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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학에 환멸 느낄까 봐 입을 열었다"

백수진 기자 입력 2020.05.0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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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사태 후 첫 인터뷰 김금희]
등단 11년 만에 산문집 출간
"작가에게 저작권은 자신의 존엄.. 올바른 노동의 자세 돌아보게 돼
일하는 부모님과 가족 이야기.. 사회인의 복닥거리는 마음 썼죠"

가장 두려웠던 건, 환멸이었다. 지난 1월 이상문학상 우수상에 선정된 김금희(40) 소설가는 저작권 3년 양도 조항에 반발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그날 밤, 제가 환멸감으로 부글부글 끓더라고요. 저한테는 문학이 너무나 소중한데 이대로 넘어가면 아예 문학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될까 봐 입을 열었죠."

이후 최은영·이기호 작가가 같은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밝혔고, 운영 주체인 문학사상사의 원고 청탁을 거부하는 작가들의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등단 후 11년 만의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문학동네)을 낸 김금희 작가는 당시를 돌아보며 이렇게 썼다.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면서 고유하게 생기는 권리를 '저작권'이라 하고, 작가에게 그것은 생계와 자신의 존엄, 그리고 이후의 노동을 반복할 수 있는 힘이다.'

김금희 작가는 "작가 생활을 할수록 말끔하게 웃기보단 애매하게 웃거나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많다"면서 "한동안 사람을 덜 만나게 됐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지난 28일 만난 김금희 작가는 "그 사건 이후로 바람직한 노동의 자세를 돌아보게 됐다"면서 생애 첫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더니 한 임원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난 원래 김금희씨 뽑기 싫었는데 자기소개서를 보니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란 것 같아서 뽑았어.' 계약을 맺은 사람에게 마치 시혜를 베푼 듯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그는 이상문학상 사태의 본질도 "계약에는 주고받아야 할 의무와 권리만 있을 뿐인데 상을 주는 행위를 시혜로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장이 컸던 만큼 의외의 보람도 있었다. 그는 "단골 가게에 갔더니 직원도 자신이 겪은 갑질을 얘기하더라"면서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자 전혀 다른 세계에 있던 사람이 자기의 경험을 털어놓는 순간이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김금희의 소설에서도 일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드러난다. '너무 한낮의 연애'나 '경애의 마음'도 얼핏 연애소설로 보이지만,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구석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등장한다. 유년 시절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산문에서도 그는 부업으로 집에서 피아노 부속품을 만들었던 어머니, 목재 공장에 다녔던 아버지의 노동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김금희 작가는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고 자식보다는 일하는 두 부모가 우선인 집이었다"면서 "어려서부터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모를 통해 배웠다"고 했다. "엄마도 일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되게 컸거든요. 나중에 형편이 나아져 살림만 하실 때보다 일을 했을 때의 엄마가 더 환해 보였어요. 그래서인지 소설을 쓸 때도 일에 대한 문제는 단순하게 그리고 싶지 않아요. 일을 하려는 긍정적인 의지를 소설에 불어넣고 싶고, 일하는 사람들을 정말 잘 그리고 싶어요."

등단하기 전, 20대에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다. 그는 "아이디어가 늘 샘솟는 적극적인 편집자였다"고 자평했다. "편집자의 고충을 알기 때문에 산문집을 내면서도 욕심부리지 않았어요. 다 넣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건 뺄게요' 하고 미리 자진해서 뺐죠."

등단 후 11년 동안 쓴 산문들이 묶인 책에는 "작가로서의 문학관이나 가족들 이야기, 사회인으로서의 복닥거리는 마음들을 썼다"고 했다. 다음에는 식물에 관한 산문집을 내보고 싶어 했다. "지난해부터 발코니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앞에 앉혀놓고 대화도 하고, 도시에 살면서 좀처럼 하기 어려운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한 5년쯤 뒤에는 자연을 통로로 예술과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산문을 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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