인의 기대수명과 달리, 건강수명은 오히려 감소해 노년에 질병으로 고통받고 지내야 하는 시간은 2012년에 15.1년에서 2016년에 17.4년으로 증가했습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극으로 인한 노인 의료비 부담 그리고 그에 따른 노인 빈곤은 인류사회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도전이며, 이를 대비하지 못하면 가까운 미래에 큰 재난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맞춤형 암치료, 유전자 교정, 면역치료제 등 첨단 의료기술이 발전해 난치병 극복과 건강한 노년에 대한 장밋빛 희망이 보이는 듯하지만, 이러한 첨단 의료기술은 비용이 매우 커서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집중되고 결과적으로 인구집단(Population)의 건강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65세 이상 노인 의료비가 2015년 20조원에서 2025년 60조원으로, 2060년에는 390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전망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인구집단 수준에서는 질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것보다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보건학은 이를 위한 정확한 분석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최근 더 저렴하고 빠르고 정확한 분석기술이 등장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 진보로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정보의 수집과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진보는 아직까지 보건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게이츠재단,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서는 기술혁신을 적극적으로 응용해 3P(Precision, Prevention, Population)의 관점에서 개인의 건강정보 그리고 사회·경제·환경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예방적 개입을 시행함으로써 모두의 건강을 달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정밀보건과학(Precision Public Health)이라 부릅니다.

최근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대한민국이 보여준 신속한 진단키트 개발 및 허가, 확진자 데이터 분석에 따른 접촉자 자가격리, 선별진료소 적재적소 배치, 한정된 자원을 이용한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전수검사, 투명한 정보 공개에 따른 시민의 동참은 정밀보건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의 대규모 성공 사례입니다.

아직까지는 과학기술, 정책, 보건학 등 학문 분야 간 분절로 인해 정밀보건과학에 있어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 어떠한 혁신이 가능한지 충분히 모르는 상황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세부 전공의 틀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건강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소통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티토노스의 저주를 벗어나 모두의 건강을 향한 희망의 시대를 열게 될 것입니다.

천홍구 고려대 정밀보건과학융합 전공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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