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는 미생물의 전쟁터..'착한 미생물'과 손잡아야 '피부미인' 된다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5)]

김응빈 교수 2020. 4. 3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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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생물과 피부 건강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우리 인체의 가장 큰 기관인 피부

미생물에 다양한 서식환경 제공

분만과정·아기 주변환경에 따라

피부미생물 생태계 조성 달라져

피지는 미생물 막는 역할 하지만

기름을 영양분 삼는 세균도 있어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환절기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 몸에서 이런 환경 변화에 가장 빠르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곳은 피부이다. 부쩍 푸석해진 얼굴과 잦아진 피부 트러블이 이를 실증한다. 피부는 다양한 신체 기능을 수행한다. 우선 면역계의 제일선으로서 우리의 몸을 감싸 보호한다(면역계에 대해서는 ‘미생물 수다 4회’ 참조). 피부의 단열 및 발한 작용은 체온 조절에 중요한 요소이고, 인간의 원초적 느낌인 촉각도 피부 감각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적당한 햇빛을 받으면 피부는 비타민D를 합성해낸다.

얄궂게도 정작 피부 건강과 기능의 완성은 미생물에 달렸다. 피부를 비롯해 인체의 표면은 온통 미생물로 덮여 있다. 생태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몸은 여러 생태계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각 생태계에는 고유한 미생물 집단이 있다. 이렇게 우리 몸에 상주하면서 해롭지 않거나 도움을 주는 미생물을 모두 일컬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또는 ‘인간미생물체’라고 한다. 이들은 자기 삶의 터전을 가꾸고 보호하고자 외래 미생물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유능한 마이크로 경비원의 보호를 받는 셈이다. 요컨대 이들과 우리는 전략적 동맹 관계에 있다.

■ 피부미생물 생태계

피부 가장 바깥의 각질형성세포는

병원성 미생물의 고유 특징을 감지

피부 거주 허가를 받은 미생물은

면역계 자극하는 단백질 생성 등

해로운 물질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맞춤형 ‘체험학습’ 기회 주기도

가장 큰 인체 기관인 피부는 미생물에게 다양한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 겨드랑이와 샅은 축축하다. 이에 비해 몸통과 팔다리는 훨씬 건조하다. 흡사 지구의 열대우림과 사막 생태계를 보는 듯하다. 상대적으로 피지 분비가 많은 얼굴은 기름기로 특화된 생태계이다. 성인 평균 2㎡ 남짓인 전체 피부 표면적 가운데 팔다리와 머리가 각각 50%(양다리 35%, 양팔 15%)와 1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몸통에 해당한다.

피부미생물 생태계의 형성은 분만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젖산균을 필두로 산도(産道)에 있는 미생물들이 아기의 피부를 덮는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의 피부에는 표피포도상구균을 비롯하여 산모의 피부에 있는 미생물이 제일 먼저 입주를 한다. 따라서 분만 방법에 따라 신생아의 초기 피부미생물 조성이 달라진다. 아기가 자라면서 보듬어주는 이들과 주변 환경에서 미생물이 유입되면서 피부미생물 생태계가 모습을 갖추어 간다. 다시 말해, 피부미생물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그 조성도 신체 부위별로 특화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부미생물 생태계는 사춘기에 큰 변화를 겪는다. 사춘기에 이르면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면서 피지의 분비가 증가한다. 이에 따라 기름기를 좋아하는 미생물이 자연스레 늘어난다. 새로운 미생물이 자리를 잡는 것인지, 기존 미생물 조성의 비율이 변하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성인을 대상으로 2년여에 걸쳐 관찰 분석한 결과, 전반적으로 피부미생물의 조성은 크게 요동치지 않고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지가 많은 곳이 특히 더 안정적이었다. 피지는 지방과 단백질, 염분 등이 섞여 있는 혼합물이다. 피지는 피부와 모발 표면에 기름막을 형성하여 보습 및 보호 기능을 한다. 피지에 들어 있는 지방산 때문에 피부는 산성을 띤다. 이 때문에 뜨내기 미생물이 발붙이기 어렵다. 하지만 피지를 영양분으로 이용하는 미생물도 있다. 따라서 피지로 기름진 부위에서는 이런 미생물들이 터줏대감 행사를 하게 된다.

■ 피부미생물의 자격과 역할

미생물의 인체 거주 허가권은 우리의 면역계가 쥐고 있다. 조화로운 공생을 위한 건실한 구성원의 선별 기준으로 면역계는 병원성 미생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유한 특징을 활용한다. 이를 생물학 용어로 ‘병원체 관련 분자패턴(pathogen-associated molecular pattern·PAMP)’이라고 한다. PAMP는 미생물 표면에 있는 특정 구조물과 성분 따위인데, 그냥 쉽게 도깨비 하면 떠오르는 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피부에서는 가장 바깥 표면, 즉 표피를 이루는 주요 세포 가운데 하나인 각질형성세포가 제일 먼저 나서 PAMP를 감지한다. 만약 병원성으로 판정되면 선천성 면역 기능이 작동하여 항생물질의 일종인 ‘항균제’(15~4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항생물질)가 분비된다. 참고로 각질형성세포는 표피의 맨 아래에 있는 줄기세포에서 유래하여, 통상 2주에 걸쳐 증식하고 분화하면서 표피의 맨 바깥인 각질층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다시 2주 정도가 지나면 피부 표면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게 흔히 말하는 각질의 정체이다. 결국 각질은 새 피부가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이니, 지저분하다 눈살을 찌푸리지만 말고 생물학적 의미를 생각하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마음을 가져보자.

피부 거주 허가를 받은 미생물은 면역계의 교육훈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면역계는 실전 경험이 없는 미완의 상태로 세상에 데뷔한다. 비유로 말하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갓 입사한 신입사원과 같다. 피부미생물은 이런 초보 면역계에 맞춤형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하여, 미생물에 대한 올바른 판단 능력을 길러준다. 예를 들어 성인의 피부 표면에 가장 많은 표피포도상구균은 ‘인터류킨’의 합성을 유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단백질은 몸 안에 들어온 미생물이나 해로운 물질에 맞서 싸우도록 면역계를 자극한다. 표피포도상구균이 장차 마주치게 될 온갖 미생물에 대한 대처법을 함양할 수 있도록 일종의 모의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무균 실험쥐 표피에 표피포도상구균을 바르면 곰팡이와 기생충 감염에 더 강해진다. 흥미롭게도 표피포도상구균을 피하에 주입하면 염증 반응이 나타난다. 이것은 비록 유익균이라 하더라도 허락된 거주지를 벗어나 체내로 들어가면 면역계의 공격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 피부미생물의 힘겨루기

호시탐탐 피부 침략 기회 노리는

‘황색포도상구균’과 ‘여드름균’에

우리 면역계의 항균물질론 역부족

‘착한 세균’인 표피포도상구균이

항생제를 생산해 큰 힘을 보태줘

피부미생물 생태계 조율을 통해

건강 증진하려는 연구 이미 활발

미국 국립보건원은 인간미생물체의 변화와 우리 건강의 상관관계(궁극적으로는 인과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10년(2007~2016)에 걸쳐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건강한 미국인 자원자 240여명을 대상으로 피부, 입속, 콧속, 대장, 생식기 등 여러 신체 부위에서 5000개 이상의 시료를 채취해 미생물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총 1만종 이상의 미생물이 인체에 거주하고 있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인체미생물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데에 근간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모두 제각기 제 살 구멍을 찾아 연대와 협력, 경쟁을 벌인다.

피부에서는 포도상구균을 둘러싼 미생물 간의 힘겨루기가 잘 알려져 있다. 포도상구균은 건조와 염분, 자외선 등 여러 환경 스트레스에 상대적으로 잘 견딘다. 이런 특성은 피부 표면에서 살아가는 데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피부에 사는 미생물의 90% 정도가 포도상구균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40여종의 포도상구균 가운데, 피부에는 착한 종인 표피포도상구균이 주로 살고 있다. 그런데 호시탐탐 피부 침략 기회를 노리고 있는 나쁜 포도상구균이 있다. ‘황색포도상구균’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여름철 식중독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유감스럽게도 인류의 5분의 1 정도는 황색포도상구균을 콧속에 늘 지니고 있다.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에서는 일시적으로 있기도 하고,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차이는 개개인의 면역계 특이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불한당이 영역 확장의 야욕을 불태운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끼리끼리 모인다고, 여드름균이 황색포도상구균을 뒤에서 부추긴다. 황색포도상구균이 난동을 일으키면 그 틈새를 파고들겠다는 속셈이다. 물론 우리의 면역계가 이를 가만두지는 않는다. 이들의 세 규합을 막고자 항균제를 내뿜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다행히 착한 표피포도상구균과 그 친구들이 큰 힘을 보태준다. 이들은 황색포도상구균 패거리가 피부에 들러붙지 못하게 하고, 항생제를 생산해 황색포도상구균에게 치명타를 날린다.

피부미생물 생태계의 건강성과 안정성이 피부 건강의 기본이라는 사실은 생태학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하다. 임상적으로도, 피부미생물 생태계의 교란이 아토피 피부염과 건선, 여드름, 비듬 등과 같은 여러 피부 질환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피부미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면서 황색포도상구균이 늘어나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막 피부미생물이라는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얽히고설켜 있는 이들의 관계와 그 기능에 대해 궁금한 것투성이다. 어떤 미생물이 피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피부 상태가 아주 좋은 사람과 피부 트러블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피부미생물을 비교해보면, 착한 미생물과 나쁜 미생물 후보군을 일차적으로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 선별된 미생물을 분리하여 전체 유전자를 해독한다. 여기서 얻은 정보를 유전정보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분석하면, 가려진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피부미생물을 조율하여 피부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려는 연구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생물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피부를 아름답게도 불편하게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피부를 원한다면 피부미생물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말장난 같지만, 피부 ‘미(微)’를 가꾸다 보면 시나브로 피부 ‘미인(美人)’이 될 터이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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