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최대 제면기업체 대표 "한국 칼국수, 우동의 원조"

박효인 2020. 4. 2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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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제면기 제조업체 대표가 우동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칼국수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를 책으로 펴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조선이 무로마치 시대 이후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 칼국수를 전했다는 설이 있으며 오카하라 회장은 "그 시기에 일본에도 맷돌이 보급됐다. 칼국수가 우동의 원형"이라고 추측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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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제면기 제조업체 대표가 우동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칼국수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를 책으로 펴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오카하라 유지 사누키멘키 회장이 올해 1월 자비로 펴낸 책 '후에키류코(不易流行)'에서 한반도 유래설을 제시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현지시간 23일 보도했습니다.

우동으로 유명한 일본 가가와 현에서는 승려 구가이(空海·774∼835)가 중국에서 제조법을 가져온 것이 우동의 시초라는 설이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오카하라 회장은 무로마치(室町)시대(1336∼1573년)에서 에도(江戶)시대(1603∼1867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면 요리가 우동의 원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구가이가 활약한 헤이안(平安)시대(794∼1185년) 초기에는 우동을 만들 때 필요한 소금과 소맥이 "일본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당시 서민은 쌀을 중심으로 곡식을 낱알 그대로 먹는 식사를 했으며 밀을 갈아서 요리하는 분식이 도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선이 무로마치 시대 이후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 칼국수를 전했다는 설이 있으며 오카하라 회장은 "그 시기에 일본에도 맷돌이 보급됐다. 칼국수가 우동의 원형"이라고 추측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오카하라 회장은 "우동을 구가이의 공적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알지만,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소금을 양산할 수 있게 된 에도시대에 비로소 우동이 확산하기 시작했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이 신문은, 오카하라 회장의 견해는 에도시대에 가가와 현 고토히라초(琴平町)에 있는 신사인 고토히라구(金刀比羅宮) 문 앞에서 사누키 우동을 먹은 참배객이 이를 전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라고 전했습니다.

1910년 창업한 사누키멘키는 일본에서 실적이 가장 좋은 제면기 업체로 사누키 우동, 메밀국수, 일본 라면 등을 면류로 만들 때 필요한 설비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박효인 기자 (izza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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