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허용된 전화 진료.. 환자 87% "만족", 의료진은 86% "불편"
올해 2월 서울 은평성모병원에서 오십견(어깨관절 유착성 관절낭염) 수술을 받고 퇴원한 정모 씨(64)는 한동안 마음을 졸였다. 이 병원 환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이 2주 동안 폐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이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전화 진료를 시작한 것. 정 씨는 담당의로부터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활치료법을 소개받고 팩스로 처방전을 전달받았다.
은평성모병원에 따르면 병원이 폐쇄된 2월 23일∼3월 8일 6840명의 환자가 전화 진료를 받았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화 진료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906명 중 87%가 “상태를 설명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진료가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 환자들 ‘전화 진료’ 긍정 평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병원을 찾기 힘든 환자가 늘면서 정부는 2월 24일부터 한시적으로 전화상담과 처방을 허용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12일까지 이뤄진 전화 진료는 3072개 의료기관에 걸쳐 총 10만3998건에 달한다. 대학병원 같은 상급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동네병원(의원급)에서도 6만 건이 넘는 전화 진료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정부가 시행해 온 시범사업도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진행됐다. 복지부의 의료 취약지 의료지원, 중소벤처기업부의 규제자유특구 원격 의료 실증사업 등은 ‘원격 모니터링’ 수준에 그치거나 의료인 간 소통에 그쳤다. 복지부 관계자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일부 병원에 한해 전화 진료를 허용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모든 병원을 대상으로 허용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시적이나마 원격 의료가 허용되면서 일각에선 의료 규제가 풀리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원격 의료, 원격 교육 등 비대면 산업에 대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혁파와 산업육성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가 이날 발표한 ‘10대 산업 분야 규제혁신 방안’에는 데이터(의료정보 포함), 의료 신기술, 헬스 케어(건강관리) 등 원격 의료 관련 내용이 여럿 포함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약 두 달간 진행된 전화 진료에 대한 환자와 의료진의 온도 차는 극명하다. 은평성모병원 설문조사 결과 환자들은 전화 진료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의료인(155명)의 85.8%는 불만을 표시했다. 정승은 은평성모병원 기획조정실장은 “대면 진료는 청진, 촉진을 하면서 환자의 안색과 걸음걸이도 살필 수 있다. 전화 진료는 그렇게 하지 못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고 말했다.
○ 만성질환자 제한적 허용 고려
의료계의 반대에도 원격 의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행정대학원 교수는 “모니터링과 약 처방만 필요한 만성질환자들은 원격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홀몸노인(65세 이상 1인 가구)은 전체 1인 가구 가운데 24.1%를 차지한다. 2047년에는 48.7%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산간도서 벽지, 군부대, 원양어선 등 의료 사각지대의 원격 의료 수요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연간 의료기관 외래 방문 횟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일각에선 원격 의료 안전성이 우려된다면 순차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2015년 원격 의료를 도입한 일본은 대면진료를 받은 환자의 재진부터 원격 진료를 허용했다”며 “순차적으로 원격 의료를 도입한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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