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앙일보

불 나자 2층서 뛰어내린 부자..입원한 아들 "아버지는요"

정진호 입력 2020.05.01. 00:03 수정 2020.05.0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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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2인1조로 전국 돌며 일해
이모 "아빠 사망 소식 어찌 전하나"
부친 여읜 20대 대전서 달려와
"일 끝내고 연휴에 오신다 했는데"
코로나로 결혼 미룬 예비신랑도
외국인 3명..9명은 신원파악 못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의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30일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38명이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피해자의 합동분향소는 눈물바다였다. 30일 오후 3시 경기도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분향소가 꾸려지자 유족 50여 명이 몰렸다. 가족의 영정사진을 보며 오열하는 이들도 있었고,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먼 곳만 응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화재 당일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이씨 부자(父子)는 2층 근무 중 불이 나자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불길이 순식간에 타올라 1층 출구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사망했고 아들(34)은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가족들에 따르면 아들 이씨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버지의 생사를 계속 물었다고 한다. 이씨의 이모는 “의식을 찾고 깨어난 조카에게 ‘아버지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씨 부자의 사이는 각별했다. 이들은 지난 5년간 전국을 돌며 공사 현장 등에서 합을 맞춰 왔다. 아버지가 사수, 아들이 부사수를 맡으며 ‘2인 1조’로 움직였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자신의 사업체를 차리는 게 목표였다.

아버지의 시신은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38명의 희생자 중 9명은 지문 등이 훼손돼 신원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9명 중 한 명이 아버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DNA 분석 결과는 다음달 2일 나올 전망이다.

또 다른 사망자인 김모씨의 아들(23)은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4시30분쯤 유족이 모여 있던 화재 현장 인근 모가 실내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는 오전 3시쯤 형(27)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대전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왔다고 한다. 아들 김씨는 날이 밝을 때까지 어머니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어머니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그는 “아버지가 이천에서 일이 끝나면 대전에 와서 저녁을 사준다고 하셨다”며 “이천에서 대전까지 갈 만하다며 종종 오셨는데, 이번 연휴에 일 끝내고 오신다고 하셨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한 달여 전에도 이천에서 일을 끝내고 대전에 방문했었다고 한다. 아들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3일 전이다. 연락을 자주 못 드렸다”며 울먹였다.

20대 아들 임모씨를 잃은 어머니 B씨는 이날 오전 2시15분쯤 체육관에서 대기하다가 병원으로부터 사망자 신원이 확인됐다는 전화를 받고 울부짖었다. 눈물을 멈추지 못한 B씨는 “어떻게 아들이 먼저 갈 수 있느냐” “엄마를 두고 어디 가느냐”며 며느리를 붙잡고 절규했다.

이천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B씨가 며느리로 여긴 여성은 지난달 임씨와 결혼식을 올리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날짜를 미뤘다고 한다.

한편 30일까지 합동분향소의 유족 대기실에는 이번에 사망한 3명의 외국인 노동자 유족은 찾을 수 없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세르게이는 분향소에 이름이 쓰인 위패만 놓였을 뿐 영정사진이 걸리지 못했다. 이천시와 경찰은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 유족을 위해 통역과 장례식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천=정진호·이가람·박현주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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