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재판 방청기] "뭐가 부실" 큰소리 뻥뻥

한겨레21 2020. 4. 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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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아빠의 세월호 재판 방청기]'부실 수사'로 처벌받지 않은 해경 수뇌부, 지금은 당당히 따지는 지경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이틀째인 2015년 12월15일 서울 중구 명동 서울YWCA 강당에서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이 당시 문자 지시 내용을 들어보이며 답변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의 아빠 박종대씨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들의 책상에 앉는다. 아들의 방과 복도를 가득 채운 세월호 관련 기록 10만여 쪽을 읽으며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가, 그 답을 찾는 “죽기보다 힘든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가 세월호 참사 6년 만에 형사법정에 선 해경 수뇌부의 재판을 “두 눈 똑바로 치켜뜨고 끝까지 지켜보리라 다짐”한 이유기도 하다. ‘세월호 아빠’의 재판 방청기를 <한겨레21>이 재판 있을 때마다 부정기로 싣는다._ 편집자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것을 다 챙깁니까?”

2015년 12월15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나온 김문홍(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이 말했다. 세월호 참사 현장으로 가면서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고, 목포해경 상황실이나 현장에 출동한 100t급 경비정 123정에 세월호와의 교신을 지시하지도 않았냐는 추궁에 대한 답변이었다. 서장으로서 목포해경 상황실을 지휘할 책임이 있지 않으냐고 거듭 질문하자 이렇게 답했다.

“어떤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뭐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통신기기도 챙기지 못한 무능한 서장이구나, 그 소리를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왜 확인을 안 했냐 그 말씀입니까? 말씀해주십시오.”

6년간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다

당시 특조위 청문회 자리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청문회 위원들을 조롱하던 해경 수뇌부가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뒤에야 형사법정에 서게 됐다. 사건의 핵심 책임자 김석균(전 해양경찰청장), 김수현(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김문홍 등 해경 수뇌부 11명이 그들이다. 만시지탄을 외치지만 그래도 그들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번 재판을 어떤 모습으로 임하는지 나는 두 눈 똑바로 치켜뜨고 끝까지 지켜보리라 다짐했다.

세월호 특별수사단은 지난 2월 해경 수뇌부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세월호 참사로 승객 304명(1명은 해경 도착 전에 사망)이 숨지고 142명이 상해를 입었다. 구조 실패 책임으로 유죄(징역 3년형)를 받은 이는 김경일(전 123정장)이 유일했다. 뒤늦게 기소된 이들은 김경일과 함께 세월호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통제해 즉각적인 퇴선 유도와 선체 진입 지휘로 최대한 인명을 구조하지 못한 혐의를 받는다.

4월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양철한) 심리로 첫 공판준비기일(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 쟁점 사항을 정리하는 절차로 피고인 출석 의무 없음)이 열렸다. 재판부는 “이(세월호 참사) 사건은 이미 6년 전에 발생한 일이었고, 기소 자체는 상당히 늦게 이뤄진 것은 분명하다. 재판부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일반 국민만큼 갖고 있다. 재판을 진행함에 있어 이에 연연하지 않고 양쪽(검찰과 변호인) 주장을 충분히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김수현과 임근조(전 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만 법정에 출석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법정에 섰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신 출석한 변호인들 변론 내용을 살펴보면, 피고인들은 ‘6년 동안 그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퇴선 지시했다면 도중에 사망했을 것?

이 나라에 제대로 된 법과 정의가 있었다면 이미 2014년에 처벌받고도 남을 피고인들이, “사건이 6년 전에 일어났는데, 만약 당시 수사팀에서 부실 수사를 했다고 하면 어떤 점이 부실한지, 왜 부실 수사를 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김석균 변호인)며 오히려 검사들을 겁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흥미롭지만 험난한 싸움이 전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또 피고인 최상환(전 해양경찰청 차장)과 여인태(전 해양경찰청 경비과장), 임근조 변호인의 변론을 보면서,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엄청난 화력과 성능 좋은 신무기를 개발해놓지 않았다면, 결코 호락호락한 싸움은 아닐 것이 분명해 보였다.

초기 조치사항 조작 혐의를 받는 피고인 이재두(전 3009함장)를 제외한 다른 피고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석균의 변호인은 “더 훌륭한 지휘를 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죄는 없다”는 취지로 변론했고, 이춘재(전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 변호인은 “세월호가 많이 기운 상황에서 퇴선 명령이 있었다면 모두 구조될 수 있었는지 그 부분도 의문”이라며 해경 수뇌부가 퇴선 명령을 하지 않은 것과 303명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피고인의 변호인들도 모두 “필요한 주의 의무(어떤 행위를 할 때 일정한 주의를 할 법률상 의무)는 다했다” “육지에 있던 피고인들이 구조 상황실에서 어느 정도까지 구체적인 구조 의무가 있는지 의문이다” 등 회피형 변론을 해댔다. 심지어 조형곤(전 목포해양경찰서 상황담당관)의 변호인은 “만약 (구조) 선박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퇴선을 지시했다면 대부분 사람이 익사하거나 뛰어내리는 도중에 사망했을 거로 보인다”는 막말성 변론도 했다.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 그들의 범죄행위를 살펴보면, 단언컨대 세월호 침몰 당시 피고인들의 합리적 구조 지휘는 없었다. 어쩌면 어떤 피고인은 511호 해경 구조 헬기가 세월호 침몰 현장에 도착하는 시점까지, 상황실에 오지도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2014년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조사 등에서 습관적으로 ‘09:10경 상황실에 임장(현장에 나옴)하여 중앙구조본부를 구성하고…’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당시 조사와 수사를 했던 사람들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주장을 진실로 믿어버리고 김경일만 기소하는 ‘꼬리 자르기’를 단행했다. 그 결과 이제는 구조 실패 혐의로 기소된 법정에서 그들이 공개적으로 “의무를 다해 형사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6년 전 검찰이 어떤 점을 ‘부실 수사’했는지 당당히 따지는 지경이 됐다. 그들의 ‘09:10경 상황실에 임장→주의 의무 다함→형사 책임 없음’ 논리는 이번 재판 내내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해경 수뇌부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시 해야 했을 의무를 세밀하게 확정하고, 구체적인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아니함)를 입증(증거를 내세워 증명함)하지 못하면 어쩌면 이 재판은 그들의 승리로 끝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특별수사단 성과를 가늠하는 재판

이번 재판은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재수사 의지와 성과를 묻는 성격으로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왜 특별수사단을 구성했으며, 100일 가까이 요란스럽게 어떤 수사를 했는지 성과를 가늠하는 중요한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준비한 창의 길이와 칼의 예리함에 따라, 검찰은 국민에게 ‘이 나라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진실을 보여줄 수도 있고, ‘피고인들에게 영원한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난과 저항을 받을 수도 있다. 검찰이 부실 수사라는 오명을 벗고, 피해자 가족과 의식 있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지는 오롯이 검찰의 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피해자 가족들과 의식 있는 국민은, 이 재판 결과에 언제든지 박수 칠 준비가 돼 있다. 반대로 재판 결과가 합리적으로 설득되지 않는다면, 깃발을 들고 광장에 다시 설 준비도 돼 있다. 다음 재판은 5월25일 오후 2시다. 그날도 나는 두 눈 똑바로 치켜뜨고 지켜볼 것이다. 피고인들을, 그리고 검찰을.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한겨레21-세월호 참사 7주기 특별판>을 pdf로 만나보세요 http://img.hani.co.kr/newsfile/new/2021/0414/세월호7주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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