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세상 바뀐 것 확실하게 알기

류근일 언론인 입력 2020. 4. 28. 03:20 수정 2020. 11. 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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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 당선자의 살벌한 공약, 섬뜩한 보복 불보듯 예상돼
운동권, 이번 총선 승리로 입법·사법·행정 3권 완전 장악
'바뀐 세상'이 만들 뒤끝.. 이제 제대로 겪을 수밖에
류근일 언론인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확실하게 알도록 갚아 주겠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윤석열 검찰을 향해 던진 ‘혁명 공약’이었다. 이 말은 윤석열 검찰에 대한 최강욱 피고인의 유감 표명이었다. 그러나 넓게는 역사상 모든 혁명기에 출현하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보복을 연상시킨다. 섬뜩한 이야기다. 우리는 선거를 한 것인가, 혁명을 한 것인가, 내전(內戰)을 한 것인가?

우리 현대사엔 세상이 확 바뀐 적이 여러 번 있었다. 1950년 6월 28일 아침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앞 아스팔트 길에선 북한군 탱크들이 굉음을 내며 굴러갔다. 그 뒤엔 사복 차림 청년들이 팔뚝에 붉은 완장을 두른 채 주먹을 휘두르며 몰려갔다.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석 달 뒤엔 9·28 수복이 왔다. 또 석 달 뒤엔 1·4 후퇴를 했다. 1953년엔 휴전이 되었다. 1960~61년엔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가 있었다. 자유당·민주당 고관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1972년엔 유신(維新)이 났다. 많은 시국 사범이 감옥엘 갔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선 박정희 시대가 1초 사이에 끝났다. 1980~81년엔 신군부가 들어왔다. 1987년엔 민주화, 40년 사이 세상이 열 번 뒤집힌 셈이다.

이런 천둥 번개가 칠 때마다 귓가엔 상투어 하나가 어김없이 들려오곤 했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앙드레 말로가 말한 '정복자들'의 회심의 미소이자 빈정거림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젠 우리 세상이다. 너흰 다 죽었어." 무릎 꿇고 엎드리고 기라는 것이었다. 필자도 그 소리를 세 차례 들었다. 그 야단을 거쳐 어쨌든 한국은 산업화도 하고 민주화도 했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라는 '정복자들'의 말을 더는 듣지 않겠거니 했다. 착각이었다. 2020년 4·15 총선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엔 '진보 정복자'로부터 그 살 떨리는 빈정거림을 또 들어야 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확실하게 알도록 갚아 주겠다." 열한 번째 사화(士禍)와 옥사(獄事)가 또 있을 모양이다.

프랑스 혁명기에도 로베스피에르 공포정치 때, 그리고 그가 처형당하고 난 다음의 보복 정치 때, 혁명·반혁명 쪽은 서로 "세상 바뀐 줄 모르고…" 하며 상대방을 잡아넣고 고문하고 처형했다. 러시아 혁명 때도 레닌은 계급적 적에 대한 무자비한 청소를 지시했다. 혁명에 참여했던 사회혁명(SR)당, 입헌민주당, 멘셰비키(사회민주주의)도 모조리 투옥했다. 스탈린 집단농장화 때는 부농(富農·kulak)들을 시베리아로 추방하고 그들의 땅과 가재도구를 압수했다. 폭도가 쫓겨가는 부녀자들의 옷을 빼앗으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젠 우리 세상이다. 너흰 다 죽었어"라며 겁박했다.

4·15 총선에서 한국 보수는 참패했다. 선거에선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나 4·15 총선이 단순한 국회의원 선거 이상의 그 어떤 영구 혁명의 시작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보수가 다시 자유선거를 통해 권력을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확실하게 알도록 갚아 주겠다"는 투의 공포와 제거의 살벌함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민중민주주의 입법과 개헌을 통해 의회·사법·권력구조·정치·언론·문화·종교·기업·재산의 자유민주가 삭제되면 그런 상황은 평화적 정권 교체를 두 번 다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런 판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586 NL(민족 해방) 운동권은 1980년대 중반에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전체주의 노선임을 천명했다. 그런 그들이 입법·사법·행정 3권을 틀어쥐었다. 그러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확실하게 알도록 갚아 주겠다"고 어금니를 물었다. 이 근본주의 이념 혁명 앞에서 미래통합당 당권파는 자유의 가치·철학·사관(史觀)·미학(美學)·정체성을 수호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걸 희석(稀釋)하는 게 '중도 실용' '개혁 보수'라고 자처한다. 그런가? 그렇게 해서 4·15 총선을 이 지경 만들었나? 공천을 누가 말아먹었는데?

이 시대 국민도 자신들이 선택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곳간 털어 갈라 먹는 나라’ 뒤끝이 어떨지 한번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그리스·베네수엘라 전례는 완전 파산이었다. 이러다 영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다면? 대책이 딱히 없다. 다음 세대가 몽땅 뒤집어쓸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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