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의 경제 돌직구] '좀비 경제' 만든 일본의 30년 패착, 그걸 따라하겠다는 한국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2020. 5. 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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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 구조조정·규제 개혁 외면, 양적 완화 등으로 좀비 기업 연명시켜
일자리·중소기업·자영업 보호 명분.. 자본 투자 감소, 생산성 하락 초래
'모든 일자리 지킨다'식 경제 운용, 우리 경제 일본화 더욱 가속시켜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바이러스가 경제를 크게 흔드는 와중에 집권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소주성 정책 실패 책임은 유실되었으며 정권 뜻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정치 지형이 만들어졌다. 전 국민 재난구호금은 돌이킬 수 없는 선례가 되었고, 이익공유제, 토지공개념, 기본소득, 전 국민 실업보험, 재벌이 돈을 내는 복지국가론까지 좌파적 경제구조로 줄달음칠 기세다. ‘노동자가 주류인 사회’ 완성을 위해 경제구조를 근본부터 바꾸려 시도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한국판 뉴딜'이 지닌 함정

지금까지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자유시장경제 관점에서는 사회주의 실험이었다. 임금 상승이 시장을 키운다는 임금의 소득 효과만 강조하면서 올라간 임금이 실업을 촉발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믿음은 철저히 부정하는 '포스트 케인지언'의 이단적 이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권의 '한국판 뉴딜'이라는 구호는 집권 세력이 코로나 위기를 빙자해 경제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 기회를 포착했음을 시사한다.

경제 위기 후유증은 장기적이고 내상이 깊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IMF 외환 위기 직전인 1997년 세계 44위였는데 2014년에야 이 순위로 복귀했다.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제적 충격이 얼마나 강하게 우리에게 닥칠지는 예상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2분기 충격은 1분기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점이다. 팬데믹 이후의 뉴 노멀 시대엔 비대면 경제가 강화되고, 많은 분야에서 10% 이상 수요가 사라진 '90% 경제'가 한동안 지속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린 충격이 더 클 것이다.

어떤 경제체제와 질서를 채택하느냐는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부침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OECD 주요 25국 1인당 국민소득 순위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두 나라가 있다. 1970년 21위였던 일본은 2000년 2위로 치솟았으나 부동산 거품 이후 하강을 계속, 2018년 20위가 되면서 50년 전으로 후퇴했다. 반면 아일랜드는 1970년 23위에서 2018년 4위로 급상승했다. 일본은 왜 이런 비참한 상황이 됐을까. 문 대통령은 최근 간담회에서 "일자리 위기가 거세게 닥쳐오고 있지만, 정부는 일자리 하나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만든 '대실패 정책'의 핵심이란 걸 알고 있을까. 일본 경제는 1990년을 전후로 절정에 달한 뒤 이후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1985년 위기, 일본 '경제 좀비화'로 대응

1985년 플라자 협약으로 독일·프랑스·영국·일본의 환율이 급등했다. 이때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은 낮아진 수출 경쟁력을 구조 조정이 아니라 양적 완화와 금리 인하 등을 통한 '경제 좀비화'로 대응했다. 중소기업, 자영업, 그리고 일자리 보호가 명분이었다. 일본 관광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인데 고용 인원은 10%에 육박한다. 실업률이 가장 낮은 나라지만 글로벌 제조업에서 유실되는 일자리를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끊임없이 대체한 결과 일본의 1997년 대비 2017년 실질임금은 10% 감소했다.

일본 중앙은행은 잠재성장률이 끝없이 하락하는 주 요인을 자본투자 감소, 총요소생산성 감소라고 밝히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화 가설도 나왔지만, 같은 고령화를 겪은 북유럽은 일본 정도의 저성장에 시달리지 않았다. 결국 성장·생산성 향상에 실패한 것 이외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정부가 새로운 시장을 열 규제 개혁은 외면하고, 양적 완화와 지원책으로 고통을 덜어주는 데 급급하면서 잘못된 투자는 계속됐고, 좀비 기업은 계속 연명하는 바람에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아베는 견고한 사회적 저항으로 세 번째 화살(구조 조정)을 쏴 보지도 못했고, 경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전부터 이미 마이너스를 겪어야 했다.

우리는 지난 25년간 5년마다 잠재성장률이 1%씩 감소하는 '5년 1% 법칙'이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다. 일본보다 더 처참하게 경제 혁신에 실패하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가 지속되고 있다. 낮은 생산성을 높은 근로 투입으로 때우는 것은 일본의 판박이이나 그 정도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려는 한국

반면 아일랜드의 성공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 덕택이다. 법인세율은 12.5%로 우리의 반도 안 된다. 과도한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긴축으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등 헤리티지재단의 경제 자유도 평가에서 6위를 기록할 정도로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했다.

한국은 실패한 일본을 답습하고 있다. 이 구조적 문제에 소주성이라는 이념 실험 문제가 더해졌다. 2016년까지 반등하던 제조업과 30~40대의 일자리는 파괴되고, 노인 알바 자리의 분식 꼼수는 진행 중이다. 공공 부문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재정 건전성은 포기한 지 오래다. 팬데믹 이후 뉴 노멀은 산업의 수요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일 없는 일자리는 구조 조정해야 한다. "일자리 하나도 지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선언은 한국 경제의 일본화를 더 빨리 앞당기겠다는 선언이다.

IMF 외환 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시행한 고통스러운 구조 조정은 이후 우리 경제가 반등하는 힘이 되었다. 이번 총선 결과는 그런 고통스러운 구조 조정을 이끌 힘이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린 일본과 아일랜드 중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팬데믹이 덮친 상황에서 총선 결과가 암시하는 미래의 ‘예상 결론’은 비관적이다. 임기응변의 일자리 지키기와 ‘한국판 뉴딜’이 초래할 고통은 초식동물과 헬조선으로 비관할 다음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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