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 재난지원금을 꼭 받아야 하는 이유

안혜리 입력 2020. 5. 1. 00:28 수정 2020. 5. 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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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꼼수에 '재난기부금' 반발
시키는 대로 하면 내 자유 잃어
#기부는_내_선택_내_이름으로
안혜리 논설위원

딱 예상대로 흘러간다. 하위 50%든 70%든 코로나19로 당장 생계에 곤란을 겪는 취약계층에게 좀 더 일찍 지급했어야 할 긴급 재난지원금 얘기다. 긴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 달 넘게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선 정부가 감당해야 할 부족한 재원이나 행정비용은 개개인의 도덕성에 떠넘긴 강제적 ‘자발적 기부’라는 꼼수를 뒤늦게 국민 앞에 들이밀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나라 곳간 책임진 기획재정부를 압박해 기어이 전 국민(4인 가족 기준 100만원) 지급으로 결론 내리더니 뒷감당은 국민더러 하란다.

조세법률주의 훼손이니 책임 행정과 거리가 먼 주먹구구식 국정이니 하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 제대로 된 당·정이라면 욕먹더라도 국민에게 사과하고 원래 지급하려던 하위 70%에게만 지급하든지, 아니면 총선 때 약속을 군말 없이 지키든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부자들 목을 비틀어 줄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기상천외한 해법을 고안해 냈다.

앞으로의 수순도 불 보듯 뻔하다. 국민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돈을 받지 않을지, 아니면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딱지를 감내하며 돈을 받을지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이 가장 먼저 정답을 외쳤다. 그는 “난 안 받을 것”이라며 사실상 100만 공무원을 향해 행동지침을 내렸다. 이제 여권은 극성 친문 지지자들을 앞세워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설 게 분명하다. 연일 ‘부자 동네 강남구 신청 비율’ ‘대기업 삼성전자 신청 비율’ 등을 흘려 “있는 자가 더 탐욕스럽고 부도덕하다”는 여론 재판을 가할 거란 얘기다. 무서워서라도 정부가 강제하는 ‘자발적 기부’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상위 30% 아니라 10%, 아니 0.1%도 이번 재난지원금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 선택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받아야 한다. 지난 4·15총선에 참패한 보수 더러 이 정권 미우니 발목 잡으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보수로 생각하고 보수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정부가 내 도덕성까지 재단하며 내 삶에 끼어드는 걸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론몰이가 무섭다고 이 둑을 한 번 터주면 처음엔 기부, 그다음엔 토지공개념이나 이익 공유제, 결국엔 사유재산권처럼 보수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가치마저 부지불식간에 잠식당할지 모른다.

내 얘기가 아니라 프랑스의 보수주의 정치학자 토크빌(1805~59)의 분석이다. 그는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보다 더 처참한 것은 보지 못했다”며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선 정부가 개인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침해할 권리가 있다고 상정하고 모든 사람의 일에 간섭하며 개인적 차이를 향해 반감을 드러낸다”고 우려했다. 또 “개인에게 박탈한 모든 특권은 정부가 혼자 차지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 증오는 커진다”고 했다. 미국 보수주의 사상가 러셀 커크(1918~94)도 『보수의 정신』에서 자꾸 위(정부)에서 내려오는 선의로 포장된 강제를 받아들이다 보면 개인은 교체 가능한 단순한 숫자가 돼 최후의 자유까지 잃어버린다고 경고했다.

혹자는 있는 자의 관용적 태도, 혹은 공동체적 가치를 내세워 자발적 기부를 호소하는 동시에 여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을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돈을 탐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표하면서도 보수의 품격을 보여주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의 강제적 ‘자발적 기부’에 맥없이 손을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을 단순한 숫자의 총합으로 취급하는 정부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가령 좀 귀찮더라도 정부에서 받은 만큼 내 이름으로 취약계층에 기부할 수도 있고, 곤란을 겪는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한 번 할 외식을 두 번 하면서 가라앉은 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무슨 방식이 됐든 내 이름을 걸고 내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결정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지극히 개인적 영역인 도덕까지 정부가 맘대로 재단하려는 걸 막을 수 있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에서 저자는 “개인이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도덕이 도덕일 수 있다”며 “타인이, 그것도 정부가 개인의 도덕을 결정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라고 했다. 그런 길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권한다. #기부는_내_선택_내_이름으로.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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