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막히자..월세살이 내몰린 1주택자

정지성 2020. 5. 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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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전세계약 대출 불가
육아·직장 탓 이사하려면
월세·반전세밖에 없어
전세반환대출 비율 줄며
본인 집 입주도 쉽지 않아
"1주택자 규제완화 필요"
12·16 부동산 대책으로 고가주택(시가 9억원 초과) 보유 1주택자 전세자금대출이 사실상 전면 금지되면서 전세계약이 만료돼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가장(1주택자)들이 어려움에 빠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집을 보유한 1주택자에 대해선 대출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가주택 전세대출 전면 제한 조치로 인해 대출이 불가능해진 1주택자들이 '집단 멘붕'에 빠진 상태다. 대출 금지 시행은 올 초부터였지만 실질적인 혼란은 봄 이사철을 맞아 본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30대 직장인 김 모씨(38)는 1주택자 전세대출 금지의 피해를 직접 입은 전형적인 사례다.

김씨는 은평구 북한산푸르지오 전용 84㎡ 아파트에서 현재 전세(전세금 4억8000만원, 전세자금대출 3억5000만원)로 실거주하고 있다. 지난해 태어난 딸을 키우고 있는 김씨는 육아 문제로 장모의 도움을 받기 위해 본인 집을 떠나 처가가 있는 은평구에 살고 있다. 김씨는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시가 14억원) 아파트를 보유 중이며 이 집은 전세를 준 상태다.

김씨는 살고 있던 전셋집의 전세계약 연장을 기대했지만 집주인이 최근 바뀌면서 갑자기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김씨가 보유한 마포 아파트는 세입자와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아 있어 본인 집에 바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고가주택 보유자로 분류돼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못하고 결국 고액 월세나 반전세밖에 구할 수 없는 실정이란 걸 깨닫고 난감했다. 지난해 태어난 자녀가 있는 김씨는 월 120만~150만원(동일 단지 보증금 1억원 기준)에 달하는 비싼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육아 때문에 처가 근처에 살 수밖에 없어 결국 월세를 알아봐야 한다"며 "아무리 집값을 잡는 게 중요해도 1주택자 전세대출까지 막는 것은 너무 과도한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육아·직장·자녀교육 등 여러 사정 때문에 본인 집을 두고 불가피하게 다른 지역에 전세로 사는 1주택자들은 김씨와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지난 1월 20일부터 시가 9억원 이상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보증을 전면 제한했다.

해당 일자 이전에 이미 고가주택 보유자이면서 전세대출을 이용 중인 사람들은 만기 연장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기존 대출을 동일 금액으로 기계적으로 연장하는 경우에만 한정된다. 김씨와 같이 전셋집을 이사하거나 전세대출을 증액해야 하는 경우 신규 대출로 간주돼 전세대출 금지 대상이 된다. 최근 서울 아파트의 가파른 전셋값 상승세를 고려하면 기존 전세계약 만료 시 사실상 자력으로 전세보증금 전액을 마련하거나 월세·반전세밖에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다른 대안으로 본인이 소유한 집에 들어가려 해도 녹록지 않다. 12·16 대책 이후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전세퇴거대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줄어들면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책 시행 이후 대출을 신청한 경우 새 규제를 적용해 9억원까지는 LTV 40%를, 9억원 초과분은 20%를 적용한다.

마포구 마포자이2차 84㎡ 아파트를 소유한 직장인 권 모씨(43)는 최근 전세계약 종료 시점에 맞춰 본인 집에 들어가려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를 포기했다. 권씨 집은 시세가 14억원 수준인데 원래는 대출한도가 5억6000만원(40%)이었지만 새 LTV를 적용하면 4억6000만원으로 1억원이 줄어든다. 결국 권씨는 본인이 살던 기존 전셋집의 전세계약을 연장하기로 하고 집주인이 요구한 보증금 인상분은 월세로 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집을 보유한 상태에서 실거주 전셋집을 옮겨야 하는 1주택자의 경우 전세대출 규제를 과감히 풀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1주택자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한 것은 전세대출을 활용한 갭투자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하지만 최근 주택 구입 시 자금출처조사가 강화되면서 이 같은 방법은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만큼 다시 대출규제를 완화해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고가주택으로 정한 기준인 시가 9억원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KB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 4월 13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1998만원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세계약 만기 시마다 은행이 자금 용도를 확인하는 식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1주택자 전세대출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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