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형제복지원장실 바닥 피로 범벅..원장 삽으로 원생 내려찍기도"[이슈&탐사]

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2020. 4.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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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원생 40여명을 직접 때려 숨지게 했다는 증언을 정부가 공식 확보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에서 피해자 심층면접을 총괄한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원장실에 출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원생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해당 피해자 중 일부를 직접 묻었던 사람의 목소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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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만에 첫 공식조사.. "원장실 출입 원생 증언 확보"
출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원생들을 직접 때려 숨지게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원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목이나 삽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는 피해자 증언도 나왔다. 해당 피해자는 원장실 내부에 피가 흥건했고, 수갑과 고문 도구가 있었다는 진술도 했다.

이는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사건 32년 만에 피해자와 유가족 1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첫 공식조사에 포함됐다.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 용역에서 피해자 심층 면접을 총괄한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원장실에 출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원생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부산시 조사팀이 새로 확보한 진술은 당시 전화 기술자였던 A씨(74)에게서 나왔다. A씨는 당시 전화 가설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전봇대 붕괴 사고 책임 문제를 해결하려고 부산에 내려갔다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1년6개월간 수용됐다고 한다. A씨는 전화 설치 업무 특성 상 복지원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A씨는 스스로를 “수용자 중에 원장실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번 조사에서 박 원장의 만행을 낱낱이 진술했다. 그는 “하루는 아침에 원장실에 가보니 바닥에 피가 범벅이 돼 있었다. 조금 이따가 들어오라고 하더니 피를 닦고 (다시) 불렀다. ‘어떤 애가 죽었구나’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도망치던 원생이 붙잡혀오자 원장이 두들겨 팼다. 박인근은 인정사정없이 삽으로 찍는 사람”이라며 “체력이 약한 사람은 죽어버린다”고 했다. 탈출하다 붙잡혀 온 원생에 대해 “고문해서 살이 터지면 소금을 뿌려 발로 밟았다”고도 했다.

A씨는 “원장실은 사무실 옥상 위에 따로 지어놨다. 그 안에 야구방망이처럼 깎은 참나무 몽둥이 열댓 개, 그리고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이 30개가 걸려 있었다. 형사실의 취조실처럼 만들어놨다”고 기억했다. 그는 “40~50명이 (원장에게 맞아) 죽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소대장을 맡았던 B씨는 이번 조사에서 “내 손으로 매장 했던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며 “지금도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나고 술 마실 때도 생각이 난다”고 했다. 조사팀은 “구타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해에 가깝게 죽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받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형제복지원 수용 경험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파괴된 피해자 통계가 수치로 확인됐다.

조사 대상자 절반 이상이 1회 이상 자살을 시도했다. 평생 트라우마에 고통받다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여러 건 나타났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겪은 뒤 정신병원, 정신요양시설 등을 전전하는 등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시설에서 여생을 보낸 피해자도 많았다. 형제복지원 퇴소 후 다시 43년간 정신요양시설에서 지낸 피해자도 있었다. 조사자 3명 중 한 명은 장애가 있다고 언급했다. 전체 인구 장애 출현율(5.39%)의 6배다. 조사자 절반 가까이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끔찍한 만행을 겪은 뒤에도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절망과 가난 속에 평생을 지낸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는 광범위한 피해자 실태조사가 이뤄진 첫 사례다. 국가인권위의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권고, 검찰 과거사위 진상규명 권고가 이어지면서 부산시는 지난해 7월 조례를 제정해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현재 대법원은 무죄 선고를 받은 박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 비상상고 사건 심리를 진행 중이다. 박 원장은 2016년 사망했다.

실태조사는 설문 조사와 심층 면접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피해자 모임의 회원, 형제복지원 대책위에 등록한 사람, 부산시 피해신고센터(뚜벅뚜벅센터)에 등록한 사람 중에서 149명의 표본을 선정했다. 설문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지난 2월 14일까지 진행됐다.

심층면접은 설문조사에 응한 재가 피해자 21명 외에 현재 정신병원 등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재원 피해자 9명과 유가족 9명 등 모두 39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심층면접은 지난 1월 28일부터 지난달 23일까지 진행됐다. 중복 인원을 제외하면 연구팀이 이번에 조사한 피해자와 유가족은 모두 167명이다.

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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