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여성' 랜챗 켜자.. 10분 새 22명이 마수 뻗쳐

황윤태 기자 2020. 5.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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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검거 50일.. 인터넷은 지금] ① 미성년자 노리는 랜선 너머 '그놈'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해 수십명의 여성을 성착취한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박사’ 조주빈(25·구속)이 검거된 지 50일이 지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온라인에서 ‘익명의 가면’을 쓰고 청소년을 향해 마수를 뻗치는 이들의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일보가 지난 3월 9일 ‘n번방 추적기’ 시리즈 기사를 보도한 지 1주일 만인 같은 달 16일 조주빈이 검거되면서 이른바 ‘박사방’에서 벌어진 성착취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조주빈과 10여명의 공범, 그리고 ‘갓갓’을 제외한 n번방 운영진 상당수가 법의 심판대에 섰지만 랜선 너머에는 ‘조건만남’ 등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검은 유혹이 여전히, 그리고 더욱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6일간 여러 개의 랜덤채팅(일명 ‘랜챗’) 애플리케이션에서 미성년자들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지켜봤다. 이를 위해 불가피하게 채팅 앱 계정에 ‘미성년 여성’임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띄워놓았다.

n번방 사태 이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생겼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4시, 계정을 만들자마자 4개의 랜챗 앱에서는 10여분 만에 22명이 ‘만나고 싶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들은 GPS상 10㎞ 이내에 있는 이들이었다. 미성년자로 위장한 취재진과 만나고 싶다는 ‘그놈’들의 메시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취재기간 내내 랜챗 앱의 메시지 도착 알림으로 새벽잠에서 깨야 했고, 새벽 2시까지도 계속 알림이 와서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였다.

엿새 동안 도착한 메시지를 분석해보니 메시지를 보낸 남성 상당수는 ‘안녕하세요’나 ‘하이’라는 인사로 접근했다. 그들은 미성년자임을 드러낸 취재진 계정의 상태 메시지를 보고 “밥은 먹었느냐” “고민이 있느냐”며 태연하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예 “혹시 조건만남을 할 생각이 있느냐”며 성매매를 제안한 이용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일부는 성관계 횟수와 금액까지 제시하기도 했고, “용돈을 받는 만남을 하려면 신체 사이즈부터 알려달라”고 요구한 사람도 있었다.

취재진이 사용한 랜챗 앱은 사용자의 연령대를 프로필에 공개하도록 돼 있었다. 접근한 남성 대부분은 20, 30대였지만 40대 남성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도 적지 않았다.

자신을 수도권에 사는 47세 남성이라고 소개한 이용자는 “밥을 먹든, 어딜 가든 만나기만 하면 뭐든 해줄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한 20대 남성은 아예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조건만남을 갖자고 제안했다.

랜챗 앱에서 만난 일부 남성은 조주빈과 갓갓 등 n번방 범죄자들이 요구했던 것처럼 신상정보를 집요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얼굴을 보고 싶다며 영상통화를 원했고, 일부는 신체 일부의 사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30대 남성은 영상통화 요구를 거부하자 곧바로 계정을 차단하고 잠적했다.

또 n번방 성착취의 빌미가 됐던 아르바이트 제안도 횡행했다. 한 30대 남성은 “서울이면 어디든 찾아가겠다”며 ‘발 마사지’ 아르바이트를 권했고, 자신이 마사지 기술자라며 돈을 받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는 아르바이트를 권하는 남성도 있었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n번방과 박사방 사건을 언급하며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도 더러 있었다. 한 남성은 대화 도중 미성년자임을 거듭 확인하더니 “미성년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며 채팅방을 나갔다. 다른 30대 남성은 “여기(랜챗 앱에) n번방처럼 경찰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며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려면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랜챗 앱에서는 여전히 청소년을 상대로 한 범죄의 유혹이 넘쳐나고 있지만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호소할 공간은 많지 않았다. 청소년매체환경보호센터가 (사)탁틴내일의 위탁을 받아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일반 랜챗 앱 340여개 가운데 38.5%가 채팅 중 문제가 발생해도 관리자에게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특히 랜챗 앱 가운데 6.3%는 대화 내용을 캡처하는 기능이 없어 성착취 등의 피해가 발생해도 범죄사실을 특정하거나 증거자료로 사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제2 n번방’을 운영하며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닉네임 ‘로리대장태범’ 배모(19)씨의 재판이 열린 춘천지법 앞에서 지난 1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그의 신상공개와 유포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행히 n번방 사태 이후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국회는 지난달 29일 19개 법안을 한데 묶은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불법 성착취물을 촬영하거나 소지, 시청하는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및 최대 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랜챗 앱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텔레그램 n번방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매매 유입이 높은 서비스에 대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을 하려면 어떤 앱이 대상이 되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계 기관과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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