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갇힌 아이들

기자 2020. 4.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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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n번방’서 딸려 나온 초등생

가해자가 고작 열두 살이라니

괴물로 변한 아이 책임은 누가

놀 시간 뺏기고 줄서기 들어간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른에게만 인생 있는 건 아냐

제한된 사회생활이 석 달째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미팅에 참석하고는 있으니 외출 봉쇄령이 떨어진 나라나 이동 제한에 걸린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당연한 줄 알았던 인간의 기본 권리에 대해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즈음이다. 어른들이야 불편함을 감수하며 자구책을 찾는다지만 초등학교 문턱도 넘어 보지 못하고 5월을 맞이하게 된 전국의 여덟 살 아이들은 가엾기만 하다. 학교가 어디 공부만 하는 곳인가. 입학 한 달 만에 파김치가 됐을망정 새 환경 새 친구들과의 생활이 신나서 ‘인생이 참 즐거워요’ 하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요번 여덟 살들은 새 책가방을 메어 보지도 못하고 그런 깜찍한 경험조차 못 하고 있으니.

천재지변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참으로 많은 걸 새로 배우고 일상이 다른 방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디지털 시대가 아니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사회생활의 반 이상이 증발해 버렸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인터넷 강의에 적응해야 했고, 먹거리도 배달 받고, 만나기 어려워진 지인과는 화상 통화로 갈증을 해결한다. 단조로운 일상과 칩거로 인해 집필에 집중력도 생겼다. 설정한 인물에 비해 사고(思考)가 넘친다는 편집자 의견을 듣기는 했지만. 중학생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소리도 나왔다.

단출하게 지내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졌을까. 정황과 심리를 조밀하게 묘사하는 버릇이 심해지고 있다. 묘사의 매력에 빠지면 아동문학의 경계를 벗어나는 줄 알면서도 편집자 의견에 좀 갑갑증이 일었다. 조숙한 아이로 설정했어도 나온 의견이면 수긍해야 할 판이건만 왜 일반적인 기준을 들이대나 싶었다. 아이라고 다 같지 않은데. 또래보다 웃자란 아이도 있게 마련인데. 결국 나이를 열두 살로 수정했으나, 문득 열두 살 아이들 사고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왠지 내가 현실의 아이들을 잘 모르고 있다는 불안감마저 생겼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혼란을 가중시켰다. 성 착취 문제며 음란 사이트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서 초반에는 그런 일이 또 터졌구나, 이번에는 이 사안을 제대로 처리해서 사회적 인식이 좀 바뀌었으면 하는 심정이 전부였다. 그런데 사건이 파헤쳐질수록 뭐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정황이 드러난다. 나로서는 ‘제2의 n번방’ 운영진에 열두 살 초등학생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 미성년 피해자도 기절할 노릇인데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된 운영 가해자가 고작 열두 살짜리란다. 나이를 만으로 따져도 초등학생이다. 우리가 말하던 어린애.

아이들 정서를 고려하면서 글을 쓰고 까딱 실수로 나쁜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지 고심하며 책을 내는 입장이라, 나에게 10대 아동 청소년이란 자식 같고 지켜줘야 할 조심스러운 대상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어린이 책 분야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고 옳다고 믿어온 것들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충격이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 아이든, 그의 부모든, 우리 모두든.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만한 도서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오는데 그 ‘꿈과 희망’을 준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무력하고 공염불일 뿐인지 자괴감이 들고 아찔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아이들의 정신에 뭔가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는 한가. 친구들과 저속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 아이가 부모 앞에서는 조신하게 굴기도 한다는 걸 부모는 알까. 그 이유가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는 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보려고 해야 어른일 것이다. 그 한쪽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숙제가 참 크다.

수천만 명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n번방’에서 딸려 나온 열두 살짜리 아이가 저 혼자 그렇게 됐을 리 없다. ‘나는 나와 주변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처럼 아이는 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바이러스가 변종으로 진화하며 공격해 오는 사태나, 가면(假面) 뒤에서 ‘노예’를 찾아 즐기는 인간의 가학성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어른들의 줄 세우기와 성공의 잣대가 옳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어렸을 때 어두워질 때까지 놀아본 경험을 즐겁게 말하면서도 ‘그렇게 놀 시간에 공부 좀 해라’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지 않은지. 놀이의 희열이 아이를 키운다. 놀이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억압을 해소하고 관계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의식을 배우는 경험이다. 해소되지 못한 억압은 몸에 갇힌 분노가 돼 반드시 누군가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 ‘n번방’ 가해자들을 괴물로 몰아세워 처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 결과물의 기저를 파악하고 교정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변종은 어떤 식으로든 번지고야 만다.

학교도 놀이터도 비었다. 학원 가방을 메고 나가는 아이들이 종종 엘리베이터에서 보일 뿐이다. 한창 놀아야 할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인생이 즐겁다고 깜찍하게 말하던 여자애가 한 달 만에 파김치가 됐던 건 즐거운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놀이의 시간을 박탈당하고 줄 서기에 들어간 것이다. 오래전 그 여자애가 왜 이토록 인상적으로 남았는지 생각해 보니 그렇게 말할 때 참 예쁘고 기특해서였다. 그때 그 아이는 햇살 같았다. 인생이 뭔지 알아야 그런 말을 한다고 일갈할 일이 아니다. 어른들에게만 인생이 있는 게 아니니까. 햇살 한 줌 같았던 여자애의 깜찍한 한 달은 너무 짧았다. 그런 시간을 아이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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