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이라면 치가 떨린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지역 혐오

김정석 입력 2020. 5. 1. 13:40 수정 2020. 5. 2.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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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틀째 확진자 '0' 코로나 확산세 둔화
하지만 대구·경북 향한 혐오 온라인서 여전
"어디 출신이라 말못해..차별받을까 걱정"
육군 50사단 소속 장병들이 1일 대구시 남구 대명초등학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 방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대구 사람이라면 치가 떨린다” “대구·경북 탈출은 지능순” “대구시민들은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라.”

대구·경북 지역과 관련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뉴스 보도에 달린 포털 사이트 댓글들이다. 하나같이 코로나19의 발원지를 대구·경북으로 지목하고 감염병 대규모 확산의 책임을 대구·경북 시민들에게 돌리는 내용이다.

지난 2월 18일 대구 지역 첫 코로나19 확진자이자 국내 31번째 환자(61·여)가 발생한 직후부터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대구·경북 시민들을 힐난하고 혐오감을 드러내는 게시물들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이틀간 대구에서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는 등 확산세가 크게 누그러든 상황에서도 이 같은 지역 혐오는 멈출 기미가 없다.

1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 1만774명 중 대구·경북이 차지하는 비율이 질병관리본부 기준 76.3%에 이른다. 특히 대구 지역에서 있었던 신천지 교인들의 대규모 예배가 국내 코로나19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 제기가 나오면서 대구·경북 지역민에 대한 여론은 더욱 싸늘해졌다.

최근 들어 대구·경북의 상황은 급반전했다. 1일과 지난달 30일 이틀 연속으로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전까지도 계속해서 한 자릿수 증가세를 보여 왔다. 1일 0시 기준 대구 지역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6852명. 이 중 6249명이 완치 판정을 받아 91.2%가 집으로 돌아갔다. 순 확진자가 603명인 셈이다.

대구 출신 10대가 부산 클럽에 다녀온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 보도 아래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 대구에 대한 지역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네이버뉴스 캡쳐


이런 코로나19 확산 둔화 분위기에도 대구·경북을 향한 비난은 변함이 없다. 지난달 24일 대구 출신의 10대가 부산의 한 클럽을 다녀온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네티즌들은 “대구 사람이 또 감염증을 퍼뜨리는 행동을 했다”는 취지의 비판을 쏟아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클럽에 가는 경솔한 판단을 했지만 대구에 대한 혐오가 더욱 큰 비난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시민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지역 혐오가 실생활로 이어질지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김준호(29·달서구 월성동)씨는 “수도권 지역 기업에 지원했을 때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을까 봐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연쇄감염이 이어지고 있는 경북 예천군 출신인 곽모(31·여)씨는 “예천은 본래 선비의 고장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최근 코로나19 확산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 예천 출신이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며 “온라인에서 예천에 대한 비판 여론을 보면 더욱 위축된다”고 전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대구·경북에 대한 혐오 여론은 악의적으로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소수의 목소리로 보는 게 맞다. 이성적 사고를 하는 국민이라면 이번 사태로 대구·경북 지역민들이 무척 고생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인터넷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의견을 무시한 채 비난과 혐오만이 반복된다면 결국 지금 갖고 있는 온라인 자유마저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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