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견제 받지 않는 權力의 '빅 픽처'

박제균 논설주간 2020. 5.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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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분출한 국민발안 개헌론.. 자유민주주의서 '자유' 빼는 큰 그림
사회주의 경제 틀 헌법에 박으려
입법 사법 행정 3권 사실상 장악.. 막장 야당, 질주 권력에 터보엔진
제동 없인 종착역은 中南美 나라
박제균 논설주간
4·15총선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16일자 본란(本欄) 말미에 이렇게 썼다. “자유민주주의 ‘자유’란 두 글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권이 확 달라지지 않는 한 4개월 뒤 총선이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본다. 내년 4월 16일 아침, 우리는 어떤 대한민국을 맞을 건가.”

지난달 16일 어떤 아침을 맞았는지는 다 아는 대로다. 여당의 압승에 기고만장한 일각에서 ‘세상 바뀐 걸 확실하게 느끼도록 갚아주겠다’며 윤석열 검찰총장 끌어내리기에 개헌론까지 쏟아졌다. 그러자 여당 대표가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 국난과 경제위기, 일자리 비상사태의 타개’라고 자제시킬 때만 해도 승자의 여유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정계 은퇴를 앞둔 당 대표의 자제론을 깔아뭉개기라도 하듯,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당선자가 ‘토지공개념 개헌’에 불을 붙이더니 원내대표가 나서 국민발안제 원포인트 개헌론을 들고 나왔다. 국민발안제 개헌은 현재 ‘대통령’과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의 투 트랙으로 돼 있는 개헌 발의의 통로를 하나 더 늘리겠다는 뜻. ‘지금이 개헌할 때냐’는 반발이 거세지자 한발 물러섰으나 21대 국회 초반, 그것도 올해 안에 다시 터져 나올 공산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도 확인됐듯, 좌파의 정치술은 현란하다. 불씨를 던지는 사람이 있으면 불을 지피는 사람이 있고, 그 불을 들불로 확산시키는 세력이 있다. 얼핏 따로 따로 벌어지는 현상 같지만, 지나고 보면 작은 불씨를 들불로 키우려는 정교한 디자인이 있고, 그 디자인을 현실화하는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있다. 총선 이후 분출한 개헌론도 그런 큰 그림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이 그리려는 큰 그림의 완성은 뭘까. 바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빼는 것이다. 그렇기에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자유’를 뺀 개헌안을 만든 바 있고, ‘토지공개념’과 ‘이익공유제’라는 사회주의 경제의 기본개념을 개정헌법에 박으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권이 추진하는 국민발안제 개헌이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개헌안 창출이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문 정권은 직접민주주의를 통치 방식으로 표방하고 유용하게 써왔다. 오죽하면 진보좌파 이론가 최장집도 “현 진보세력의 직접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비슷하다”고 일갈했겠는가.

과도한 직접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과 중우(衆愚)정치를 동반한다. 문 정권 들어 그 심각한 폐해를 충분히 목도해 온 터. 나라 망칠 포퓰리즘 헌법까지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민의(民意)는 한국 정치를 실패의 무한궤도로 돌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뜯어고쳐 달라는데, 정권은 자유 대한민국의 토양을 갈아엎으려는 것이다.

바로 총선 압승이 진보좌파 세력으로 하여금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나라의 틀을 바꿔 ‘보수우파 기득권 세력’을 교체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을 주었으리라. 이번 총선으로 문 정권은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사실상 장악한,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정권으로 거듭났다. 검찰도 윤석열 총장의 수족을 잘라내고 정권 말을 잘 듣는 예스맨들을 요직에 심어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지경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할 보수야당마저 그 정도 깨졌으면 정신 차릴 법도 하건만, 연일 저열하고 추잡한 이기심의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며 견제 받지 않는 권력에 터보엔진까지 장착해주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권력의 열차는 벌써 ‘해고제한 법제화’ ‘전 국민 고용보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후속법안 처리’ 같은 정권의 어젠다를 밀어붙이며 질주의 경적을 울린다.

그 열차의 종착역은 자유보다 평등, 경쟁보다 분배, 능동보다 수동, 개인보다 국가, 민간보다 공공(公共), 안보보다 굴종(屈從)이 중시되면서도 되레 불공정과 불평등, 불의와 빈곤이 심화되는 중남미 저쪽의 어느 나라쯤이 될 것이다. 4·15총선에서 권력에 경고한 41%의 국민, 아니 그보다 많을 양식 있는 국민이 이 질주를 막아서지 않는 한….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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