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부채 조정, 추경은 그대로..그때 그때 다른 나랏빚 계산법

하남현 2020. 5. 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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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부채는 미발표 수치 적용
추경은 성장률 전망 조정안해

나랏빚 계산은 경제가 얼마나 성장하고, 물가상승률은 어느 정도일지 전제한 뒤 계산한다. 성장률 예측이 정확해야 현실에 맞는 나랏빚 규모가 산출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16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브리핑실에서 2020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정부의 나랏빚 계산 전제는 실제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 정부는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국가채무가 819조원이 될 거라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1.4%로 예상했다. 올해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 2.4%+물가상승률 1%)이 3.4%가 될 거라는 가정하에 나온 수치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기관은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예상한다. 4월 물가상승률은 0.1%였다. 경상성장률 3%대는커녕 마이너스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정부도 3.4%라는 수치가 비현실적임을 잘 알고 있다. 틀린 가정임을 뻔히 알면서도 나랏빚 계산에 적용했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1년에 두 차례 발표하는 경제 전망치에 맞춰 편성된다”며 “올 6월 수정 전망이 나오기 전에는 지난해 12월 수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실과 다르지만, 기존 발표 수치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원칙을 항상 지키지는 않았다.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9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가 그랬다. 연금충당부채(향후 공무원과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 부담액)를 계산하면서 ‘2020년 장기재정전망’의 임금·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적용했다. 2020년 장기재정전망은 비공개된 수치다. 올 9월에 발표된다. 비공개 전망치 중 일부만 가져다 썼다는 얘기다.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처럼 최근 발표 수치인 '2015년 장기재정전망'을 적용했다면 지난해 연금충당부채는 1040조4000억 원으로 2020년 기준치를 적용했을 때보다 96조2000억원 늘어난다.

연도별 연금 충당부채.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부는 “2015년 전망은 저성장‧저물가 기조인 최근 상황과 맞지 않아 현실적인 수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추경 편성을 통해 늘어나게 될 나랏빚 계산도 ‘현실적인’ 수치를 적용해야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상성장률을 0% 수준으로 가정했다면 현실에 더 가까운 국가채무 지표가 나왔을 것”이라며 “빚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쓸 궁리만 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런 주먹구구식 재정 운용이 최근 들어 잦아지는 게 더 큰 문제다. 2차 추경을 하면서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시행한 1조2000억원의 세출 조정은 국회에서 ‘당일 심사’ 후 처리됐다. 밀도 있는 심사는 없었다.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나라 곳간이 얼마나 줄어들지도 알 수 없다. 재난지원금 중 일부를 자발적 기부를 통해 돌려받기로 했는데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몰고 온 초유의 경제 위기를 이겨내려면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럴수록 나라 살림을 보다 꼼꼼하게 관리해야 한다. 강성진 교수는 “시급성만 강조해 나랏돈을 무턱대고 풀 게 아니라 국가 재정이 어떤 상황인지 더 정확히 파악하고 집행 원칙을 제대로 세워 꼭 필요한 곳에 나랏돈을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경제정책팀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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