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뒤 방치된지 34년..체르노빌, 산불이 방사능을 깨웠다

김정연 2020. 4. 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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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체르노빌 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한 목조주택이 불에 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4년 전 오늘, 오전 7시 24분쯤 구소련 우크라이나 키예프 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의 콘크리트 천장이 폭발했다. 현지시각으로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이 넘은 새벽이었다. 인류 최악의 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다.

사고 이후 봉쇄돼 버려졌던 체르노빌 주변 지역을 최근 산불이 휩쓸고 있다.

이번 산불은 지난 3일 시작됐다. 비가 내리면서 한 차례 불이 꺼지는 듯했으나 강한 바람에 다시 살아나 26일 현재까지도 타고 있다. 위성사진에서 체르노빌 인근 제한구역 밖은 물론이고 제한구역 안까지 불이 계속 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3일의 위성사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노란 사각형) 인근 제한구역에서 신불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린피스 독일사무소는

체르노빌 원전 1㎞까지 접근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린피스는 “작은 불이 계속 타고 있고, 바람이 계속 불면 언제든 강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체르노빌에서 약 180㎞ 떨어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산불로 인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70㎍/㎥ 넘는 높은 수치로 유지되고 있다.

산불이 커지면서 지난 18일 한때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499㎍/㎥까지 치솟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체르노빌 주변 방사능 오염 우려

2020년 4월 체르노빌 원전 제한구역 인근 화재로 소실된 면적(빨간색). [그린피스 러시아 사무소]

‘체르노빌 주변의 화재’는 방사능 오염 확산 가능성 때문에 보통의 산불보다 특히 더 위험하다. 봉쇄 구역에 남아있던 방사능 낙진이 화재에 다시 공기 중으로 날리면서,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 우려도 커졌다.

그린피스 러시아 사무소는 지난 13일 “체르노빌 제한구역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산불이 발전소 주변까지 태우고 있다”며 “오염구역 상층 흙에 섞인 방사능 물질이 대기 중으로 흩어질 수 있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20일까지 체르노빌 주변 제한구역 안에서 면적의 22%에 달하는 약 5만 7000헥타르(ha)가 불에 탄 것으로 그린피스 러시아 사무소는 추정했다.

그린피스 독일 사무소의 수석 방사선 전문가인 하인즈 슈미탈은 24일 화상인터뷰에서 “아직 오염이 많이 남아있는 제한구역 내 산불로 얼마나 많은 방사능이 공기 중으로 방출됐을지 아직 모른다”며 “체르노빌 주변의 고농도 지역에서 불로 방출되는 방사능의 총량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의 방사능과 유사한 수준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다만 넓은 지역에 퍼지기 때문에 다소 희석되면서 한 지역에 퍼지는 방사능 농도는 낮다”면서도 “고농도 오염이 남은 제한구역에 10번 들어가는 것보다 화재 현장 한 번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화재는 가라앉아있던 방사능 낙진을 강력하게 퍼뜨린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30km 떨어진 우크라이나 지역의 산불. 현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이번 산불로 체르노빌 사고 이후 내려앉아있던 방사성 물질이 다시 공기중으로 떠올라 퍼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AFP=연합뉴스


안전장치 끄고 실험 중 폭발한 원전

폭발한 체르노빌 원전 위에 두 번째로 덮힌 콘크리트 철골 석관. 철골에 콘크리트를 입힌 뒤 외장은 철로 덮었따. 1986년 사고 직후 덮은 콘크리트 석관은 30년이 지나 설계수명을 다했고, 두 번째 석관은 지난해 완공됐다. 이 석관도 30년이 지나면 수명이 다해, 새 커버를 덮어야 한다. AFP=연합뉴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전기가 끊어질 경우 비상용 발전기가 제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하던 중 안전장치를 끈 상태에서 출력이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발생했다.

정상 출력의 10배가 넘는 에너지가 한꺼번에 만들어지면서 원자로의 콘크리트 천장이 날아갈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고, 내부에서 불이 타면서 500경~1200경 ㏃(베크렐,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단위)의 방사능 물질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분류하는 원전 사고 중 가장 심각한 ‘7등급’으로 분류됐다. 이 사고로 노심 약 200t(톤)이 녹고 그 중 약 5%인 10t 분량의 방사능이 유출됐다고 그린피스 독일사무소는 추산하지만, 원전 안에 있던 방사능 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추산일 뿐이다.

하인즈 슈미탈은 “사고 직후 원전 근처의 숲에서 측정한 방사능은 60~200Sv(시버트)까지 측정됐다”며 “치사선량의 20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현재 IAEA가 정하는 1인당 연간 노출 방사선량은 1mSv 이하다. 200Sv는 1년 노출 최대치의 20만배에 달한다. 화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무거운 방사능물질 외에 공기 중으로 쉽게 날아가 버려 측정이 어려운 제논, 세슘 등 다양한 방사성 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에 실제 노출되는 방사선의 양은 측정치보다도 더 높을 수도 있다.


핵 물질 유럽 퍼져…“구소련 몰락 도화선”

체르노빌 인근 신도시 프리피야트는 당시 모스크바 못지 않을 정도로 최신식의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던 도시였지만, 사고 이후 5만명이 소개하고 유령도시가 됐다. 현재는 체르노빌 관광 코스의 일부로 방문객에게만 짧은시간동안 공개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도시 건설 50주년을 맞은 프리피야트 시내의 한 아파트 모습. AP=연합뉴스

그러나 당시 체르노빌 원전 관계자들은 사고를 제때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중앙 정부에도 ‘큰 사고가 아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원전에서 발생한 핵 물질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체르노빌 원전에서 약 1600㎞ 떨어진 스웨덴 포스마크 발전소에서 처음 방사능을 감지하고 ‘소련 발전소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사고 이후 수습할 방법은 뚫린 지붕을 콘크리트로 덮는 방법밖에 없었다. 망가진 원자로를 덮을 콘크리트 석관은 체르노빌 외부에서 만들어 가져왔다. 너무 강한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는 탓에 인근에서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26일 체르노빌 사고 33주기 추모 행사에서 사망자들의 비석 앞에 꽃을 놓는 시민. AP=연합뉴스

석관으로 덮기 전 전처리 작업에는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동원됐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투입돼 단 몇 초씩 일한 뒤 빠져나왔다. 그 이상 일할 경우 피폭으로 생명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인즈는 "작업에 동원된 약 80만명의 사람 중 다수가 매우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리거나 사망했고,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구소련 몰락의 도화선이 됐다"고 설명했다.

폭발 잔해뿐 아니라 수습 작업 과정에서 생기는 방호복, 장비, 헬리콥터, 모든 게 방사능 폐기물로 분류됐다. 이 폐기물들은 체르노빌 곳곳에 매립됐다. 하인즈는 “체르노빌 원전 10㎞ 반경에 폐기물 매립지가 800개 넘게 있고, 독일의 1년 치 핵폐기물 양의 15배가 묻혀있다”며 “큰 매립지는 방호조치를 잘해놨지만, 마구잡이로 묻어놓은 작은 매립지들에 화재가 번진다면 고농도 방사능이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86년 덮은 콘크리트 석관은 노후화로 약해질 우려가 있어, 2016년 석관 위에 또 새로운 석관을 만들어 덮었다. 이 석관도 수명이 30년이다. 하인즈는 “석관은 문제를 덮어놓을 뿐이고, 안의 원자로와 방사능 폐기물을 꺼내 해결해야 하는데 현재 인류는 그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이전에 가장 큰 원전 사고는 1979년의 미국 펜실베니아 주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다. 1979년 3월 28일, 원전을 식히는 물 공급이 끊어지면서 원자로 중심의 핵연료(노심)가 절반 이상 녹아내렸다('멜트다운'). 멜트다운으로 외부에 방사능이 유출된 '5등급' 사고로 분류된다. 냉각수를 금방 다시 공급하면서 방사능 유출이 적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미국이 한동안 ‘원전 건설 전면 중단’을 선언하게 된 계기가 됐다.

가장 최근 일어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스리마일과 같은 원리로 발생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가 해안가에 위치한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당시 발전소의 전기가 끊긴 데다 비상 발전기도 작동하지 못하면서 원자로를 식히지 못해 결국 원자로 3기가 녹았다. 역사상 두 번째 ‘7등급’ 원전 사고다.


“체르노빌 사고, 원전 신화 깬 사건”

지난 5일 화재 현장에서 측정한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0.34μSv(마이크로시버트)로 측정되고 있다. 자연방사선량이 시간당 0.1~0.3μSv인 데 비해 소폭 높은 수치다.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수석 방사선 전문가 하인즈슈미탈은

하인즈는 핵물리학자다. 체르노빌, 후쿠시마를 비롯해 방사성 오염 지역 현지 조사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체르노빌을 방문한 건 2011년이다. 그는 “체르노빌 인근을 차를 타고 지나면서 보이는 모든 빌딩이 텅 비어있고, 핵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는지 눈으로 보인다”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고 회상했다.

하인즈는 “전 세계 핵 산업계가 해결책을 찾으려 했지만 유일한 방법은 ‘시간을 벌기 위한’ 석관을 덮는 것뿐이었다”며 “그러나 덮어두고 가둬두는 건 완전히 방사능을 없애진 못한다. 방사능은 아직 완벽한 해결책은 없고 차악의 선택지만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장마리 캠페이너는 "체르노빌 사고는 '원전 신화'를 정면으로 깬 사건"이라며 "원전과 관련해서는 늘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번 체르노빌 화재를 통해 생길 건강피해도 예상만 할 뿐 정확한 수치를 얻기는 어렵다. 방사성 피해는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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