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덮을건가 턱 덮을건가.. 계속 배포할건가 말건가.. '아베 마스크' 딜레마

도쿄/이태동 특파원 2020. 4. 25. 03: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본지특파원 '아베마스크' 받아보니]
코와 입만 간신히 가려지는 수준
겉면 군데군데 '누런 자국' 보여, 안 그래도 작은데 빨면 더 줄어
급하게 코로나 대응하려다 역풍.. 불량품 발견돼 일부 회수조치도

'코를 가려야 하나, 턱을 가려야 하나.'

일본 정부가 코로나 예방을 위해 자국 내 전 가구에 나눠주는 마스크를 써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마스크 크기가 작아 코를 덮으면 턱이 드러났고, 턱을 막으면 콧구멍이 나왔다. 마스크라기보단 직사각형 가리개에 가까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두 번째)가 16일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에서 마스크를 쓴 채 발언하고 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일본 정부가 전 가구에 배포하고 있는 마스크를 직접 쓴 것이다. /A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지난 17일부터 외국인 포함 전국 총 5850만 가구에 천 마스크를 나눠 주고 있다. 우체부가 가구당 2장씩 우편함에 넣어주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배포 중이다. 엉터리라는 비판이 많았다. 24일 실제 배달된 마스크를 꺼내 보니 사람들의 불만이 틀리지 않았다. 2장 중 하나의 겉면에서 사람 때 같은 누런 자국을 여러 개 발견했다. 먼지인가 긁어내 보려 했지만 쉽사리 떼지지 않았다.

크기를 재 보니 가로 13.5㎝, 세로 9.5㎝였다. '시판용 성인 사이즈'라는 일본 후생노동성 설명과 달리 일반적인 성인용 보건 마스크(17.4㎝×9.4㎝)와 비교해 작았다. 시판 보건용 마스크는 실제로 썼을 때 전면부가 펼쳐지면서 확장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마스크는 유아용이지 싶었다.

후생성은 '반복 세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천 마스크의 장점으로 들었다. 마스크 포장지에 적혀있는 지침대로 표백제만 사용해 손으로 빨아 그늘에서 말려 봤다. 가로 1㎝, 세로 0.5㎝ 이상 줄어들었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장을 평균 20번 정도 빨아서 쓴다고 하면 마스크 20억장 분량의 소비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가 된다"고 했는데 20번이나 빨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소형 마스크보다 작은 아베 마스크 - 일본 정부가 지급한 마스크(3)를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성인용(1)이나 소형(2) 마스크와 비교했을 때 가로 길이가 최대 4cm 정도 짧다. /이태동 특파원

아베 신조 총리는 정책 홍보를 위해 이 마스크를 공식 석상에 직접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른 각료들은 대부분 코와 턱을 전부 덮는 보통 마스크를 쓰는 반면, 아베 총리만 꿋꿋이 대국민 배포용 천 마스크를 쓰고 나오니 '작은 크기'가 더 도드라진다. 일본 국민 사이에선 '아베노믹스'란 말에 빗댄 '아베노마스크'란 조롱성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466억엔(약 5300억원)을 들여 야심 차게 추진한 '전 국민 마스크 배포 정책'은 악수(惡手)로 결론나는 모양새다. 배포 전부터 가구당 일괄적으로 2장씩 주기로 결정한 데 대해 다인(多人) 가구에서부터 불만이 나왔다. 마스크 품질도 말썽이었다. 아베 내각이 일반 가구에 앞서 임산부에게 배포한 마스크 50만장 중 7800여장이 불량품으로 드러나 21일 결국 배포를 중단했다. 이어 일반 주민에게 배포한 마스크에서도 불량이 발견되자 정부는 납품업체 두 곳 제품 중 미배포분을 전량 회수하기로 24일 결정했다. 이 납품업체는 해외 공장에서 마스크를 제조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4일 도쿄올림픽을 공식적으로 연기하기 전까지 '대회 강행' 의사를 밝히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올림픽 연기 후 일본 전역에서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지난 1일 전 국민 마스크 보급을 단행했지만 오히려 역풍만 불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미 지난 18일 일반 배포용 아베노마스크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내부 문건을 입수해 22일 보도했다. 후생성은 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답하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가 애초 마스크 납품 가격을 340억엔이라고 밝혔는데, 야당에서 담당 부처에 문의해 보니 91억엔이라고 답변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다. 지난 14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42%로 전달 조사보다 6%포인트 하락했다. '지지한다'가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47%)보다 낮은 건 약 2년 만에 처음이다. 21일 아사히신문 조사에선 "아베 총리가 코로나 확산 방지에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가"란 질문에 57%가 아니라고 대답해 '그렇다(33%)'는 대답을 압도했다. 24일 현재 일본의 코로나 확진자는 1만3436명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