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먼 미래엔 5·18처럼 기억될수도.."

2020. 4. 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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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온 나라가 기울어가는 봄을 봤다.

"그때 제가 느꼈고 배웠던 것은 무기력이었어요."('바운더리' 황유택 연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세월'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여객선이 서서히 잠겨가는 모습을 모두가 바라봤다.

황 연출은 "처음엔 세월호 공연이 퀴어연극제에서 한다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권정희 연출의 '용민지애정술본풀이'(4월 30일~5월 3일 연우소극장)는 제주에서 지내는 세월호 활동가와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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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이어오는 세월호 연극제
'일상에서의 세월호' 주제 10개팀 공연
가라앉은 과거 아닌 우리사회 '트라우마'
세대따라 느끼는 방식은 다를수 밖에..
무거움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서 접근
‘2020 세월호:극장들’에 참여하는 ‘아지트, 틴스’의 송정안, ‘바운더리’의 황유택, ‘용민지애정술본풀이’의 권정희 연출은 “세월호는 해결 안 된 사건”이기에 연극제를 통한 기억의 방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월호:극장들 제공]
연극 ‘바운더리’는 퀴어연극제와 세월호 연극제가 함께한 작품으로, 황유택 연출은 “세월호 참사도, 퀴어도 국가와 사회가 보호하지 못하고, 풀지 못한 숙제라는 점에서 교집합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극장들 제공]

2014년 4월, 온 나라가 기울어가는 봄을 봤다. “그때 제가 느꼈고 배웠던 것은 무기력이었어요.”(‘바운더리’ 황유택 연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세월’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여객선이 서서히 잠겨가는 모습을 모두가 바라봤다. 사람들은 그저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무엇도 할 수 없는 저 자신을 봤기에 무기력이 컸던 것 같아요.” (황유택), “그 무기력함 때문에 부채가 심했어요. 나 하나조차 변하지 않는데 세상을 향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자책감이 컸어요. 지금은 나름대로 기억의 방식으로 세월호 연극제를 하고 있어요.” (‘ 아지트, 틴스’ 송정안 연출)

어김없이 봄은 온다. 습격하듯 찾아와 깊은 상처를 남긴 ‘4월의 기억’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5년부터 해마다 이어온 ‘세월호 연극제’가 올해는 혜화동1번지·연우소극장·성북마을극장·삼일로창고극장 등 4개 극장과 손 잡고 ‘2020 세월호 : 극장들’이라는 타이틀로 관객을 찾았다. 연극제에 참여하는 ‘바운더리’의 황유택(28), ‘아지트, 틴스’의 송정안(36), ‘용민지애정술 본풀이’의 권정희(47) 연출을 최근 대학로에서 만났다.

▶왜 ‘세월호 연극제’일까=‘세월호 연극제’는 어느덧 6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올해에는 무대에 오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애초 공연은 4월 7일부터 한달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공연 종료 시기는 정해두지 않은 채 막을 올렸다. 세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극제을 지속해야 하고, 더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가 해결 안 된 사건”이고 “책임자 처벌 공소시효가 일 년밖에 남지 않아 진상규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걸 외면하지 않는 것이 이 연극제예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진상규명이 돼야 하는데 그것들이 흐지부지되는 상황에서 그 끈이라도 잡는 심정으로요.”(송정안)

“세월호에 대해 알아갈수록 놀라운 건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무엇보다도 공소시효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 연극을 만들며 서로 변화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권정희)

▶‘일상에서의 세월호’를 만나는 시간=‘세월호’를 다루며 제작진이 고심하는 것은 ‘주제’와 ‘전달 방식’이다. 올해로 3년째 참여하는 송정안 연출은 “공연을 준비하면 항상 어떻게 발화해야 할지부터 주저된다”며 “죄책감과 부채감에 함몰되지 않고 나아가는 방향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세월호:극장들’은 10개 공연팀이 바통을 이어받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6주기를 맞은 올해는 공교롭게도 ‘일상 안에서의 세월호’를 주제로 모였다. 송 연출은 “처음 공연할 때는 피해자들의 고립감에 초점을 맞췄는데 3년째가 되니 지금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공간과 이야기를 그렸다”고 말했다. 송 연출의 ‘아지트, 틴스’(5월 15~17일 혜화동1번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든 청소년 자치공동체 ‘아지트 틴스’에서 만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6일 마지막 공연을 마친 ‘바운더리’는 “개개인 삶의 바운더리와 사회의 바운더리에 사는 개인의 이야기들이 모여 만든 연극”이다. 이 작품은 해마다 3~11월 매달 진행되는 ‘퀴어(성소수자)연극제’와 함께 진행했다. 쉽지 않은 시도였다. 황 연출은 “처음엔 세월호 공연이 퀴어연극제에서 한다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세월호’라는 단어에 담긴 무거움, 고민을 던져주는 물음표가 있어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데 왜 퀴어연극제에서 다루는 것인지, 퀴어와는 어떤 교집합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계셨어요. 하지만 세월호 참사도, 퀴어도 국가와 사회가 보호하지 못하고, 풀지 못한 숙제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퀴어연극제에선 이 부분을 최대한 작품 안에 녹이고 싶었어요.” (황유택)

권정희 연출의 ‘용민지애정술본풀이’(4월 30일~5월 3일 연우소극장)는 제주에서 지내는 세월호 활동가와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연극이다. “세월호가 일상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담아냈다”는 것이 권 연출의 이야기다.

▶내일의 이야기로의 ‘세월호’=6주기를 맞으며 ‘세월호 연극제’는 한 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는 가라앉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이자 미래에도 공존하고 기억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세월호 연극제가 계속되는 것에 대한 지지가 있고, 또 일각에선 왜 여전히 세월호 연극은 무겁고 우울하기만 해야 하나,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담론을 펼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어요. 고무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기억의 방식은 다양해질 테고, 그러면 화자들의 태도 역시 달라질 테니까요. 그것들을 다양하게 선보여야 세월호 연극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송정안)

올해 선보이는 작품들도 좀 더 다양한 시각과 대상을 통해 세월호를 바라봤다. ‘바운더리’는 직접적인 이야기 대신 좀 더 담담하게 볼 수 있는 세월호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 장면 중 5·18 당사자가 등장해, 그때의 다큐를 볼 때 공감이 되지 않아 잤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슬픈 이야기이고, 국가적으로 큰일이지만 감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죠. 먼 미래에 세월호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해요. 결국 기억하는 과정과 방식이 중요한데, 미래를 책임질 세대에겐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황유택)

‘아지트, 틴스’를 통해 10대들을 만난 송 연출은 “청소년들은 우리가 6·25를 생각하듯 세월호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거리감이 있더라고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학여행이 취소된 것에 대한 타격을 받았지만 그 당시 세월호를 회피한 친구도 있고 관심을 두고 찾아본 친구들도 있었어요. 타인의 고통을 본인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예요. 그런 것을 보며 청소년들이 세월호를 감각 그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도 세월호가 남긴 숙제들을 미안하지만 같이 풀어가는 것이 그 세대가 된 것 같아요.” (송정안)

“그래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극들이 청소년들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와 고통을 미래 세대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세월호와 이 연극제가 우리에게 유의미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권정희)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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