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부채 조정, 추경은 그대로..그때 그때 다른 나랏빚 계산법
추경은 성장률 전망 조정안해
나랏빚 계산은 경제가 얼마나 성장하고, 물가상승률은 어느 정도일지 전제한 뒤 계산한다. 성장률 예측이 정확해야 현실에 맞는 나랏빚 규모가 산출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의 나랏빚 계산 전제는 실제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 정부는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국가채무가 819조원이 될 거라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1.4%로 예상했다. 올해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 2.4%+물가상승률 1%)이 3.4%가 될 거라는 가정하에 나온 수치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기관은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예상한다. 4월 물가상승률은 0.1%였다. 경상성장률 3%대는커녕 마이너스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정부도 3.4%라는 수치가 비현실적임을 잘 알고 있다. 틀린 가정임을 뻔히 알면서도 나랏빚 계산에 적용했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1년에 두 차례 발표하는 경제 전망치에 맞춰 편성된다”며 “올 6월 수정 전망이 나오기 전에는 지난해 12월 수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실과 다르지만, 기존 발표 수치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원칙을 항상 지키지는 않았다.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9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가 그랬다. 연금충당부채(향후 공무원과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 부담액)를 계산하면서 ‘2020년 장기재정전망’의 임금·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적용했다. 2020년 장기재정전망은 비공개된 수치다. 올 9월에 발표된다. 비공개 전망치 중 일부만 가져다 썼다는 얘기다.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처럼 최근 발표 수치인 '2015년 장기재정전망'을 적용했다면 지난해 연금충당부채는 1040조4000억 원으로 2020년 기준치를 적용했을 때보다 96조2000억원 늘어난다.
정부는 “2015년 전망은 저성장‧저물가 기조인 최근 상황과 맞지 않아 현실적인 수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추경 편성을 통해 늘어나게 될 나랏빚 계산도 ‘현실적인’ 수치를 적용해야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상성장률을 0% 수준으로 가정했다면 현실에 더 가까운 국가채무 지표가 나왔을 것”이라며 “빚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쓸 궁리만 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런 주먹구구식 재정 운용이 최근 들어 잦아지는 게 더 큰 문제다. 2차 추경을 하면서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시행한 1조2000억원의 세출 조정은 국회에서 ‘당일 심사’ 후 처리됐다. 밀도 있는 심사는 없었다.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나라 곳간이 얼마나 줄어들지도 알 수 없다. 재난지원금 중 일부를 자발적 기부를 통해 돌려받기로 했는데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초유의 경제 위기를 이겨내려면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럴수록 나라 살림을 보다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 강성진 교수는 “시급성만 강조해 나랏돈을 무턱대고 풀 게 아니라 국가 재정이 어떤 상황인지 더 정확히 파악하고 집행 원칙을 제대로 세워 꼭 필요한 곳에 나랏돈을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책팀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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