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작가 "휴지 사재기 않는 한국.. 국가 열등감 벗어날 기회"

문지연 기자 2020. 4. 2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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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위안이 되는 韓 코로나 대응' 칼럼 美 작가 콜린 마셜
한국에 4년째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 작가 콜린 마셜씨는 지난 21일 “한국은 선진국인데 정작 한국인들만 그 사실을 모른다”며 “국가열등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이 전 세계의 찬사를 받자 그 나라 국민들은 ‘우리가 선진국이야?’라며 놀랐다. 국가열등감에 젖어 있다는 의미다.”

지난 14일 미국 주간잡지 뉴요커에 실린 한 칼럼은 날카로웠다. 정곡을 찔린 한국인들은 “격세지감이지만 사실이다” “이제는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 글을 썼다는 미국인 작가 콜린 마셜(37)은 한국을 잘 아는 듯했다. 한국 내 코로나19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고, 그 안에 형성된 국민성을 특징화해 써내려갔다. 외국인이 본 한국인의 열등감이라니,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카페에서 ‘코리안드림’을 꾸고 있다는 그를 만났다.

마셜 작가는 서울에 정착한 지 4년째라고 했다. 우리말이 유창했고 한글로 된 두꺼운 책을 들고 나타났다.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며 입 밖에 꺼낸 작품은 문예영화의 거장 김수용 감독이 1966년에 만든 ‘안개’였다. 한국에 대한 그의 평가는 깊은 애착과 진중함에 근거한 것으로 보였다.

한국인 국가열등감의 기원은

마셜 작가는 한국을 또박또박 ‘선진국’이라고 불렀다. 정작 한국인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되레 자국을 ‘후진국’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이런 인식이 국가열등감(a national inferiority complex)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그렇다면 그게 왜 유독 한국인들에게 과도한 걸까. 마셜 작가는 그 이유로 세 가지 분석을 내놨다.

그는 “첫 번째 한국인에게는 비교 집착이 있다”고 했다. 남을 모방하는 사고방식에 기인하는데, 경쟁적이고 개성이 없는 일률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개인 대 개인을 비교하는 버릇이 나라 대 나라를 보는 관점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국가열등감은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이라는 게 두 번째 주장이었다. 한반도를 장악한 일본은 근대적 개발을 명분으로 한국인을 억압하고 차별했다. 그 시기 형성된 집단무력감이 국가열등감으로 귀결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마셜 작가 역시 이런 분석에 동의한다고 했다.

마지막 하나는 반복된 재난으로 인한 충격의 지속성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었다. “두 사건 모두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며 “이런 과거의 국가재난 경험과 잦았던 실수들이 한국인들에게는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굉장히 선진국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편의점 매대의 휴지를 보고 깨달은 것

그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가진 선진국과 후진국에 대한 개념을 재정의해 국가열등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마셜 작가는 “한국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은 편의점 매대에 휴지가 남아 있는 걸 볼 때였다”며 미국의 상황을 통해 본 한국의 특징을 짚었다.

한국에 거주 중인 미국인 작가 콜린 마셜씨는 21일 “한국인들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선진국, 후진국 개념을 재정의하고 스스로 열등감에서 벗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먼저 재난적 상황에 빛을 내는 한국인들의 단합력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은 모두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하나’ 개념의 사회가 아니다. 한국과 달리 연대감이 부족하다”며 “2001년 9·11 테러 당시 나는 워싱턴DC에 살았는데 그 상황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마치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일인 듯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5일 한국에서 무사히 치러진 21대 총선을 언급하면서도 “뛰어난 방역 역량이었다. 그러나 11월 미국 대선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미국에는 마스크 착용에 난색을 표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마셜 작가는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이던 지난 2~3월을 떠올렸다. 몇몇 고향 친구들에게 ‘한국을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머지않아 미국에 상륙할 바이러스의 여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방역체계의 문제점은 잃은 지 한참 뒤에야 움직인다는 것”이라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좋은 예다. 준비 없이 큰 피해를 입었던 뉴올리언스는 15년이 흐른 지금까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경험하고 얻은 교훈으로 비교적 준비가 잘 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인이 이룬 코리안드림

한국을 향한 세계의 찬사가 쏟아지지만 국내 일부에서는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강한 비판일까, 비판을 위한 비판일까. 그는 “완벽한 대응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판단할 수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더 빠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 있고, 충분히 존중한다. 중국발 항공편을 금지해야 한다는 비판 역시 일리 있다”며 “그런 초기 비판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치 성향에 따른 갈등이 일부 분열적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데도 동의했다.

오히려 우려해야 할 것은 여러 외신들의 ‘부분적 보도’라고 마셜 작가는 말했다. 영·미 매체에서 한국을 조명할 때 다루는 주제는 한류와 북한 등 극히 일부인데, 늘 똑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내용만을 다룬다는 지적이다. 그는 “어떤 매체들은 한국에 대한 칭찬을 오버스럽게 하기도 한다”며 “한국의 대응이 미국 등에 비해 훌륭한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은 한국 내 여러 갈등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며 “한국 정치·사회 배경을 충분히 설명한 보도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코리안드림이라는 표현을 또다시 꺼냈다. 마셜 작가가 뉴요커 기고문에 쓴 코리안드림 이야기는 두 가지 의미를 가졌다. 그는 “하나는 아메리칸드림에서 쓰이는 뜻 그대로다. 더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 이번 사태로 지금 나는 미국에서보다 더 잘 살고 있다는 걸 정확히 알게 됐다”고 했다. 또 “두 번째 의미는 꿈(dream)이다. 내게는 미국과 한국 모두가 선진국이다. 그런데 지금 두 나라 모습은 전혀 다르다. 거기에서 오는 비현실감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서양에 만연한 ‘동양인 차별적 시선’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또 다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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