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56년 만의 재심 신청

공웅조 2020. 5. 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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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지난 1990년 개봉한 영화제목입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1988년 한 여성이 성폭행 당할 위기에서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는데 오히려 이 여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얘기를 소재로 만들었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또 법정에서 갖은 모욕을 당한 주인공. 이런 말을 합니다.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이 사건이 다시 기억된 건 2년 전 미투운동 때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윤택 씨가 영화의 시나리오 원작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 비뚤어진 성 의식을 고발했던 원작자가 성폭력의 가해자가 된 것이었죠.

비슷한 사건, 훨씬 전인 1964년에도 있었습니다.

성폭력 가해자를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실형까지 받았던 피해자.

56년 전의 불명예를 바로잡고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공웅조 기자가 직접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올해 일흔 넷인 최말자 씨. 56년 전 집 부근에서 강제로 키스를 하려던 남성에 저항하다 옥살이를 했습니다.

저항과정에서 가해자 혀를 깨물었는데 1.5cm 정도 혀가 잘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최말자/성폭력 피해자 : "뭘 어떻게 해야될 지 생각도 못 하고 너무 억울한 마음이었어요. 내가 이 상처를 끌어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막막했죠."]

검사는 최 씨에게 가해자와 결혼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고 말했고 재판부는 "처음부터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재판 결과는 피해자 최씨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재판 과정에서 6달간 옥살이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는 주거침입과 협박 등의 혐의만 인정되고 강간미수 혐의가 빠져 최 씨보다 적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강제 키스를 막기 위해 혀를 깨물었는데 이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당시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50여 년 동안 억울함을 삭히며 살아온 최 씨는 올해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습니다.

[배은하/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상담소장 : "내가 지금 나이에 이거를 유죄로 판결을 뒤집어서 무죄로 되는 것보다는 더 이상 피해 여성들이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바로 잡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최말자/성폭력 피해자 : "밝혀야 보호를 받는다는 거.. 그냥 자기 혼자서 끌어안고 있다고 누가 도와주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밝혀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KBS 뉴스 공웅조입니다.

공웅조 기자 (sal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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